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로잉 : 종이를 향한 폭력과 열정展(갤러리 604)_20180511

//전시설명//
갤러리604는 프랑스의 발랑시엔 Valenciennes에 위치한 아쉬 뒤 시에즈 L’H du Siège와 함께 [드로잉 : 종이를 향한 폭력과 열정 Drawing : Violence and passions of the paper]를 준비했다. 이번 전시는 유럽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다섯 명의 작가 Aristide Bianchi, Claude Cattelain, Dominique De Beir, Frédéric Messager, Patrice Pantin이 참여한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종이를 표현수단으로 사용한다는 개념으로 드로잉을 정의하고 있다. 또한, 많은 작가들은 수채화, 파스텔, 에칭 등 다양한 방법으로 종이를 이용하여 작업을 한다. 이 경우, 종이는 그저 작품의 재료가 되는 매체에 불가하다. 하지만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다섯 명의 작가들의 작품에서 종이는 작품의 주제와 작가의 생각을 표현하는 필수적이고 물질적인 요소이다. 종이는 부드러움과 격렬함, 성찰과 열정, 온유함과 잔인함 사이에서 끊임없이 오가는 성질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종이가 부수적인 요소라는 개념에서부터 이를 초월한, 작가의 의도에 부합하는 궁극적인 오브제로 진화하며 능동적인 존재로 되기까지, 이들에게 종이는 그 자체로 독립적이며, 주제가 되는 동시에 변화의 대상이며 과정이고, 또한 그 자체로서 존재한다.
이번 전시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드로잉과 종이의 정의를 되짚어 볼 수 있는 기회를 관람객에서 선사하고 있으며, 이들이 고안하고 구현한 드로잉 작품들은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던 드로잉의 한계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며 드로잉과 종이에 대한 새로운 역사를 각자의 방식으로 다시 이해하고 써 나간다.
Aristide Bianchi (1977, 벨기에)는 먹물, 연필, 물감 등을 사용하여 대형종이의 양면에 선과 획을 그린다. 그뒤 스텐리 나이프로 종이의 앞면과 뒷면을 분리하여 박피한다. 박피된 종이의 질감은 너무 얇아진 나머지, 거의 투명해지고 반투명하다. 희미한 잔주름들과 양면의 절개로 인한 종이무게의 불균형을 보여준다. 작가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종이의 ‘인프라신(infrathin_마르셸 뒤샹의 얇음보다 얇음)’ 두께를 실현하였다.
Claude Cattelain (1972, 벨기에)은 불을 이용한 드로잉을 제작한다. 작가는 ‘연소드로잉’ 연작들이 “장시간의 과열되고 긴장된 작업”의 잔재라고 말한다. 그는 대형 종이 위에 혼자 나체로 누워서 긴 성냥불을 사용하여 자기 신체의 윤곽을 지면에 그린다. 종이가 뚫릴 것만 같은 자국, 날카롭게 탄 흔적, 그을린 자국 등을 종이에 새기며 최종적으로 안정된 형태가 될 때까지 며칠 정도 계속 지속되며 여러 개의 중첩된 실루엣을 낳는다. 이러한 과정에서 작가는 화상의 위험에 노출되며 예술가, 도구, 종이는 모두 희생을 행하는 행위자임과 동시에 희생의 대상이 된다.
Dominique De Beir (1964, 프랑스)는 종이라는 재료의 저항력과 파손성을 활용하여, 종이를 뚫고, 치고, 할퀴고, 벗겨내고, 뒤집는다. 1994년 점자를 배우면서 예술세계에 입문했다고 얘기하는 작가는 종이의 두께를 가시화하여 잘 보이지 않는 종이의 뒷면의 존재를 우리에게 일깨워주려 한다. 자연 상태거나 왁스를 입힌 나뭇잎에서부터 카본지, 종이 상자 등의 폐품을 이용한 다양한 소재에 도전하며, 손과 발, 또는 목적에 부합하도록 제작되거나 버려진 도구를 이용하여 뚫고, 자르고, 파고, 벗겨내는 등 종이를 공격한다. 이러한 폭력성을 띠는 행위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목적은 앞, 뒷면에 색의 대비를 주어 그 두께와 뒷면을 밝혀내고 시사하기 위한 것이다. 이 과정을 거친 결과, 작품은 별이 빛나는 하늘, 미지의 대륙지도, 스테인드글라스의 창과 같은 이미지로 탄생된다.
Frédéric Messager (1970, 프랑스)는 종이에 얼룩을 문지르고, 찢고, 뜯고, 구겨서 작업한다. 롤 형태의 대형 종이 위에 먹물이나 수채물감을 흘려 퍼트리고 부분적으로 디자인 문양, 얼룩, 선, 색띠 등을 그리거나 디지털 과정을 통해 그래픽 작업을 한다. 그리고 이 작업을 접어나간다. 끈이나 클립으로 고정된 종이는 무정형의 독립체로 거듭나며 이 오브제를 손이나 톱으로 구기고 찢어서 공격하여, 그 안에 숨겨진 것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찢어진 틈새와 그 내부는 모습을 드러내며 그러한 폭력성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물은 고혹적이며 아름답고 또한 도자기 같은 느낌마저 준다.
Patrice Pantin (1963, 프랑스)은 종이에 상처를 내고, 열을 가하며, 얼룩을 입힌다. 무광 처리된 종이를 기본으로, 그 위를 투명 접착테이프로 붙여 보호막을 만드는 작업으로부터 시작한다. 커터칼로 보호막을 깊게 절개하지만 종이에는 손상이 없도록 정교하게 골을 만들며, 팽팽하고 빽빽하게 잔물결이 이는 골들을 지면 전체에 그려나간다. 그런 다음 그 위에 모래나 톱밥 등을 올리고 불을 태운 뒤 백색이나 흑색, 적갈색 잉크로 채워준다. 색은 골에 침투하여 보호막이 없는 부분의 아래까지 퍼져나가며 응고된다. 마침내 가늘고 긴 줄에서 얇게 일어난 테이프가 벗겨지고 동맥과, 정맥과 같은 빼곡한 조직들이 지면에 나타난다. 상처와 주름, 그리고 그 골들은 빛을 포착하여 반사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다섯 명의 작가들은 종이를 과감히 훼손한다는 점 외에도 상당부분의 공통점이 있다. 접근방식이 때론 복잡하지만 정확하고, 엄격한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며, 대부분의 경우 작가와 작품 소재와의 접전이 펼쳐진다. 작품에 잠재되어 있거나 혹은 드러나는 폭력성은 작품 창작의 몸짓을 더욱 알차게 하며, 특히 마지막 단계에 있어서는 작가에 의해 항상 제한적이고 절제된 작업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방식들과 더불어, 작가들은 종이에 구멍을 내고, 상처를 입히고, 찢거나 태우고, 훼손함으로써 종이의 속성을 구현하는 데에 한층 다가갔다. 이것은 그간 조명 받지 못했던 종이의 이면, 즉, 종이의 내면에 관심을 가지게 만든다.
‘드로잉’ : ‘폭력’, ‘열정’
이것이 이 다섯 작가들의 독특함을 완성하는 세 가지 요소이다. 수세기 동안 이어진 전통적 의미의 드로잉과 견고하고 간과할 수 없는 현재의 주인공이 된 드로잉, 이 두 가지의 드로잉은 우리의 감성과 의식의 깊이에 도전하기 위해 새로운 전통을 창조해 가고 있다. 이 작가들은 종이가 평면의 수동적인 바탕이 아니라 그 자체로 예술 소재가 될 수도 있고 수많은 다양한 형태로 펼쳐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5월 11일에 열리는 오프닝을 위해 전시 기획자와 전시에 참여하는 5인의 작가들이 내한한다. 이번 전시와 연계된 또 다른 중요한 행사의 일환으로 L’H du Siège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인 GRANDE RESIDENCE 에 갤러리604의 추천으로 부산을 기반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설치작가인 정혜련 작가가 선정되었다. 올해 9월부터 4개월간 프랑스에 거주하며 작업활동을 하고, 그 결과물로 내년 1, 2월 두 달간 L’H du Siège의 공간에서 개인전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젊은 작가를 위한 또 다른 레지던시 프로그램인 RESIDENCE COUP DE POUCE에 부산작가들에게 더 기회를 주고자, 이번 전시의 기획자이자 이 공간의 디렉터인 Philippe Bétrancourt가 부산 체류기간 동안 부산에서 활동하는 젊은 작가들의 작업실을 방문하고 작가들과 소통할 예정이다. 갤러리604와 L’H du Siège는 이번 전시를 계기로 더욱 더 활발한 교류와 활동으로 더욱 좋은 전시와 가능성 있는 작가들의 지원을 위해 협력할 예정이다.//전시설명//
– 장소 : 갤러리604 × Project B6
– 일시 : 2018. 5. 11. – 7. 1.
추PD의 아틀리에 / www.artv.kr / abc@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