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서문//
성현섭은 부산을 중심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중견 화가이다. 그는 점묘 기법을 활용한 독특한 작품 세계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예술적 여정과 작품 특징, 주요 활동부터 먼저 정리해 본다.
그는 1964년 울산에서 태어나서, 경상남도 김해에서 초등학교를 다녔으며, 중학교 1학년 때 부산으로 이주하였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경남매일미술실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으며 그림에 대한 꿈을 키웠고, 자신의 첫 수상작이 잡지 표지로 실린 경험을 40년 넘게 소중히 간직해오고 있다. 이처럼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였던 그는,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부산대학교 미술대학에 진학하여 본격적으로 예술가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내가 그를 만난 것은 부산대학교의 강의실이었다. 그리고 그가 졸업한 후 부산교육학교 미술학과의 조교로 그가 근무하게 되면서 부터이었다. 1993년 그가 부산 다다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한 이후로, 그는 약 10년의 공백기를 거쳤다. 그렇지만, 2004년 부산 갤러리 李에서 두 번째 개인전을 연 이후로부터 지금까지 1~2년 간격으로 꾸준히게 개인전을 이어오고 있다. 어떤 해에는 1년에 2번의 개인전을 열기도 하였다.

2021년 11월 부산 갤러리 공감에서 연 개인전에서는 ‘고양이가 있는 풍경’, ‘구석을 찾는 고양이’, ‘이오’, ‘two man’, ’43번길-810′, ‘two cats’, ‘금강빌 201호’, ‘무늬가 있는 화분’, ‘스킨 3084’, ‘서 있는 사람’ 등 다양한 작품이 전시되었다. 2025년 6월 기준으로 그는 총 16회의 개인전을 개최한 것으로 확인된다. 서울 인사아트센터 등 부산 외 지역에서의 전시 경력도 있다.
성격이 매우 온순한 편인 그는 세간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번잡함을 싫어하여 한 동안 ‘은자(隱者)’로서의 생활해 온 편이다. 그러던 그가, 현재 부산을 대표하는 부산현대작가협회 소속으로 회장까지 맡으며, 부산·경남 지역의 중견 작가들과 함께 다양한 그룹전과 초대전에 참여해오고 있다. 최근에는 2024년 11월 12일부터 12월 8일까지 M543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개최하였으며, 해운대 아리안갤러리, 갤러리 177, 다시보는 광복화랑 등 부산 일대의 여러 갤러리에서 활발히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그룹전과 개인전만이 아니라, 2~3인전 등에도 꾸준히 참여하며, 그림을 통한 세상과의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성현섭은 점묘(點描) 기법을 통해서 이미지를 만든다. 그의 작업은 단순한 대상을 묘사하기보다는, 점을 하나하나씩 찍어가는 행위 자체의 여정과 시간의 경과를 중시한다. 이러한 점묘의 기법은 반복적이고 기계적인 노동이 수반되지만, 그 점들이 모여서 선과 면, 그리고 추상적이면서도 때로는 나무와 같은 구체적 기호체를 이룬다.
초기에는 흑백의 대비를 활용한 수묵화풍의 작품이 많았으나, 근래에는 검고 푸른 색조 등 채색을 가미하여 캔버스를 가득 채운 점의 군무로 우주적 이미지를 연출하기도 하였다. 그의 작품은 가까이서 보면 수많은 점들이지만, 멀리서 보면 선과 면, 그리고 전체적 이미지를 형성하는 독특한 시각적 경험을 제공한다.
그에게 있어서 점은 우주의 상징이다. 한 개의 점은 한 개의 우주이고, 천 개의 점은 천 개의 우주이다. “점의 행위여정이자 시간의 기록”으로 평가되는 성현섭의 점묘 작업은, 점들이 하나의 물성으로 작용하여 우발적이지만 치밀한 이미지 효과를 낸다. 그는 점묘의 반복과 집적을 통해서, 단순한 묘사를 넘어선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미술 언어를 구축해오고 있다.
그는 꾸준하게 점묘 기법을 통한 독창적 예술 세계를 구축해오고 있다. 그의 작품은 반복적 행위와 시간의 누적, 그리고 점이 모여 이루는 우주적 이미지를 통해서 현대인의 내면과 세계를 탐구하면서, 부산 지역 미술계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다양한 전시와 협업을 이어가고 있다.
나의 그의 최근 다시 보는 광복화랑에서의 성현섭의 ‘with earth’를 통해서 그의 예술세계를 분석하면서 그에 대한 나의 기대를 표명하고자 한다. 그의 작품 ‘with earth’는 강렬한 색채의 구성과 상징적 구조 안에 추상적 내러티브를 품은 회화이다. 이 작품은 시각적 밀도 너머로 생태적 감수성과 존재론적 성찰을 함께 호출하며, 인간과 자연, 동물, 대지 간의 관계망을 시적으로 직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작품은 화면 중앙을 기준으로 위아래가 분명히 구획되어 있지만, 그 구분은 역설적으로 작동한다. 위쪽은 밤, 아래쪽은 낮을 표현하는 듯하지만, 낮의 이미지는 물 위에 반사된 형상처럼 거꾸로 배치되어져 있다. 이로 인해서, 전체 작품을 뒤집어 보더라도 시각적 자연스러움이 유지된다. 작가는 이러한 구조를 통해서 존재의 이면성, 세계의 반전 가능성, 또는 시간의 상보적 리듬을 암시한다.
밤을 담은 화면 상단에는 두 개의 삼각형 형상이 산처럼 배치되어 있고, 그 앞에는 노란색의 집 모양, 또는 위를 향한 화살표가 눈길을 끈다. 이 기호는 문명의 징후이자 거주의 흔적으로도 읽히며, 그 앞을 향해서 걸어가는 사람의 실루엣은 ‘존재의 여정’을 상징하는 핵심 장치이다. 실루엣의 앞에는 붉은 면 위에 드문드문 놓인 노란 점들이 보이는데, 이는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텃밭에 들르는 고양이를 위한 먹이를 주러”간다는 매우 구체적 행위에서 비롯된 것이다.
산기슭에 걸쳐진 달 아래로 내려오는 고양이의 모습은 인간과 동물 사이의 조우를 암시하며, 중심부에는 큰 고양이와 여섯 마리의 새끼 고양이들이 세 줄로 나열되어 있다. 그중 두 마리를 제외하고서는 뒤집혀 있어, 이 또한 생명의 리듬과 순환, 또는 보이지 않는 세계의 영혼성을 상기시킨다. ‘시간의 층위’, ‘자연의 주기’, ‘동물의 의식’이 시적으로 응축된 순간이다.
화면 하단의 한편에는 식물의 뿌리를 연상시키지만, 작품을 뒤집어 보면 가지마다 맺힌 열매를 지닌 나무의 모습으로 전환된다. 이러한 해석의 다중성은 성현섭의 작업이 지닌 철학적 층위를 더욱 강조한다. ‘위/아래’, ‘밤/낮’, ‘현상/본질’은 그의 회화 안에서 고정되지 않고 유동한다.
하단 중앙에는 점묘로 구성된 원형 형상이 위치해 있다. 언뜻 돋보기를 연상케 하는 이 형상은, 밤하늘의 달과 대비되는 해의 상징으로 읽히기도 한다. 굵은 선으로 둘러싸인 이 원 안에는 하얀 바탕에 붉은 점들이 응집되어 있는데, 이는 ‘집중된 생명’, 또는 ‘의식의 눈’을 암시하는 은유적 기호이다. 반대편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식물이 그려져 있어, 익숙함과 낯섦, 명료성과 미확정성 사이에서의 감각적 긴장을 유도한다.
‘with earth’는 그 제목처럼, 땅과 함께하는 삶을 시적으로 제시한다. 인간, 동물, 식물, 시간, 빛, 그리고 공간은 이 회화 안에서 서로를 반사하고 거꾸로 비추며 하나의 생태적 우주를 구성한다. 그것은 “존재는 함께-있음이며, 그 함께함은 항상 땅을 매개로 한다”고 조용하지만 힘 있는 방식으로 말한다.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붉은 바탕 위에 무정형의 노란 화살표 형태가 점묘 패턴으로 반복되어져 있어, 강한 생명력과 에너지, 심장박동 같은 감각을 자극한다. 그리고 세밀하게 반복되는 점묘들은 마치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회화 기법을 연상시키며, 자연과의 내밀한 교감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보인다. 전반적으로 약간 어두운 붉은 배경 위에 보라, 노랑, 하양 등이 혼합되어져 시각적 리듬과 깊이를 부여한다.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추상적이면서도 기호학적으로 읽을 수 있는 요소들을 풍부하게 포함하고 있어, 몇 가지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그 해석의 첫번째 실마리는 “with earth”라는 제목에서 주어진다. 이 제목이 작품 전체의 해석 키워드로 제공되는 셈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대지와 함께’ 살아가는 인간과 동물, 생명의 흐름을 상징화하는 듯하다.
이러한 상징성을 좀 더 읽어 보자. 화살 표시로 그려진 노란 집은 인간의 삶의 터전, 문화의 구조물, 또는 이 세상에 세워진 ‘의식의 집’을 상징할 수 있겠다. 인물의 실루엣은 대지 위를 걷는 자 또는 집을 나서는 자로서, 인간 존재의 실존적 여정을 암시한다. 그의 여정이 들고양이들의 먹이를 주러 나가는 밤의 여정에서 그의 친화적인 자연관을 읽을 수도 있다. 고양이들은 자연의 순환, 기억, 영적 동반자 또는 토템적 존재를 상징할 수 있다. 나무와 태양 또는 달은 생명의 기원, 지하 세계와의 연결, 무의식의 흐름, 또는 생명의 근원적 에너지로 해석 가능하게 한다.
‘with earth’의 다층적 조형성과 존재론적 감수성은 형식과 구도의 역설적 분할로 드러낸다. 화면을 위아래로 나누되, 위는 밤, 아래는 낮이며 아래 부분은 거꾸로 뒤집힌 반영처럼 처리한 구도는 전통적 공간 인식과 시간 개념을 해체한다. 이것은 시각적 안정감과 동시에 불안정성, 즉 ‘존재의 이중성’과 ‘경계의 흐려짐’을 미학적으로 드러내는 장치이다. 보는 이로 하여금 시각적 재해석과 주체적 사유를 촉구한다.
그리고 이 작품은 추상과 상징의 융합이라는 측면에서 시각을 끌게 한다. 강렬한 색채와 추상적 형상이 상징과 서사성을 함께 품고 있으므로, 회화가 단순한 조형적 아름다움을 넘어서서 ‘의미 생성’의 장으로 확장된다. 특히 노란 집 모양, 산, 고양이 등의 추상적 모티프는 구체적 이미지와 추상적 상징 사이에서 유기적 긴장을 형성하며, 관객의 해석적 개입을 유도한다.
또한 인간과 자연, 동물과 대지 간의 순환과 공존을 주제로 삼는 생태미학적 시선은, 현대 미술의 생태적 경향과 맞닿아 있다. 이것은 자연을 단순한 배경이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존재하는 주체’로 인식하는 관점을 반영하며, 미학이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윤리적 지평으로 확장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 무엇보다도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시간과 존재의 서정성이다. 작품 속 ‘여정하는 인물’, ‘달과 해’, ‘뒤집힌 고양이들’ 등의 상징들은 시간성의 중첩과 존재론적 사유를 불러일으킨다. 이것은 미학적 차원에서 회화를 ‘정지된 이미지’가 아닌 ‘시간의 흐름과 존재의 다층적 경험’으로 포착하는 시도를 의미한다.
특히 작품이 거꾸로 뒤집혀도 어색하지 않은 시각적 유연성은 다의적 해석과 복수적 의미 생성이 가능함을 뜻한다. 이 다층성은 관람자 개개인의 기억, 감정, 사유와 만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는 ‘열린 작품성’을 강화한다.
그러므로, ‘with earth’는 단순한 추상화가 아니라, 강렬한 조형언어를 통해서 존재와 자연, 시간과 공간의 복잡한 관계를 서정적으로 구현한 미학적 성취물이다. 전통적 구도와 시간 개념을 해체하는 형식미, 생태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한 내용미, 그리고 관객 참여적 다의성은 현대 미학이 추구하는 중요한 가치들을 담고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은 현대 생태미학과 존재론적 회화의 성공적 융합으로 평가할 수 있다.
미학적 관점에서 요약해 보자면, 이 작품은 점묘와 단순화된 형상을 통해서 상징과 정서를 강하게 전달하며, 전통과 현대를 교차시키는 회화로 판단된다. 시각적 리듬, 색채 감각, 상징의 조화는 마치 한 편의 시처럼 해석될 수 있겠다.
이러한 성현섭의 ‘with earth’는 궁극적으로 존재론적 질문을 던진다. ‘점 하나하나가 우주’라는 그의 철학적 명제는, 이 작품에서 구체적 형상으로 현현된다. 인간은 대지 위에 집을 짓고 살아가지만, 그 존재는 결코 고립되어 있지 않다. 그의 철학적 사유는 동물들과, 식물들과, 그리고 보이지 않는 무수한 생명체들과 더불어 하나의 거대한 생명망 속에서 호흡하고 있다.
작가가 캔버스 위에 찍어나가는 무수한 점들은 단순한 기법을 넘어선 명상적 행위이다. 각각의 점은 시간의 결정체이며, 존재의 증명이다. 점들이 모여 형성하는 이미지는 우연과 필연이 만나는 지점에서 탄생하는 존재의 신비를 보여준다. 이것은 마치 각자가 우주라는 거대한 캔버스 위의 한 점이면서, 동시에 그 점 안에 또 다른 무한한 우주를 품고 있다는 깊은 통찰을 시각화한 셈이다.
‘with earth’에서 드러나는 것은 분리가 아닌 연결의 미학이다. 인간과 자연, 의식과 무의식, 개별과 전체가 서로 침투하고 교감하는 존재의 근본적 양태를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나는 묻는다. 과연 인간은 대지와 함께 살고 있는가, 아니면 대지 위에서 살고 있는가? 그 미묘한 차이 속에 현대인이 잃어버린 생태적 감수성과 존재론적 겸허함의 회복 가능성이 숨어 있을 것이다.
결국, 성현섭의 예술은 점을 통해서 무한을 사유하고, 반복을 통해서 영원을 체험하며, 침묵 속에서 소통하는 고요한 철학이다. 그의 캔버스는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존재의 신비를 탐구하는 사유의 공간이며, 우리 모두가 ‘대지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근본적 진실을 일깨우는 명상의 장이다. 따라서, 성현섭의 ‘with earth’는 단순한 시각적 아름다움을 넘어서, 현대 미학이 주목하는 여러 중요한 문제들을 내포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우선, 작품이 공간과 시간을 비전통적으로 다루며 경계를 흐릿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일상적 인식 틀을 넘어서는 존재론적 성찰을 불러일으킨다. 또, 자연과 인간, 동물과 대지가 함께 어우러져 순환하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담아냄으로써, 오늘날 생태미학이 강조하는 ‘상호연결성’과 ‘공존’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리고 작품이 다의적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열림성을 지녀 관객과의 관계를 수평적이고 역동적으로 만든다는 점도 현대 미학의 중요한 지점이다.
이러한 관점은 작가의 성향이 지닌 서정적이고 철학적인 내러티브와도 깊이 맞닿아 있다고 미루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메를로퐁티의 지각과 현상학적 미학 관점이나, 데릭 바넷 같은 생태미학 이론과 연결해서 좀 더 심화된 분석을 해볼 수 있을 가능성을 떠올리게 된다.
‘with earth’의 밤과 낮, 뒤집힌 반영 등의 역설적 구도는 메를로퐁티가 말한 ‘지각의 다중층성’을 회화적으로 구현한 것으로 해석 가능할 것이다. 메를로퐁티는 지각을 단순한 정보 수용이 아니라, 몸이 세계와 ‘직접적으로’ 만나는 살아있는 경험으로 본다. 즉, 우리 몸은 세계를 ‘현현(現現, apparaître)’하게 하는 매개이며, 공간과 사물은 지각 주체와 상호관계를 맺으며 의미를 만들어낸다. 관객은 이 작품을 통해서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서서 ‘겪고 경험하는’ 상태에 놓인다. 작품 속 ‘거꾸로 된 낮’은 고정된 시점과 인식의 틀을 해체하며, 몸과 눈, 공간 사이의 역동적인 관계를 확장한다. 또한, 산, 집, 고양이, 식물 등 구체적 형상과 추상적 조형 요소들이 혼재함으로써, 세계는 명확한 경계 없이 ‘살아 움직이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메를로퐁티가 말한 ‘몸-세계’의 상호침투, 즉 인간의 신체와 자연 세계가 분리될 수 없는 존재임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생태미학에서 자연과 인간의 ‘공존’, 그리고 예술이 환경 윤리를 담아내는 ‘생명-감각의 확장’을 강조한 데릭 바넷의 시각으로 본다면, ‘with earth’는 인간, 동물, 식물, 땅이 함께 순환하는 세계관을 내재해, 생태계의 복합성과 상호연결성을 서정적으로 그려낸다. 작품 속 고양이 가족과 텃밭, 산, 뿌리·가지·열매의 형상들은 단순한 자연 묘사를 넘어서 ‘생명의 리듬’을 드러낸다. 이러한 시각적 은유는 오늘날 환경 위기의 시대에서 예술이 갖는 윤리적 책무와도 맞닿는다. 즉, 자연을 타자화하지 않고 ‘함께-있음(with earth)’으로서의 존재를 재인식하도록 돕는다. 또한, 낮과 밤이 뒤집힌 화면 구성은 생태계의 순환성과 시간의 비선형성을 암시하며, 인간 중심적 세계관을 비판하고 대지와 자연에 대한 새로운 윤리적 감수성을 촉구한다.
이처럼 성현섭의 ‘with earth’는 메를로퐁티적 현상학과 바넷적 생태미학을 교차하며 현대미술의 중요한 미학적 가능성을 보여준다. 지각 주체의 신체적 경험과 세계와의 동시적 접속을 탐구하며, 인간과 자연, 동물과 대지의 복합적 관계망 속에서 공존과 순환을 서정적으로 형상화한다. 이러한 작업은 ‘존재와 관계’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예술적 형식으로 재현하면서, 동시에 오늘날 생태적 위기 속에서 미술이 지녀야 할 윤리적·감각적 역할을 제시한다.
성현섭에게 바라는 것은 그의 생태미학적 탐구를 더욱 깊고 다양하게 확장해 나가며, 몸과 세계의 경계를 넘나드는 현상학적 지각의 경험을 풍부하게 구현하는 것이다. 동시에 사회적·문화적 이슈와 밀접하게 연계된 작업으로 미술을 통한 의미 있는 담론 형성에 기여하길 바라며, 철학과 예술의 융합을 통해서 독창적 예술세계를 지속적으로 구축하길 기대한다. 부산이라는 지역 정체성을 기반으로 국내외 미술계와 활발히 소통하며 지역과 세계를 잇는 다리 역할도 해주길 바란다.//박은주(미학, 전 경남도립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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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현섭은 부산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중견 화가로, 점묘 기법을 바탕으로 한 독창적 작업 세계를 구축해왔다. 1964년 울산에서 태어나 김해와 부산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그는, 어린 시절 수상 경험을 계기로 예술가의 꿈을 키우고, 부모의 반대에도 부산대학교 미술대학에 진학해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1993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약 10년의 공백기 후 꾸준히 전시를 이어왔으며, 2025년 현재까지 총 16회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서울 인사아트센터 등지에서도 활동하며, 최근에는 부산현대작가협회 회장을 맡아 지역 미술계의 중심 인물로 활동 중이다.
성현섭의 작업은 점묘 기법을 통해 단순한 묘사를 넘어 시간성과 철학을 담아낸다. 초기에는 흑백의 수묵화풍이 주를 이루었지만, 최근에는 채색 점묘로 우주적 이미지와 시각적 밀도를 구현한다. 그의 점 하나하나는 ‘우주의 단위’로 기능하며, 반복과 집적을 통해 생명과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을 드러낸다.
대표작 ‘with earth’는 이러한 철학을 응축한 작품이다. 밤과 낮, 위와 아래가 뒤섞인 화면 구성은 존재의 이면성과 세계의 상보성을 암시한다. 고양이와 인간의 만남, 뒤집힌 생명들, 나무와 태양의 형상은 생명과 시간, 자연과 인간의 관계망을 시적으로 형상화한다. 이 작품은 점묘의 반복성과 상징적 기호를 통해 생태적 감수성과 존재론적 질문을 동시에 던진다.
성현섭의 회화는 시각적 정교함과 상징적 해석의 여지를 함께 제공하며, 단순한 형상 너머로 철학적 내면을 탐색한다. ‘점 하나가 하나의 우주’라는 그의 신념은 곧 모든 생명이 함께 연결된 생명망의 시적 은유로 읽힌다. ‘with earth’는 인간, 자연, 동물이 함께 존재하는 생태적 우주의 한 단면을 깊이 있게 제시한다.
장소 : 다시 보는 광복화랑
일시 : 2024. 6. 4 – 6. 12
추PD의 아틀리에 / www.artv.kr / charmbit@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