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풍경1-집을 만나다展(아트스페이스 누리봄)_20160511

– 기획의도/송진화 대표

낡고 불편한 주거형태를 대신해 어느새 편리함과 부의 상징이 되어버린 도심의 아파트.
하루가 다르게 생겨나고 있는 이 아파트가 도시의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지만, 수많은 그림자 역시 동시에 드리우고 있음을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아파트 평수가 인간의 등급이 되어버린 타인에게 보여지는 물적 가치로서의 집이 강조될수록 사람이 소외되는 현상은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김민정 작가님이 고층아파트라는 새로운 환경에 둘러싸인 지금의 모습을 아주 정적인 화면을 통해 우리가 처한 현실을 관조의 눈으로 바라보게 한다면…
이동근 작가님은 우리의 또 다른 현실인 산복도로에 자리한 낡고 오래된 좌천아파트에서 터를 내리며 살아가는 이웃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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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곳이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말해준다는 한 아파트 광고처럼
우리는 집이 자본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전락해버린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집이란 태아에게 엄마의 자궁이 전부인 것처럼 우리에게 휴식과 안정을 제공하는 가장 기본적인 보호막이자 정서적 공간이기도 합니다.
그러하기에 설령 살던 집을 떠나게 되더라도 기억이란 저장고에서는 영원히 살아 숨쉬며 우리의 내제된 감성의 근간이 되고 평생을 통해서 기억되는 것이겠지요.
이번 <도시의 풍경- 집을 말하다1>전은 각각의 예술분야에서 ‘집’이라는 철학적 소재를 완성도 높은 결과물로 보여주고 계신 두 작가님의 만남을 통해 다시 한 번 인간이 중심 되는 집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송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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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정 작가노트

부와 권력을 상징하는 고층건물이지만 반짝이는 유리창의 화려한 모습은 아니다. 건물의 짓고 있는 모습을 배경 없이 캔버스 한 가운데 흐리게 그림으로써 어디에도 어울림 없는 단지 공사중인 건물로 표현하였다.
이러한 건물은 실제 도시 곳곳에 아무렇게나 우두커니 서 있다. 마치 도시의 많은 사람들 속에 각자가 가진 고독감처럼.
아파트와 집은 구분된다. 아파트는 최소한의 공간으로 도시생활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네모난 공간이다. 대규모이고 집약적이며 단절된 공간이다. 집은 어휘자체에서 아파트라는 단어와는 다른 모습이 연상된다. 삼각지붕과 작은 마당이 있는 아늑하고 평온한 곳이 집이다.
<아파트-집>은 실제 아파트나 빌라의 지붕에 주목하여 작업하였다. 아파트이지만 꼭대기는 마치 주택의 지붕처럼 꾸며진 모습에서 아파트가 가진 단절과 냉랭한 현실의 모습을 아늑한 집으로 보이게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김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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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근 작가노트

산복도로. 도로라고 하는 것이 본디 사람과 차의 왕래를 위해 땅위에 만들어진 길을 뜻하기에, 산복도로란 산 위에 만들어진 길 외에 따른 뜻은 없다. 하지만 부산 사람에게 산복도로란 사전적인 뜻보다는 훨씬 다른 정서적 기억을 포함한다. 혈관처럼 얽히고 설킨 골목마다 어려웠던 시절 부모 형제들이 흘린 땀과 눈물이 고스란히 묻어있기에, 산복도로는 단순한 지명을 넘어 부산사람의 삶의 애환과 애증이 몸의 기억으로 남아 있는 고향의 원형 같은 곳이다. 부산의 산기슭에 삶의 터전을 만든 서민들에게 산복도로는 그렇게 각인되어 있다.
그 산복도로 한켠에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중 하나인 좌천아파트가 있다. 성북고개 인근에 위치한 이 아파트는 합리적 효율성을 강조하던 근대화 과정에서 만들어진 아파트로 처음 지어졌을 때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아파트라고는 하나 지금의 고층 아파트와는 사뭇 다르다. 복도 양쪽으로 약 열 평 정도 크기의 집들이 도열하듯이 마주보고 두 군데의 출입구를 통해 계단을 올라가면 복도 중간에 공중 화장실이 있다. 주민들의 말을 빌리자면, 40여 년 전 입주 당시에는 전기와 수도도 없이 시멘트 골조만 있는 상태에서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곳에서 장판을 깔고 도배를 하고 연탄을 피워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좌천아파트는 그 곳 주민들의 일상과 경험이 투영된 공간으로써 삶의 양태를 드러낸다.

산복도로 다시보기라는 프로그램으로 좌천아파트를 찾았다. 아파트 주민들을 대상으로 인문학과 사진 강좌를 하고, 주민들이 자신의 삶과 시선을 직접 사진으로 찍어 전시까지 하는 프로그램이다. 원도심 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지역성을 기반으로 하는 공동체의 의미를 찾는 것이 목적이다.
군데군데 페인트가 벗겨진 외벽, 어두컴컴한 복도, 계단 입구에 누군가가 갖다놓은 낡은 나무의자, 아파트 옹벽사이에 걸린 빨래. 다시 찾은 좌천아파트는 놀랍게도 예전의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 30여년 전 인근의 학교를 다니면서 익숙하게 봤었던 모습들이다.
공간이 더디게 변하다 보니 그 곳에서 사는 사람들도, 삶의 도구도 과거의 시간을 품고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의 삶에 적응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생경한 모습이다. 경험하지 못해 낯선 것이 아니라, 예상치 못한 낯섬이다. 불시에 다가온 낯섬은 곧 기원에 대한 기억의 회로를 작동시킨다. 검붉은 고무 물통, 파란 슬리퍼, 창문 틈의 장독, 나무선반에 올려진 양은냄비. 어디선가 본 듯한 익숙한 풍경이다. 손때가 묻어있는 가재며 도구들은 주민들의 삶의 모습을 여과 없이 전해준다. 사진이 공간과 시간의 한 단면이라고 한다면, 손때가 묻어있는 가재며 도구들은 경험과 기억의 집합체이다. 사람의 기억은 홀로서는 완벽하지 않다. 선명한 기억도 시간이 지나면 각색되고 탈색되어 종국에는 잊혀 지기도 하지만, 경험의 흔적이 남아있는 사물의 도움으로 기억을 되살릴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사물의 기억은 나의 기억과 동등하다. 사진이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의 기억을 환기시키듯이 내가 바라보는 좌천아파트의 부엌과 방, 그리고 복도는 나의 또 다른 기억을 촉발시킨다.
그곳을 나의 눈으로 바라보고 또 렌즈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사진으로 담았다.
공간과 사물의 단순한 외형보다는 일상 속에 켜켜이 쌓여있는 삶의 기억들을 담으려하였다.
촬영하는 순간,
눈부신 햇살을 맞으며 나의 유년 시절로 돌아갔다.//이동근//

– 장소 : 아트스페이스 누리봄
– 일시 : 2016. 5. 11 –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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