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토 키요미展(에이원갤러리)_20151006

이민한(부산대 교수)

내가 야마토 키요미씨(大和聖美)의 그림을 처음 접했을 때 그녀의 그림은 서예를 기원을 하고 있지만 그림에 가까웠다.
서예에서 볼 수 없었던 먹의 농담의 변화나 발묵을 이용한 조형적 표현은 글씨라기보다는 그림의 추상적 표현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예부터 글과 그림의 근본이 같다고 하는 서화동원설(書畵同原設)이 전통적으로 전해져왔다. 하지만 그녀의 그림을 본다면 서와 화가 동원이 아니라 오히려 일체임을 깨닫게 한다. 그녀는 글씨를 그리고 필을 사용하는데 있어서 처음 글의 구성과 필의 사용법이 정해지기 이전의 혼돈의 상태로 되돌리고 있다. 혼돈의 상태로 돌린다는 것은 작품을 완결된 형태가 아닌 미완의 형태로 돌린다는 것이다. 일본의 미술사가 킴바리 세이코(金原省吾)는 이러한 것을 경향형태(傾向形態), 혹은 발생형체(發生形體)라고 하는데, 미완에서 완성으로 향하는 에너지를 갖데 됨으로서 작품에 생명력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전통적인 회화관에 입각한 그녀의 작업은 외면적으로는 전통적 서예의 글씨는 아니지만 서예의 기능을 잃지 않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회화의 영역을 넘나들어 서(書)와 화(畵)의 두 가지 기능을 함께 표출 해 내고 있다고 보인다. 그녀의 서는 파자(破子) 되면서 하나의 획(劃)과 획(劃)에서 느낄 수 있는 고유의 기(氣)와 조형에 더 접근됨을 볼 수 있고, 흩어진 글자들은 문장으로서의 구성체(構成體)를 상실하지만 한자 한자가 갖고 있는 의미체계를 순서 없이 던져주고 있다. 마치 초현실주의의 서로 상관없는 물건들이 한 공간에 놓이면서 각각의 물건의 상징적 의미와는 다른 새로운 이미지를 부여하듯이 그녀가 그린 글자에서 관객은 다양한 상상력과 조형적 체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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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녀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의 기표와 기의의 문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기표(記標:signifiant)와 기의(記意:signifie)는 소쉬르가 정의한 기호의 근본을 이루는 두 성분이다. 기표는 기호의 지각 가능하고 전달 가능한 물질적 부분이다. 그것은 소리일 수도 있고, 표기일 수도 있고, 한 단어를 이루는 표기의 집합일 수도 있다. 기의는 이와 대조적으로 독자나 청자의 내부에서 형성되는 기호의 개념적 부분이다. 소쉬르에 의하면 기표와 기의의 관계는 기호 속에 표상되어 있는 외부 현실에 좌우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자의적이고 관습적인 것이다. 이에 야마토 키요미씨의 그림은 서와 그림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으며, 작품에서 나타나는 표현은 문자의 일부분이거나 단편적인 글자로서 기표이기는 하지만 고정화 된 기표가 아니며, 기표가 던져준 이미지에서 기의를 갖고 있지만 완결된 개념의 기의를 갖고 있지는 않다.
결국 언어가 독립적으로 실존하지 못하고 다른 언어와의 통사적, 의미론적 관계 속에서 구체적인 의미를 획득하고 그 구체성은 상황 속에서 다시 한 번 변형되어, 상호매개(相互媒介)적으로 의미를 획득하듯이 평면과 입체를 넘어, 서와 화의 경계를 넘어, 기표와 기의사이의 표현을 현대화해가는 그녀의 작품은 기표와 기의의 사이에 존재하는 에너지를 조형화하면서 작가-작품-관객과의 상호 매개적 소통을 통하여 메시지를 획득할 수 있는 것이 그녀의 회화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2015.7. 이민한

– 장소 : 에이원갤러리
– 일시 : 2015. 10. 6 –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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