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미경展(미광화랑)_20171124

전미경의 바다, 심리적인 그러나 사회적인

이영준(큐레이터)

전미경은 오랫동안 파도의 너울을 소재로 작업을 해왔다. 무엇을 그리고 있는지가 너무도 뚜렷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작가의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는 일은 그렇게 손쉬운 것은 아니다. 그녀의 작업은 작가 자신도 언어화하기 힘든 깊은 심연을 드러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작가의 오래된 상처에서 기인한,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심리적인 불안이나 내상일 수도 있으며, 이를 방어하기 위한 회피의 기제일 수도 있다. 그래서 작가의 작품에는 단순히 풍경(Landscape)으로 이해할 수 없는 또 다른 무엇이 존재한다. 어떤 이유로든 작가가 하나의 소재에 깊이 천착하는 것은 일종의 동일시(Identification) 감정을 대상에 투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미경이 바라보는 ‘너울’은 그런 면에서 매우 ‘심리적’이다.

작가의 작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좀 거슬러 올라가야만 한다. 작가는 1990년대 초반까지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을 드러내는 작업을 해왔다. 이 작업은 주로 콜라주로 제작되었는데 부정적인 현실에 대해 매우 직설적인 어법으로 사회 비판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으며, 흔히 민중미술 혹은 비판적 리얼리즘이라 명명되는 맥락의 작품들이었다. 그런데도 매우 특이한 점은 이러한 작품과 동시에 반복적인 패턴으로 무한한 공간을 그리는 작업을 병행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한없이 하나의 점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옵티컬(Optical)적인 작업은 마치 끝을 알 수 없는 수렁처럼 느껴진다.

한동안 이러한 작업은 다양한 형태로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다. 개인적인 판단이지만 이러한 옵티컬적인 회화는 작가가 현재 진행하고 있는 파도를 그리는 작업의 원형처럼 느껴진다. 왜냐하면, 현실 비판적인 작업에서는 서사구조가 뚜렷하지만, 이 작업은 어떠한 이야기 전개도 용인하지 않는, 그 자체로 심리적인 공간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작업 스타일과 형식적으로는 전혀 다르지만, 심리적인 정서를 공간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비교의 대상이 된다.

작가는 이 작업을 왜 했는지 알 수 없다고 했지만, 아주 오랫동안 작업을 지속했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부터 현실 비판적인 작업과 심리적인 공간을 그리는 작업은 서서히 사라지고 ‘바다’에 주목하기 시작한다. 특히 2000년에 그려진 <자갈치의 새벽>은 작가의 작품 중 가장 주목해야 할 주요한 작품이다. 바다 한가운데 배가 떠 있고 화면의 전면에 두 남자가 고개를 떨구고 있는 작품이다.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한국은 국제구제금융 위기와 이데올로기적인 혼란을 겪고 있던 시기이다. 이 작품에서 흥미로운 점은 전면에 등장하는 두 사람보다 배경으로 처리된 바다에 더욱 주목하며 그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작가는 아마도 IMF로 실직한 두 사람 사이에 놓인 그 처연한 바다를 보았을 것이다.

이후 작가는 바다를 정면으로 응시하기 시작한다. 물론 그 전에도 바다를 그렸던 작업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일관된 작업 경향을 유지해왔던 시기는 대략 2000년대 이후부터다.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작가는 물 위에 빛나는 아름다운 윤슬을 그리거나 무심히 반복되는 파도의 형상을 따라가기도 하였으며, 거친 파도 혹은 미세한 바람에 일렁이는 잔잔한 호수와 같은 바다를 그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작가가 만들어낸 바다의 형상들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다. 작가의 작품은 심리적인 회화로 읽히지만 개인적인 내면의 상처와 사회적인 맥락이 다양한 층위를 이루며 집적된 회화이다. 다시 말해 지금은 화면 밖으로 사람이 사라졌지만, 그녀가 바라보는 바다는 2000년 당시 <자갈치의 새벽>에서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했던, 사람들의 좌절과 슬픔을 온전하게 받아주었던 그 어머니 같은 바다였다.

그래서 그녀의 작품이 끝없는 깊이의 심연을 드러내고 있는 이유도 ‘심리적이지만 사회적인’ 사람의 마음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작가가 그리고 있는 너울의 모습들은 힘겨운 시대를 건너온 자신의 모습과도 무척이나 닮았다.//이영준//

– 장소 : 미광화랑
– 일시 : 2017. 11. 24. –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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