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기展(갤러리 아인)_20160104

글 전준엽

어린이의 상상력으로 풀어내는 이야기를 동화라고 한다. 동화의 힘은 현실의 여러 가지 제약을 쉽게 뛰어넘어 버린다는 데 있다. 어린이들의 생각이 현실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탓에 무한한 상상의 세계를 펼칠 수 있는 것이다.

상상력으로 포장된 동화 속에는 언제나 보편적 진리가 있다. 그래서 동화는 문학의 한 자리를 굳건히 지켜오고 있는 것이다.

동화적 문법은 회화에서도 위력을 발휘해 왔다. 마르크 샤갈은 부초처럼 떠돌 수밖에 없는 유대인의 비극적 숙명과 정신세계를, 파울 클레는 음악적 감수성으로 분칠한 환상미를, 호안 미로는 인간 마음 맨 밑바닥에 숨어 있는 유희적 본성을, 앙리 루소는 어린이적 소박한 감성으로 바라본 세계를 동화적 문법으로 풀어내 서양미술사에 이름을 올린 작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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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기의 회화도 이런 각도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어린이의 눈으로 바라본 현실 같다. 행복, 기쁨, 즐거움, 호기심 이런 것들로 가득 찬 화면은 아름답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사물로 그득 차 있다. 색채도 밝은 이미지를 주는 파스텔 톤이다. 이런 생각에 가장 잘 어울리는 소재는 꽃이다. 그래서 인지 그의 그림에 제일 많이 등장하는 것은 꽃이다. 꽃도 색채가 아름답고 모양이 예쁜 꽃들만 모아 놓은 꽃다발이다. 그 속에는 행복을 기원하는 축하 카드가 들어 있다. 이런 그림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마치 기대했던 선물을 받은 느낌이다. 김은기의 그림을 보고 이렇게 느낀다면 작가의 의도가 성공적으로 전달된 것이리라. 그는 그림을 통해 삶의 긍정적 에너지를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그런 에너지를 심어주는 것은 기쁜 감정이나 즐거움 같은 것이다.

김은기는 이런 감정을 유발시키기 위해 삶의 즐거웠던 기억들을 모아 정물화의 형식으로 꾸며 놓는 것이다. ‘장미빛 인생’이라는 그림을 보자.

◇ 장밋빛 인생의 꿈 화면 가득 펼쳐져

노란색 벽면의 실내에 갈색톤의 탁자가 있고, 그 위에 여러 가지 사물이 규모 있게 놓인 정물화다. 이 그림에서도 노란 통에 소담스럽게 담긴 화려한 꽃다발이 등장한다. 꽃다발 가운데 축하 카드도 있다. 밝은 청회색의 봉투에는 역시 장밋빛으로 보이는 인생의 긍정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을 것이다. 꽃에서는 머리가 맑아지는 밝은 향기가 흘러나와 온 방안에 퍼진 듯하다. 아마도 레몬향일 것이다. 레몬 옐로우의 배경에서 그런 향기가 풍기는 듯하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나비까지 모여 들고 있다. 향기와 꽃을 따라 날아온 나비는 인생의 달콤함을 희구하는 우리 모두의 마음일 것이다. 장밋빛으로 보이는 인생을 원하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한결같은 마음이니까.

문이 열린 새장에는 새는 없고 꽃 한 송이가 지키고 있다. 거기 사는 새가 물어다 놓은 것처럼. 새장은 우리가 사는 집일 것이다. 그 집에 꽃 같은 행복을 채우고 싶은 작가의 마음인 것이다. 그 옆에 놓인 메모지와 연필은 열린 서랍에 있던 것으로 보인다. 열린 마음만이 행복한 인생을 설계할 수 있다는 소박한 표현처럼 보인다. 껍질 벗겨진 레몬에서는 새콤달콤한 향기가 은은하게 풍겨 나온다. 행복한 인생의 맛은 이런 것이리라. 그 밑에 깔린 색동천이 이런 생각을 거들어준다. 인생은 다양한 모습이라고. 여러 가지 색처럼 다양한 인생살이지만, 공통적인 것은 행복한 삶이기를 비는 인간의 마음이다. 그래서 작가는 색동 띠를 아름다움을 주는 채도가 높은 색깔만으로 처리했다.

정물 중에 생뚱맞은 것이 하나 있다. 화분용 물주전자다. 여기에 등장한 다른 정물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우선 칙칙한 색채나 모양이 그렇다. 다른 정물들은 기능적 역할보다는 장식적 역할이 두드러지는데 비해 물주전자는 기능성이 강한 물건이다. 작가는 왜 이런 무리수를 두었을까.

물을 주어야 꽃이나 과일이 살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생업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인생을 장밋빛으로 칠하려면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는 교훈적 요소인 것이다. 동화적 문법에 충실한 구성인 것이다.

‘여행’이라는 제목을 붙인 그림에는 동화적 상상력이 더욱 돋보인다. 책을 통한 여행이다. 책 속에 담긴 세상 일을 환상적 상상력으로 풀어낸 그림이다. 펼친 책 속에서 나무가 자라고, 서양 중세 여행자의 모습도 보인다. 꽃들이 책장을 뚫고 나오는가 하면, 피크닉 바구니도 튀어나오고 벤치와 집까지 솟아나온다. 급기야는 별이 총총 떠있는 푸른 밤하늘로 우리의 몸이 날아오른다. 책을 통한 여행의 세계인 것이다. 독서의 유익함이라는 묵직한 잔소리를 이처럼 유머러스하게 풀어낼 수 있는 것은 작가의 재능 덕분이다.

김은기의 회화는 장식적이며 예쁘다. 그런 만큼 가볍다. 어찌 보면 크리스마스카드 같은 느낌까지 든다. 그래서 사람들의 눈길을 쉽게 끌어당긴다. 그런데 그 눈길을 오래 머물게 하는 요소가 있다. 교훈적이며 보편적인 진리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탓에 그가 그림에서 하는 잔소리는 예쁘고 사랑스럽다. 그것이 김은기 회화의 매력이다.//전준엽//

– 장소 : 갤러리 아인
– 일시 : 2016. 1. 4 –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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