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찬미展(스페이스 만덕)_20161111

//작가 노트//
나는 어린 시절부터 불안에서 기인한 수면장애를 겪었다. 그리고 그 원인을 모두 나의 예민함으로 결론지었다. 이런 날들이 반복되면서 당연시 될 때 이미 불안에 중독되어버렸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그리고 그 불안이 극으로 치달았을 때, 존재의 무기력함을 직시하였고 주체인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울음뿐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음을 깨닫고 난 후, 나는 불안에 대해 조금은 덤덤해졌다.

내가 직시한 울음은 불안 속 살아 숨 쉬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이자 최대의 행위였다. 지금까지 나는 불안은 컨트롤 할 수 있다 생각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숨을 쉬고 하루의 시작과 끝을 반복하며 살아간다.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강제되는 매일은 눈을 뜨고 생활을 지속하는 한 계속된다. 내가 내 눈으로 인지할 수 있는 빛이 존재하는 시간 동안 나는 무언가를 생산해내야 한다. 빛이 단절된 수면의 시간은 온전한 휴식을 위한 시간이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는 날들이 대부분이다.

내가 주로 산책하는 산책로 골목에는 시멘트 벽에 박혀있는 벽돌 사이로 자라나는 잡초가 있다. 한참 울음에 대해 작업을 하던 시기에 마주한 이 아이들은 24시간 조용할 틈이 없는 도시의 소음과 공해를 온 몸 그대로 맞이한다. 그 엄청난 자극에서도 꿋꿋이 자라나는 잡초들을 보면서 삶의 가치나 기준은 모두 무의미해졌다. 매일 주어진 시간을 최선을 다해 필사적으로 살아내는 잡초들은 결국 불안을 온몸으로 맞이하며 살아내는 우리들의 삶과 별반 다를 바 없다.

불안에서 파생된 중독은 울음을 발생시키고 이 울음은 존재가 불안에 대처할 수 있는 최소한이자 최대의 행위이다. 울음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음을 직시할 때 존재의 무기력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결국 살고 싶고 살아내고 싶은 의지가 반영된 삶에 대한 반증이라 생각한다. 숨이 멎을 것 같은 순간에도 나는 여전히 숨을 쉬고 있었기 때문이다.

울음은 호흡이자 살아있음의 표현이다.//작가 노트 중에서//

– 장소 : 스페이스 만덕
– 일시 : 2016. 11. 11 – 11. 20.

추PD의 아틀리에 / www.artv.kr / abc@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