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현민展(갤러리 서린스페이스)_20180928

포스트 바우하우스
– 왕현민의 디자인 –

대구예술발전소 소장 남인숙

독일의 바우하우스 운동은 그 전사(前史)로서 영국의 ‘예술공예운동(아트앤크래프트 무브먼트 art and craft movement))’에 대해 설명하지 않고서는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 예술공예운동은 서구에서 전승되어오던 미의 기준이나 사회적인 호감과 합의를 이어가면서도 새롭게 불어닥친 기계화시대 및 대중사회의 요구에 대응하려던 그 시대의 예술운동이다. 예술공예운동은 산업혁명의 여파로 인해 새롭게 요구해 오던 미의 기능이나 기준을 외면할 수 없었던 시대의 산물로서, 19세기 말 치열하게 자기 시대를 고민했던 인문 활동의 생생한 증거물이다.

이 운동의 중심에 윌리엄 모리스라는 사상가가 있는데, 기계가 가져오는 반인간적인 면모와 피상성, 천박함을 비판하면서 오랜 기예 속에 묻어 나오는 전통전인 손맛과 세련미를 유지하고 되살리기 위해 온 생을 바쳐, 공동체의 미적 기준을 고급하게 유지하려던 인물이다. 그러나 윌리엄 모리스는 당장 눈앞에 밀려오는 대중화와 기계화 산업시대에 대한 긴급한 성찰을 뒤로 미루었기에 심도 깊은 자신의 문제의식은 실패한 운동으로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물론 그가 제기한 손의 기술과 미적인 완성도와의 상관성, 손 노동의 가치, 분업이 아닌 협업에 따라오는 기예의 경지와 성과 등은 오늘날도 여전히 의미 있는 질문들이며, 잊지 말아야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 이후, 기계화를 받아들이면서도 실패하지 않을 미적 기준을 고민한 독일공작연맹의 표준화작업은 곧이어 바우하우스 운동의 핵심 매뉴얼로 받아들여져, 바야흐로 미술교육뿐 아니라 디자인의 역사 및 미술사, 예술사의 한 장을 차지하게 될 종합예술운동으로서의 바우하우스 운동이 전개된 것이다. 물론, 이 사건을 기회로 독일의 산업적인 성과도 획기적인 것이었다. 바우하우스 운동의 가장 의미심장한 점은 바로 기계화에 따른 미적 규준을 표준화하고 그것을 받아들였다는 점인데, 이는 그 시대의 상상력이 요구하는 바가 바로 기계미, 단순화에 따른 추상미라는 것을 간파하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런 바우하우스로부터 산출된 디자인 제품은 오늘날에도 뒤지지 않는 미적 취향을 발휘하며 상존하고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디자인의 최고의 가치는 기능적인 완성도 뿐 아니라 기능미를 완성시키는 것으로서의 형식미 역시 최고도에 달해야 한다. 이럴 때, ‘미는 기능으로부터, 기능은 구조로부터’ 라는 슬로건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순수 형식에 따른 미적 가치가 기능과 구조에서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미의 합리성’을 추구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 바, 이 흐름을 추구하고 주도한 역사는 러시아 아방가르드와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삶과 예술의 통합’을 받아들인 바우하우스 운동이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왕현민의 작업에서 이런 바우하우스 정신을 보게 되는 것은 우선 작가의 말에서도 확인된다. “파리의 에펠탑은 건축물의 구조가 훤히 드러나 그 뼈대와 선이 매우 매력적인 건축물이라고 생각하잖아요. 제가 하는 작업 또한 이와 다르지 않아요. 나무를 깎아 만든 가구보다는 나무의 선이 주는 무게의 가벼움, 소재의 비용과 효율을 따져봤을 때, 현재의 모습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요.” (Living Sense, On August 11, 2016) 물론, 조형요소로서 선(線)에 대한 예찬이 강조되기는 하지만 골조(건축물의 뼈대)에에 대한 관심에서 볼 때 왕현민의 작업에는 ‘구조=기능=미=환경(공간)’이 일체를 이룰 수 있는 합리적인. 방안을 찾고 있는 노력이 역력하고, 합리적 방안을 찾는 작가의 노력과 태도에서 우선적으로 바우하우스 정신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왕현민은 바우하우스 정신에 한정되지 않고,, 바우하우스의 정신에 오늘날의 시대정신인 무엇인가를 덧붙이고 있다. 즉 왕현민의 작업은 표준화와 단순미, 기계미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다. 왕현민의 작업에는 구조로부터 품어 나오는 무형의 흐름과 유기적인 바람의 운동과 같은 무엇, 즉 기계미와 단순미, 반복미를 넘어서는 어떤 요소가 있다. 이 잉여의 요소로 인해 주변의 공간을 통합시키는 또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는데 이 점이 바로 표준화에 덧붙는 요소로서, 바우하우스를 넘어서서 오늘날의 시대정신을 작품 속에서 해결한 것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표준화로 시작해서 그로부터 비롯된 구조를 넘어서서, 유기적 형태와 운동까지 이끌어내는 디자인. 왕현민의 디자인 방식은 주변의 공간을 통합해내면서 기존의 한정된 기능에서 벗어나 기능의 적합성을 주변 공간의 통합으로 확장시키고 있다. 가구를 직접 보면 알겠지만, 왕현민의 표준화는 2mm정도 폭의 작은 나무뼈대를 만들어 각각을 리벳으로 엮어내는 방식에 있다. 마치 레고 조립과도 같다. 이 조립은 에펠탑처럼 그 구조를 훤히 들여다 볼 수 있게 조립되고, 모든 무게를 분산시킬 수 있는 공학적인 산물이며 나아가 주변의 공간을 조형적으로 통합하는 디자인이다.

인당뮤지엄에서 마주한 왕현민의 작업은 나무로 만든 고체의 덩어리 같은데 중량감 없이 흐르면서 공간을 리드미컬하게 연주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물결이 일렁이고 바람이 불기도 하는…, 이 울렁대는 덩어리가 목재로 만든 가구들이다. 공간 속의 한 장소를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무게감 없이 날렵하고, 날렵하다고 말하기에는 날카롭지 않고 부드럽고 순하다. 한마디로 우아한데, 가까이 가보면 흐르는 선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 조각조각 이어진 조립물이다. 약간씩의 반전을 가져오는 왕현민의 가구는 말로만 듣던 기본 모듈로 짜인 가구들이고 그 모듈의 조립이 뻔하게 속이 다 보이는 방식인 것이다. 이렇게 기능과 미적인 가치, 디자인과 예술 양자에 다 속하는 듯 그 경계에 놓여 있는 왕현민의 가구는 여러 가지 특징적인 면모를 갖추고 있다.

왕현민의 디자인은 현대적이다. ‘현대적’이라고 할 때, 그 의미는 기계미, 단순미, 반복미를 구현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특징은 기계 사회의 등장 이후, 우리의 미적 환경이 바뀐 뒤의 일이기도 하고, 이 점을 가장 깊이 고민하여 해결하였던 운동이 바로 바우하우스 운동이다. 이런 측면에서 왕현민은 여전히, 그리고 아직도 바우하우스를 잇는 ‘현대적’인 미적 가치를 구현하고 있다. 그러나 더 나아가 왕현민의 디자인은 공간의 유기적인 통합 이라는 오늘날 당대의 상상력을 부여하고 있기도 하다.

왕현민의 디자인은 구조적이다. 골조를 세우는 방식 때문에 그의 가구들을 건축과 같다. 하나의 기본 모듈을 설정하고, 그로부터 거대한 구축물을 구축해나가는 방식은 구조와 건축에 대한 이해, 힘의 분산과 모임의 이해가 충분하지 않고서는 해결할 수 없는 방식이다. 이 점이 중요한 이유는 ‘사물의 구축’이 그

고유의 기능으로부터 비롯되고, 바로 그 기능을 이해하고 구현하고자 하는 고민에서 결과물이 형성되기 때문인데, 이 점은 ‘미는 기능으로부터’ 유래한다는 모더니즘의 오랜 강령에 닿아 있다는 점을 말해주는 것이다. 여기에서 왕현민이 추구하는 디자인의 한 단면이 여실히 드러난다.

왕현민이 보이는 디자인은 조형적이다.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그의 가구들은 얼핏 보아 조형물을 설치해 둔 것 같다. 덩어리로 다가오기도 하고, 구멍이 숭숭 나면서 텅빔과 꽉참의 조형이 잘 어우러진 현대 조각물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또한 덩어리들 자체가 공간 속 공간을 연출하는 것 같아 설치미술의 한 장르로서 공간 전체를 조형의 대상으로 삼는 것 같다. 왕현민의 가구는 일종의 숨 쉬는 조각물처럼 관상과 실용, 일상과 예술의 그 경계에서 스스로 긴장감 넘치는 연출을 만들어내고 있다. 실제로 가구인지 설치물인지 순식간에 식별되지 않는다.

왕현민의 디자인은 실용적이다. 고전적인 발언일지는 몰라도, 내게 최상의 공예품은 건축물이다. 최상의 기능과 미가 결합된 방식, 규모의 문제와 물리적인 감촉 그리고 감각의 한계 등의 미학적인 문제가 종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는 건축이야 말로 공예의 최정상을 차지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혹자는 공예라는 이름에 건축을 포함시켜 불편해할 수 있겠지만, 공예의 말을 그 원천에 따라 다시 한 번 넓혀볼 필요도 있다. 왕현민 작가가 건축물의 골조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그 점을 디자인 해법의 중심에 놓은 것은 왕작가의 디자인이 추구하는 기능이 어떠한 것인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리벳으로 연결된 조형물이자 가구인 그의 작품들은 관절처럼 하중을 적절히 분산시키고 가해지는 무게의 탄력을 고르게 분산시키기 때문에 편안하기도 하고 깊은 안정감을 선사한다. 가구가 갖는 일상 속의 기능이 최대한 발휘되고 있다는 뜻이다.
이상으로 볼 때, 왕현민의 작업은 향후 어떤 방향으로 확장될지, 그 깊이가 어디에 이를지 정말 주목된다. 이 글은 ‘포스트 바우하우스’, 즉 바우하우스 이후 시대에 상응하여 우리 시대의 상상력을 디자인으로 구현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왕현민의 디자인이 지니는 가치와 특징을 드러내려는 목적으로 분석을 시도한 글이다.//남인숙//

– 장소 : 갤러리 서린스페이스
– 일시 : 2018. 9. 28. –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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