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환展(미광화랑)_20170210

옥영식(미술평론가)

서상환에 관한 글을 쓰려고 자료를 뒤적이는 가운데, 누렇게 빛이 바랜 서류봉투 속의 낡은 편지 뭉치가 눈에 들어왔다. 얼마 만인가. 군 복무 중이던 필자에게 그가 마치 연인에게 쓰듯이 열심히 보낸 글과 그림이 담긴 편지들이다. 그 중에서도 오늘의 그를 예견이라도 한 듯한 한 장의 편지가 유난히도 눈길을 멈추게 했다.

형께, 나의 이 가느다란 회화관을 보내오니 나의 관이랄 수 없는 이 형체를 진단해주기 바랍니다. 간단히 추린 것이옵니다.
“생활은 미(美)고 미는 ‘나’ 라는 가능성이다. 이 가능성은 상대적이다. 절대자를 닮으려는 발버둥, 이것이 나라는 가능성인 것이다. (중략) 신을 향한 신앙으로 참 자유를 얻은 기쁨, 이것이 존재의 가치인 동시에 가능성인 것이다. 이 가능성은 자유다. 자유인의 생활, 이것이 미다. 그러므로 미는 시대를 초월한 영원한 표상(表象-原形)이어야 한다. 이 원형은 ‘진리=생활=미. 미=나’ 라는 가능성 (하략)” 1966. 9. 17

노트에 검은색 만년필로 또박또박 정성을 다해 쓴 필치가 지금 막 받은 편지처럼 생생히 가슴을 적신다. 이십 대의 정열로 무슨 말을 못하며, 무슨 꿈을 그리지 못하겠느냐 싶지만, 그가 토로했던 회화관의 진실성은 36년이란 세월이 흐른 오늘에 와서야 현실로 드러나고 있으니, 그의 신념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작품의 근간, 신앙심과 루오에 대한 존경심

이처럼 서상환의 생활과 작품의 원동력은 그의 말대로 “신을 향한 신앙심으로 참 자유를 얻은 기쁨” 에 있으며, 신앙과 생활과 예술이 삼위일체화 되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신을 향한 신앙은 그를 기독교에 귀의하게 했으며, 신학교에서 신학공부를 하도록 했고, 기독교 미술에 대한 간절한 발원으로 자생적인 성상화(Icon)의 독보적인 경지를 개척하게 하였다. 이와 같은 운명적인 그의 선택은 이미 어린 나이인 중학교 2학년 때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림을 그리게 해달라” 라는 서원기도에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기독교 미술을 향한 길, 이 길은 작가의 길로서는 처음부터 외딴 곳으로 향해 가는 외로운 길일 수밖에 없는 것임과 동시에 한편으론, 그만의 독자성을 지닌 예술의 세계를 진작부터 예고하는 셈이었다.
특히 한국 미술계에 있어서 기독교 미술이 차지할 수 있는 자리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고, 서구 모더니즘미술에서도 이미 기독교 미술이나 도상의 전통을 해체한 이후라서, 이에 편승한 한국 현대미술의 기류 속에서 기독교 미술을 들먹이는 것은 자칫 시대착오적인 발상으로 간주될 수 있는 여건이기도 했다.
더구나 개신교의 경우 종교개혁에 의해 비판받았던 성상에 대한 우상화 금기는 여러 가지 오해와 시비를 안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그러니 그의 작품생활은 시련과 고뇌로 점철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잠시 중등학교 미술 교사(1967~76)을 맡은 것 말고는 달리 생활의 방편을 갖지 않고, 오직 작품생활로 가족의 생계를 이어오는 가운데 걸어온 남모를 애환들은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가 아니었으면 극복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학연과 인맥으로 얽힌 미술계의 구조로 볼 때도 그는 외톨이일 수밖에 없었다.
경남미술원에서 조목하 • 김봉기 • 김종식에게 사사받은 것 외에는 정규미술학교를 다닌 적 없이 독학으로 뜻을 세운 작가의 길은 가히 입지전적인 삶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에게 정신적인 지표와 가르침을 준 화가는 부산의 대표적인 1세대 토박이 작가 김종식(1919~88)이었으며, 특히 루오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흠모하였으며, 신학교 졸업논문으로 <루오 미술에 나타난 그리스도상 연구>를 쓰기도 했다. 그가 특별히 루오를 좋아하는 원인은 그가 종교화가라는 데 그 이유도 있지만, 그가 긋는 선인 한 획 한 획이 기도하는 심정을 말하는 것 같고, 그가 그린 주제인 그리스도 • 죄인 • 창부 • 어릿광대 등에서 인간의 근원적인 질문을 보았고, 이 근원적인 질문이 결국 자신을 구원하고 나아가서는 인류를 구원하는 기호에까지 이른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서상환의 굵은 선묘를 주로 한 반추상의 형상과 <비아돌로로사(슬픔의 길)>를 비롯한 여러 권의 흑백 목판화집도 어쩌면 루오의 화풍과 판화집 <미제레레>에 버금가는 작품의 성향을 은연중에 선망하여 보여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체험과 고백의 성상화

그의 작품의 본령이랄 수 있는 이른바 성상화(聖像畵)가 본격화된 것은 <서상환 ICON화집>(1980) 발간과 함께 한다. 그리고 그 첫 계기는 <구도자>(1978) 연작이며, 화면의 중심으로부터 방사선으로 퍼져 나오는 ‘빛 이미지를’ 표출한 것으로, 기도와 신앙생활로부터 얻은 심신의 균형과 화평, 영적인 개안과 각성상태, 이른바 ‘성령체험’을 시각화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이후에 그는 밀교적인 명상의 만다라와 조우하여 화면을 마치 하나의 인체나 탑(집)으로 구조화시킨 일련의 ‘만다라 이미지’를 시도한다. 탑(塔)이 우주나 세계를 상징하며, 인체와 집과 구조적으로 상통한 동일성의 체계를 지닌다고 볼 때, 그의 만다라 이미지는 자신의 인체(개체)를 소우주나 세계로 자각하는 자아 발견의 기쁨(내재하는 신-성령)이 조형화 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만다라 이미지’는 앞서 있었던 ‘빛 이미지’와 융합되어 그의 성상화의 근간이랄 수 있는 ‘간구자(懇求者)이미지’ 로 수렴 • 종합되어진다.
이즘에는 그는 역사 속에 종교가 그 명맥을 유지하려면 문화적인 면을 중시하여야 하며, 특히 그 민족의 문화를 무시하고는 존재할 수 없음을 인식하고, 한국인의 심성에 내재하고 있는 미의 유산들인 전통문양, 민화, 고미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자생적인 성상화 만들기’ 에 착수한다. 그리고 이 단계에서 그의 성상화는 오늘날 한국인이 당하는 고난 속에 내재해 계신 몸으로 구체화된 성육신(成肉身)으로 귀결되고, 고난 현장에 핀 ‘피꽃(血花)’ 으로 이미지화 된다.
그가 형상화한 피꽃인 ‘간구자 아이콘’ 은 그가 터득한 여러 가지 종교적 상징기호들로 상호 결합되어 하나의 독특한 시각적 형상구조를 이룬 것으로, ‘구원의 기호’ 로서 작가 자신의 신앙적 고백(간절한 기도와 진리 표현)이라고 한다.
간구자 아이콘은 전체적으로 마주보는 대칭적 형상으로 수직적 구도를 취하고 있으며, 상향성과 하향성의 두 가지로 대별된다. 그리고 수직구도를 삼등분하여 윗부분은 천상(하늘, 聖)으로 영광과 부활의 자리로, 꽃 • 십자가 • 태양 • 달 • 별 등 빛 상징체의 형상을 배치하고, 아랫부분은 지상(땅, 俗)으로 고난과 고통과 죽음(자기헌신)의 자리로, 무릎 꿇고 엎드려 기도하는 인물 • 기원하는 자태의 손 • 타오름의 촛불 • 교회 • 마을이 배치되며, 가운데 부분은 물고기(익스듀스-예수) • 맴돌이 원 • 태극(알) • 배아(배태한 생명체) • 빛나는 촛불 • 결합의 인물상 등 양극의 통일성과 조화성을 나타낸다. 결과적으로 고난으로부터 화평의 단계를 거쳐 영광에 이르는 과정을 표상하고 있는 셈이다. 하향성의 경우에는 윗부분은 은총과 거룩함의 자리로, 하향하는 빛과 큰손 • 큰 가슴이 배치되고 있으며, 아랫부분은 기도하는 인물 • 주검들 • 마을 • 식물들이 배치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대개 각 부분의 형상이 상호 연결되어 여러 가지로 변용되지만, 전체적으로 보아 하나의 통일적 표상체가 되는데, 한 그루의 나무(우주목, 생명체)이거나, 좌정한 인물, 미지의 얼굴(여호와, 하나님)로 현상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신학적 미학의 가능성

최근에 이르러 그는, “인간의 언어를 초월한 신의 언어이며, 의식을 초월한 무의식의 언어인 방언” (「방언의 미학」 김명수 • 경성대 신학) 현상이 나타남에 따라, 방언을 그대로 받아 쓴 비형상의 자동 기술적인 서체적 추상화의 선화(線畵)를 보이고 있어 새로운 단계에 접어 든 것으로 주목된다. 김명수에 따르면, 방언과 관련한 그의 작품은 고정된 형과 틀을 해체하면서 존재의 뿌리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의 기운을 스스로 그러한 자연의 모습으로 형상화한 것으로 예술의 한계를 초월하여 인간이 자기 존재의 깊이에서 신과 해후할 수 있는 길을 우리에게 제시한 것으로 보고 있다.
타고난 성실함과 장인적 체질을 지니고 회화 • 도조 • 도자 • 도화 • 테라코타 • 목판화 • 판각 등 분야에 구애됨 없이 넘나들며 무수하게 펼쳐 보인 서상환의 자생적인 기독교 성상예술의 성과물들은 한국미술이 미처 예기치 못했던 영역의 수확이며, ‘신학적 미학’의 가능성을 열어준 것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월간 ‘아트’ 2002, 8월호 P 122~125에서//

– 장소 : 미광화랑
– 일시 : 2017. 2. 10. –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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