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展(갤러리 연오재)_20160307

박진영

사진이 어려워졌다. 오늘날, 사진은 저 화려한 액자 뒤에서 나에게 무언가를 감추려고 한다. 그리고 숨은 무언가를 찾으려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사진 속 메시지를 이해하고 나아가 사진너머의 심오한 세계를 보라’… 최근 열리고 있는 사진전시를 볼 때면 나는 머리와 마음이 참 불편하다는 생각이 든다. 전시뿐 아니라 간혹 보게 되는 학생들의 작업들마저도 어렵게 보이는 건 매한가지다. 저마다의 작업들은 하나같이 학문적인 이론과 기발한 시선, 개성 있는 작가의식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보편적인 잣대로 그 작업들을 이해하기란 참으로 어렵고 많은 노력이 요구된다. 게다가 요즘 사진의 외형들은 너무나 비슷해서 각 전시마다의 변별성을 찾기란 쉽지 않다는 느낌을 받는다. -실제로 최근 한국에서 진행되는 사진전시의 대부분은 몇 명의 출력 전문가들과 몇 군데의 액자 집에서 독점 하다시피 함으로써 전시구성이 점차 획일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은 실로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허나 나도 이 세태에 자유롭지 못하다.

예전에는 흔히 ‘사진’ 하면 크게 두 개의 공정이 있었다.「촬영」과 「암실작업」. 촬영은 사진가가 원하는 혹은 우연의 피사체를 찾거나 발견하여 사진을 찍는 행위이고, 암실작업은 그 찍혀진 사진을 자신만의 기술과 노력을 기울여 사진으로 만들어내는 일종의 노동이었다. 모사진가의 이야기처럼 사진가에게 촬영은 원죄이고 암실작업은 천형과도 같았다. 이 두 가지의 요소들은 그 시절 사진가적 관점과 감각 그리고 암실에서의 테크닉과 노력에 따라 전시의 결과가 판이하게 달라지게 만드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임에 분명했다. 포니를 만들던 회사에서 제네시스를 만드는 시절이 온 것처럼, 카메라는 그것 이상으로 기술적인 진화를 거듭하였고, 또한 출력기술은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암실을 고상한 취미나 박물관으로 밀어낼 실정에 이르러 버렸다. 촬영의 기술과 개인의 실수를 커버해주는 카메라. 실물보다 좋은 발색 혹은 허구의 피사체를 감쪽같이 만들어 버리는 출력기술. 이는 고전적 의미의 사진과 현실적 의미의 디지털 이미지의 경계선을 그어 버린다. 정확한 명칭이 만들어질 틈도 없이 기술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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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중년사진가의 전시장에서 받은 애잔한 감동은 작품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코를 자극하는 정착액의 냄새 때문이었으리라. 사진에 있어 재현이란 가장 분명하고 유일한 힘이었다. 아름다운 풍경을 취하기 위해 프레이밍을 하고 트리밍을 하기도 하지만, 사진의 가장 큰 매력은 모든 렌즈에 비친 사물을 빛으로 말미암아 고스란히 재현해 내는데 있었다. 존재하지 않았다면 사진에 남지 않았을 사물들, 사진 그 자체가 알리바이가 되어버리는 여러 장면들, 몇 년 전 만해도 사진은 적어도 그러한 것이었다.

나는 그 동안 사진이란 매체로 사회적 관점 혹은 동시대적 관점에 천착해 작업을 진행해왔다. 하나의 시리즈를 완성하기 위해 자료조사부터 표본탐구, 섭외, 촬영, 기금신청, 전시, 출판 등을 거치면서 작업을 만들었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내가 사진을 찍는 사람이기보다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에 더 가깝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또한 뭔가 의미심장한 주제와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사진가란 항상 사회를 향해 발언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또한 지나친 문제의식에 사로잡혀 대상의 본질을 보기보다는 대상의 효과적인 시각화에만 전념 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이미 사진이 현대사회에서 가장 대중적인 매체로 자리 잡은 오늘날, 나는 사진가로서 어깨에 힘을 빼기로 한다. 이는 불특정 대중과의 의사소통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멈춤이자 편협한 사고를 걷어내기 위한 치유이기도 하다. 그저 시간과 공간을 담는 사진 본연의 속성을 믿으며 기술적 발전이 급격한 이즈음 사진이 태동하던 시기의 자세와 정신으로 돌아가 사진적인 사진을 찍는 시도를 시작한다.

갈증을 면하기 위해 마신 캔 맥주에 취기가 올라 나무벤치에서 한 시간을 자다가 깨어났었다. 눈꺼풀을 아른거리며 두드리는 햇살에 실눈을 떴는데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카오루는 ‘히다마리’라고 가르쳐 주었다. 은행나무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떨어져 땅에 고인 빗물이 반짝거리는 평범한 풍경이었지만, 그 순간 섬광처럼 스쳐 지나간 깨달음에 짧지 않은 여행을 떠난다.//박진영//

– 장소 : 갤러리 연오재
– 일시 : 2016. 3. 7 –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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