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봉규展(갤러리 다임)_20170320

//작가소개//
임봉규는 1947년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5형제 중 셋째로 태어나, 1968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를 다니다가 독일로 유학을 갔다. 독일 베를린 미술대학(1984) 및 동 대학원(1987)을 졸업하였으며, 석사학위를 위한 독일의 DAAD장학금을 받은 바 있다. 서울, 부산, 베를린, 도쿄, 레이캬비크 등지에서 32회 개인전을 가졌으며, 뉘른베르크 국제화랑협회전(1986), 창작과 인용전(1992), 한국미술‘97인간,동물,기계전(1997)등 국내외 기획전에 수차례 참가하였다. 킬미술제’83(1983)에서 수상, 여성의 찬미전(1985)에서 대상을 수상하였으며, 국립현대 미술관, 부산시립 미술관, 홍익대학교 미술관, 금호 미술관, 아라리오 미술관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화가 임봉규는 70년대 말과 80년대 초 Heftige Malerei(격렬하고 거친 그림) 즉 신표현주의의 산실 Berlin에서 공부한 거의 유일한 한국인이다. 거칠고 격렬한 회화라는 이 신표현주의는 베를린 미대 훼디케교수의 교실서 싹트기 시작하여, 그 유명한 신표현주의의 기라성같은 라이너 훼딩, 핼무트 미댄도르프, 살로메, 베른트 찜머등을 길러낸 곳이다. 임봉규는 바로 이 훼디케교수를 스승으로 하여 80년대 격렬한 진동의 원산지 베를린 → 베를린 미대 → 훼디케교수로 이어지는 신표현주의의요람에서 유학하는 행운을 누리게 된다.

신표현주의의 진액을 고스란히 섭취할 수 있었던 그는 1986년 ‘훼디케 크라스展’에 출품된 작품에서, 독일의 가장 저명한 미술평론가인 하인쯔 오프로氏부터 타게스 슈피겔紙에 “이러한 작품은 그 어느 예술사에서도 볼 수 없었던 뛰어난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게 된다. 이어 그는 ‘킬 미술제83’에서 수상을 필두로 1985년 베를린市 ‘여성의 찬미전’에서는 대상을 수상한다. 이렇게 독일 미술계에 탄탄한 자리매김을 한 그는 1989년 당시 부산여자대학교(현 신라대학교)에 교수로 초빙되어오기까지 10여회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수많은 주요 기획전에 초대되든 등 작품 활동을 활발히 한 작가이다.

임봉규는 서술성(敍述性)이 강한 표현주의적 작업과 변형 캔버스를 이용한 색면추상을 동시에 전개시켜 왔다. 때문에 그에게 있어서 캔버스는 확인하고 ‘인증’해야 될 대상인 동시에 끊임없이 해체하고 극복해야 될 대상이다. 캔버스의 평면성과 사각의 테두리는 경계와 한계임이 분명하지만 그것은 또한 회화(繪畵)가 회화이기 위해 규범적으로 준수해야 할 기본조건이기 때문이다.

캔버스라는 한정된 경계를 인지시키는 동시에 그 한계를 해체하기 위한 방법적 시도이다. 이것은 과거 인상주의 회화에서 마네가 포플러 나무의 상단을 잘라버린 것과 같이 고전적인 시도이지만, 이젤페인팅의 매체가 편평하고 테두리가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회화표면의 편평함을 강조하며, 테두리 안에서 연장되는 형태를 잘라서 캔버스의 한계가 존재함을 보여주고 있다. 작품내의 여러 가지 회화적 요소들을 주어진 형태와 짜 맞춤으로써 캔버스의 형태가 직사각형임을 강조하여, 이젤페인팅의 존재론적 조건에 적합함을 나타내고도 있다. 또한 말레비치나 몬드리안, 그 밖에 많은 추상 화가들이 추상미의 구성요소에서 색이나 면, 선등이 가지는 순수함과 완벽성, 조화, 균형에 초점을 둠으로 사람들을 심오하게 감동시켜 정신적 위안을 주었음에도 착안하고 있다. 그들이 비록 근대세계를 위한 이성적(理性的) 구원은 제시하지 못했다 하드라도 그 형태의 단순함과 완벽한 균형감각, 찬란한 구성은 우리를 정신적으로 위로해 주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는 또한 신표현주의 화풍과 동양적 감수성의 접목 하에 새로운 에로티즘(erotism)미학(美學)을 작업 속에 꾸준히 천착(穿鑿)해 오고 있다. “에로티즘이야말로 가장 본질적인 인간의 문제”라는 인식 속에 30여년을 한결같이 ‘알몸의 美 ’를 연구해 온 것이다.//갤러리 다임//

– 장소 : 갤러리 다임
– 일시 : 2017. 3. 20. –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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