장수임展(미광화랑)_20151222

김현명

우리가 잊고 있었던 창이 있었다. 커튼을 열어젖히자 마치 나의 등장을 오랫동안 기다려 오기라도 한 듯 반갑게 맞아주는 각각의 주인공들이 나타난다. 새로울 것도 없이 친숙한 꽃병, 가구와 귀여운 동물들은 첨예하게 구분되거나 긴장감 있게 배치되지 않는다. 이 공간 안에서는 누구나가 주인공이다. 바닥의 카펫 패턴과 동물과 나비의 무늬에 새겨지는 색채들은 처음부터 하나였듯이 자연스럽고 친근하게 뒤섞이고 있다. 이들은 그림의 일부라기보다 커튼 뒤로 활짝 열려진 마음의 창문처럼 우리에게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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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가 잘 알다시피, 음악의 가장 커다란 요소 중의 하나가 청중이다. 이 이야기를 미술에 적용하여 말 한다면 그림의 가장 커다란 요소 중의 하나가 바로 우리의 삶속 생활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장수임의 회화에는 지난한 일상의 순간들 속에서 문득 넘쳐흐르는 멜로디처럼 솟아나는 사물들과의 놀이와 색채들의 세련된 뒤섞임 들이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그의 회화는 우리와 결부된 어떤 경험의 인상들과 다정한 위로들이 엄숙하지 않게 있는 그대로의 성격을 띠고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커다란 매력이다. 이 그림들은 아마도 햇빛이 드는 작업실, 거실을 뛰노는 자라나는 여자아이, 음악과 늘상 함께 하던 화가 부부의 실제의 공간을 떠올려 보지 않고는 생각해 볼 수 없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마치 비슷비슷한 구도의 수채화를 위한 사물이 놓여 진 테이블과 같은 그림 속의 공간들을 거닐며, 음악의 이국적인 멜로디가 우아하게 변주되어 가는 과정처럼 그곳을 함께 산책하게 된다.

그렇다고 마냥 장수임의 회화를 소박한 프리미티브의 범주로 단정하는 것은 그림을 충분히 들여다보지 않은 것이다. 수채화의 투명한 비침을 아크릴 물감으로 무리 없이 옮겨놓는 감각이 오랫동안의 숙련된 화가의 터치를 보여주고 있다. 세필로 표현되는 겹겹의 잎과 가구들의 세부적인 표현들이 작가가 섬세한 기교를 지닌 연주자의 기질을 갖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풍성하게 번져가는 꽃 바닥 사물들이 지닌 패턴의 미묘한 움직임도 스스로 살아서 존재하는 것들의 생명력 있는 운동감을 표현하고 있다. 그림들은 조금씩 어긋나 있는 원근이나 재치 있게 비스듬한 수평선들이 멀리 있는 풍경들과 가까운 것들을 평면적으로 뒤섞어 독특한 공간 구성을 지니게 되었다. 아마 어린 아이의 시점을 자연스레 체득한 결과물일 것이다. 장수임의 회화에서는 감각적이면서도 보다 차분하고 절제된 색감으로 변모하고 있는 점과 무엇보다도 모조리 다 채우지 않고도 (탁 트인 공간으로 처리된 배경처럼) 시각적인 경쾌함으로 이끄는 절제된 비움과 구성이 돋보인다. 틀림없이 아이와 함께, 그의 천진하면서도 감각적인 회화들도 자연스레 함께 성장하여 갔을 것이다.

한때 모든 사물이 나의 무대에서 주인공이며 먼 미래와 현재가 커다란 구분 없이 뒤섞여 있던 그 시기를 누구나 경험했을 것이다. 교훈이나 예술미학의 엄숙함이 때로는 일상의 삶을 잊게 만들기도 한다. 장수임의 회화는 그 모든 위축감을 이해하며 우리의 삶의 아름다운 그림자를 굳이 지워내지 않는다. 멜로디처럼 마냥 떠오르는 기쁨도 있고, 그림책과 내방에서 모두가 친구였고 친근하게 서로를 인정해 주었던 시간들이 있다는 것을 환기 시켜준다. 빛과 사물들의 진정한 관능성과 감각, 풍요로운 기쁨을 회복해 준다는 점에서, 장수임의 회화는 우리에게 진정으로 있는 그대로의 시간을 감상하는 법도 아울러 배우게 해준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가까이 손을 뻗으면 존재하는 우리의 삶과 장수임의 회화를 결부하여, 아름다움의 그림자를 통해 세계를 상상하고자 했던 열망을 아직은 간직해 볼 수 있게 되었다고 느낀다.//글 김현명//

– 장소 : 미광화랑
– 일시 : 2015. 12. 22 – 2016.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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