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서문//
우리는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사랑과 친밀함이 주는 따뜻함 속에서 안정감을
느끼지만, 그 울타리는 때로 우리를 가두고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다.
김수정, 이진선 두 작가의 작업을 마주하면 그 치열함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삶 속에서 마주하는 사랑의 순간들은 우리를 감싸고 위로하지만, 동시에 관계의
무게와 억압을 함께 내포한다.
가까운 관계는 힘이 되기도 하고, 나를 한정짓는 울타리가 되기도 한다. 울타리는
보호와 속박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지속될수록 우리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감정들로 채워지며, 그것이 때로는 풍요로움이 되고, 때로는
무거운 짐이 된다. 사랑은 우리에게 기쁨과 위안을 주지만, 강요가 되기도 한다.
다정한 걱정과 갈망, 때로는 보이지 않는 비명 속에서 우리는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을 함께 선물받는다. 그 선물은 우리를 성장시키기도 하고, 발목을 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성장기 아이에게 딱 맞던 옷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작아지는 것처럼, 관계 속에서
주어진 역할과 안정감도 어느 순간 우리를 옥죄기 시작한다.
우리는 때로 그 울타리를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동시에 그 안에서 머물기를
원하기도 한다. 행복과 불안, 안정과 억압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린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울타리는 정말 나를 위한 선물일까?
‘나를 두른 울타리’는 이러한 인간 관계의 순간을 담는다. 두 작가는 관계 속에서
스스로를 키워내고, 끊임없이 고민하며 작업을 이어간다. 울타리를 벗어나고 싶어
하면서도 다시 그 안으로 들어가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묻는다. “왜?” 우리는 정말
안전한 울타리 안에 있는가, 혹은 그 울타리로부터 벗어나야만 하는가.
이 작업을 통해 우리는 사랑과 관계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그 속에서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여수현//

//김수정 작가노트//
계속되는 삶 속에서 만나는 사랑의 순간은 애틋함을 동반하다가도, 그 사랑이 이루어지기까지의 과정을 계속해서 곱씹게 한다.
거두는 밤의 시간은 가까운 관계들 속에서 불현듯 찾아오는 사랑의 순간부터 억지로 내민 사랑까지를 돌아보며, 사랑에 관한 불신과 믿음을 다시금 확인해 보는 과정이다.
관계 속에서 원하지 않는 사랑들이 내밀어질 때,
폭력에 가까워진 사랑에 괴로움이 깊어질 때,
그 사랑을 벗어나고자 관계의 울타리를 넘어서기 위해 계속해서 부딪힌다.
쌓여 가는 생채기들에 더 깊은 상흔을 남겨서라도 울타리 밖으로 넘어서고자 하지만,
깊어진 상처가 두터워질수록 계속해서 자신을 곱씹고, 이러한 폭력까지도
사랑이라고 믿어 버리고 만다.
미디어에서 ‘사랑’은 긍정성을 상징하며, 인간관계의 긍정적 측면을 아우르는 언어로 사용된다.
이러한 관계들은 ‘로맨스’로 대표되며, 인간 삶의 다양한 관계를 포용한다.
쉽게 떠올리는 연인 간의 사랑뿐 아니라, 부모와 자식 간의 애정, 친구 간의 우정에서도 사랑은 드러난다.
사랑은 개인 간의 관계를 넘어 사회적 유대를 형성해 소속감, 애사심, 국가에 대한 애국심으로 확장된다.
이처럼 사랑은 다양한 감정과 이성의 복잡한 작용을 포용하며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힘을 갖는다.
그러나 이 ‘사랑’은 때로는 폭력적 상황을 용인하기도 한다.
사회가 구축한 사랑의 이미지는 숭고함으로 둘러싸여 개인에게 고난과 역경을 이겨 내게 하지만,
동시에 사랑은 기울어진 관계의 추 속에서 서로를 긁어내리고, 폭력의 과정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덮어낼 뿐이다.
//이진선 작가노트//
울타리는 이중적인 의미를 갖는다. 대상을 보호하는 동시에 가두는 역할로서 존재해 왔다.
나의 울타리는 현실적인 한계, 환경, 역할, 가족, 안정, 보호, 모성으로 의미를 부여한다.
현재 나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다.
이 울타리 안은 의미 그대로 내가 바라왔고 꿈꿔 온 공간이며, 이전에 느낄 수 없었던 안정감을 느낀다.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채워지지 못한 어떤 외로움도, 나의 자궁 안에서 움직이는 생명을 느낄 때
이전에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풍부함을 느낀다.
하지만 이곳은 꿈을 꾸고 꿈을 향해 가기에 점점 높아지는 한계와 방해가 있다.
또한 여성은 엄마가 되고 겪는 신체적, 정신적, 물리적인 변화에 혼란을 겪으며,
생산적인 일은 사치가 되고 퇴행하여 아이와 함께 생존적인 것들에 집중하며 모든 시간을 쏟는다.
그러다 울타리 사이로 밖을 보면, 나의 모습은 스스로 더 작아져 울타리를 쉽게 넘어서지 못한다.
또한 사랑과 모성이라는 본능, 그리고 본능에 대한 역할과 책임은 양가적 감정을 가지고
울타리를 쌓다가도 부서뜨리기까지 한다. 나는 나름의 혼란을 겪으며 결정했다.
스스로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 놓고, 울타리 사이를 기웃거리며 스스로를 작게 만들지 않기로.
느끼는 혼란과 소외, 외로움과 현실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느끼고 인정하기로.
하지만 모두가 잠드는 밤, 나는 꿈을 꾸면서 떠올라 날 수 있다.
예술가는 자신이 창조한 개인적인 세계로 날마다 여행할 수 있지만,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길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을 수 있다.
가정은 언제나 내가 돌아올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한다.
안 할 수 없는 시시하고 반복적인 일들이 내 삶에 균형을 잡게 한다.//이진선//
장소 : 제이무브먼트 갤러리
일시 : 2025. 04. 10 – 05. 23
추PD의 아틀리에 / www.artv.kr / charmbit@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