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영展(서린 스페이스)_20170429

‘꿈과 환상을 부추기는 현란한 꽃들의 군무’

미술평론가 신항섭

강주영의 최근 작업은 마치 실제의 공간처럼 보인다. 앞뒤로 바짝 붙어 있는 상황인데도 거리감이 명확히 느껴지는 것이다. 2차원의 평면공간에서 일어나는 가공된 3차원의 세계가 아니라 현실 그 자체나 다름없이 보인다. 아니,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형태가 너무도 선명한 나머지 HD TV 영상을 보고 있는 듯싶다. 일순간의 착시현상에 의한 느낌과는 다른 실제상과 마주하고 있다는 느낌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적어도 회화에서 이처럼 선명한 이미지는 본 일이 없다.

어쩌면 그의 최근 작업에서 보여주는 표현기법은 3D 영상이나 HD TV에서 착안했는지도 모른다. 사실적인 공간감이라고는 하지만 현실과는 다른 가상의 이미지, 즉 삼원색의 색채 소자(픽셀)를 조합하여 인위적인 색상을 구현하는 디지털 이미지에 합당하기 때문이다. HD TV에서 보는 형태 및 색채의 명료함은 분명히 현실과는 다르다. 삼원색을 기본으로 하는 HD TV 영상은 색채 소자로 구성된 이미지이기에 형태 및 색채의 순도가 실제보다 월등히 높다. 여기에 쓰이는 색채 소자는 자체적인 발광체이기에 당연히 밝고 명료할 수밖에 없다.

그의 작업에서 볼 수 있는 선명한 이미지는 순색의 아크릴 물감을 사용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지만, 이와 함께 교묘한 색채 배열 및 대비와도 관련이 있다. 물감의 색채는 저마다 고유의 색상을 가지고 있는데 색채를 혼합하지 않은 상태, 즉 튜브에 들어 있는 물감 자체의 색채가 순색이다. 순색은 다른 색상의 색채와 혼합되지 않았으니 순도가 100%이다. 따라서 순색으로 그린 그림은 채도와 명도가 높고 발색이 선명하다. 이에 비해 현실에 존재하는 물상의 색채는 자연이 만들어낸 색채이기에 순색의 물감보다 발색이 낮을 수밖에 없다.

작품에서 꽃은 물론 나무줄기와 나뭇잎 하나하나가 도톰하다. 다시 말해 물감을 두텁게 칠함으로써 부조에 근사한 질감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바탕은 검정색이고 그 위에 차례차례로 꽃과 이파리와 줄기를 얹는다. 단순한 묘사방식이 아니라 두터운 물감을 한 겹 쌓아올리는 식이어서 이미지가 도톰하게 올라와 보인다. 이와 같은 표현방식은 물감을 얇게 발라 형용하는 전통적인 묘사기법과는 확실히 다른, 보다 입체적인 효과를 나타낸다. 여기에다 색상의 차이, 즉 진출하는 색과 후퇴하는 색을 적절히 배치함으로써 입체적인 공간감이 배가되는 것이다.
그의 작업은 아름다운 꽃들이 숲을 이루는 원시적인 자연풍경 어느 한 곳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듯싶다. 형형색색의 꽃과 나무와 새와 나비가 한데 어우러진 도원경을 연출하고 있기에 그렇다. 그야말로 색채의 향연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현란한 색깔과 저마다 다른 모양의 꽃들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난삽하지 않은 질서정연한 시각적인 이미지를 보여준다. 수많은 화가들이 아름다운 꽃들로 넘쳐나는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묘사했지만 그의 작품은 아주 특별하다. 한마디로 밝고 맑고 경쾌한 시각적인 이미지는 꿈과 사랑과 낭만과 환상의 감정을 자극한다. 이상향에 대한 꿈과 환상을 심어주는 것이다.

이는 아름다운 조형적인 질서를 부여한 결과이다. 실재하는 물상을 재현한 듯싶지만 실제로는 그의 상상력이 조합해낸 이상적인 세계일 따름이다. 그렇다고 해서 낯선 이미지가 아니라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실상으로서의 꽃과 나무와 새와 나비로 구성된 자연의 이미지인 것이다. 그런데도 그의 그림은 실제보다 더 아름답고 환상적이다.

그의 그림은 현대회화가 잊고 있는 시각적인 즐거움과 감동을 외면하지 않는다. 깊고 무거운 철학적인 사유의 산물이 아닐지라도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통해 생명의 신비를 주관하는 대자연의 질서 및 법칙을 깨닫게 해준다. 비 개인 날 청명한 햇살 아래 다투어 피어나는 꽃들의 향연을 연상케 하는 가하면 마치 무대를 가득 채우는 현란한 군무를 보고 있는 듯 흥겹고 발랄하다.

생명의 리듬으로 충만해서 꽃들의 향연에 동참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 정도이다. 그렇다. 그의 그림은 생명의 환희, 빛의 광휘로 넘쳐 단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절로 흥겨움에 빠져든다. 이러한 그림의 정서는 자연미에서 느끼는 감동과는 또 다른 종류의 미적 흥취이다.//신항섭//

– 장소 : 서린 스페이스
– 일시 : 2017. 4. 29. –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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