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희展(해운대문화회관)_20170617

실험을 멈추지 않는 작가정신

조규철(대한민국 수채화작가협회 고문)

먼저 박준희 개인전을 진심으로 축하하면서, 비평가가 아닌 작가의 입장에서 이글을 쓴다.

“잘 그린 그림 보다 좋은 그림을!”
미술계에선 이 말을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긴다. 그런데 정작 ‘좋은 그림이란 어떤 것인가?’ 라는 물음엔 명쾌하게 답하기가 어렵다. 그저 ‘감동을 주는 그림’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감동을 주는 그림이란…….?

사실 예술에는 정답이 없다. 관점에 따라 서로 다른 답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좋은 작품이 되기 위해선 여러 요소가 있겠는데, 그 중 ‘개성’과 ‘참신성’을 들 수 있다. 작품에 있어 그 작가만이 갖는 특성이 잘 드러나고 진부하지 않고 참신한 느낌을 주는 그런 작품은 우리에게 감동으로 다가오게 된다. 감동을 주는 작품이야말로 좋은 작품이라 할 수 있지 않은가. 박준희는 여러 차례 단체전과 세 차례 부스 개인전을 통해 그 역량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그는 남과 다른 그만의 색깔과 예사롭지 않은 화면구성은 새롭고 신선한 감동이었다.

이번에 전시한 작품은 100호 대작을 비롯한 최근작과 이전에 작품들로 이루어졌다. 정물 시리즈, 양귀비꽃 시리즈에서 보여 주는 뛰어난 화면구성과 투명수채화의 특성인 물의 맛을 잘 살린 그의 작품들과 최근의 작품들을 만나 볼 수 있다.
최근의 작품은 이전 그림에서 한층 숙성되고 진화된 실험 작이다. 그의 실험은 주로 재료(물성), 재질(마티엘), 색 등에 집중 된다. 이를테면 종이나 판재위에 흙이나 미디움을 섞어 바탕화면을 만들고 그 위에 물감 또는 혼합 재료로 실험을 거듭하여 끝내 작품이 완성된다. 그 결과 작품 속에 나타나는 마티엘과 긁힌 흔적, 붓 자국 등은 전통 수채화에 익숙한 관람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오늘날의 현대 수채화는 다양한 수용성재료와 다양한 기법으로 그 표현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 이에 박준희의 실험 작품은 현대수채화와 그 맥을 같이한다.

또 하나의 특성으론 독특한 화면 구성을 들 수 있겠다. 산, 들, 설경 등의 소재에서 보듯이 자연을 모티브로 하고 있으나, 단순한 자연의 재현이 아닌 대상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은 채 그만의 시각으로 불필요한 요소를 제거하고 절제된 색과 형과 톤으로 화면을 구성한다. 그러한 그의 작품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보다 정신을 중시하는 동양화의 남종화를 연상케 하고 작품에서 몇 걸음 뒤로 물러서서 보게 되면 세부는 사라지고 마치 추상회화의 단색화(모노크롬)를 보는듯하다.

박준희 작품을 보노라면 19세기 프랑스 인상파 화가 마네의 말이 떠오른다.
“과묵한 사람은 우리로 하여금 생각을 하게 만들고 수다스런 사람은 우리를 피곤하게 만들 뿐이다”
이 말은 회화에 있어 함축적인 제작방식을 강조하며 단순한 것이 우리에게 더 큰 울림을 준다는 의미를 뜻하는 말이다.

박준희의 변화하고 고민하는 작가정신에 큰 박수를 보내며, 한편 빛나는 과거라도 마냥 되풀이 되면 새 날은 오지 않는다는 말도 함께 전한다.
예술은 완성이 없다. 과정의 연속이다.//조규철//

 

박준희의 풍경 – 수더분하여 비워진 풍경 속에 채움을 고민한 흔적 !!

양홍근(부산미술협회 부이사장)

“빗방울 떨어지는 그 거리에 서서 그대 숨소리 살아 있는 듯 느껴지면, 깨끗한 붓 하나를 숨기듯 지니고 나와 거리에 투명하게 색칠을 하지…” 이는 필자도 좋아하는 노래이다. 이 노래는 어느 일상의 잔잔한 날 풍경을 수채화를 그리듯 표현하였다. 우리는 간혹 미술이 아닌 형식의 산물에 대해서도 수채화 같다는 말을 자주 한다.
예컨대 담백하게 쓴 시나 수필에 대해서도 그렇고, 특별나지 않게 잔잔한 삶을 산 사람에게도 ‘수채화 같이 살았다’라고 이야기하며 사람의 성품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도대체 사람들은 수채화를 어떻게 생각하기에 이 같이 표현하기에 주저하지 않을까?

박준희도 수채화를 그리고 있다.
그의 수채화를 어찌 봐야할까? 라는 고민 속에 언 듯 근대한국화가 이상범을 떠 올렸다. 조선조에 진경산수를 그린 정선 이후 많은 화가가 한국의 산수를 그렸지만 필자가 이상범을 특별히 보는 것은, 산수화 중에서도 특별한 풍경이 아닌, 흔히 접할 수 있는 동래 뒷산과 같은 평범하고 완만한 산수를 화폭에 담은 것이다. 이상범은 완만한 형태의 산세에서 오는 지루함을 꿈틀대는 그만의 필치로 채웠다. 그의 이런 필치는 수더분한 풍경의 형태를 또 다른 아름다움으로 돌려놓았다.

현대는 장르를 가르는 것이 무의미해져 가는 시대이지만 내가 수채화를 하는 박준희의 작품을 보면서 한국화가를 떠올린 것은… 박준희는 아마도 수채화와 한국화 사이의 3각 관계 속에 있는가 보다.

사람들은 작품을 보면서 작가를 들여다보기를 원한다. 박준희는 그의 작업에서 물성(水性)의 유연함을 택했다. 물성은 많은 장점이 있는 반면 수성에서 오는 밋밋함과 가벼움의 단점이 있다. 박준희의 작품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까를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며 그 고민 속에서 하나의 방법을 제시하였다.

그는 종이와 물성의 가벼움을 해소하는 방법을 고민하면서도 또한 특별나지 않는 평범한 풍경 속에 그의 내면의 이야기를 채우고자 하였다. 이러한 생각은 전문적인 평가를 떠나 창작에 대한 그만의 고민과 가슴의 깊은 감성에서 온 것으로 생각한다. 채우고자하는 본능과 함께 비워내고자 하는 본능 속에서 이 채움의 목적은 시각적 Balance가 될 수도 있고 작가의 영혼이 담긴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그의 풍경은 실존하는 풍경을 다룬 것인지 내면에 있는 풍경을 다룬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존재할 것만 같은 풍경… 어디에서인가 마주한 것 같은, 또 마주할 것만 같은 풍경 속에 산과 나무와 길이다. 하지만 박준희는 내면의 추억과 이상의 잔잔한 숨결로 화면을 채우며 이러한 형상들의 실존의미를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그러는 사이에 자연은 詩가되고 수필이 되었다.

그의 풍경 속에 산과 능선의 나무, 숲 사이에 스며드는 여명의 몽환적 분위기는 보는 이도 공감하게 만드는 쓸쓸함을 품고 있다. 이 쓸쓸함은 외로움이 아니라 세상사에 지치고 힘들어 하는 마음을 달래주는 쓸쓸함이며, 또한 상실과 결핍이 아니고 가슴 깊이 기쁨을 스며들게 하는 채움이며 마음을 정화시켜주는 쓸쓸함이다.

노골적이지 않는 표현의 아름다움! 기존의 예술과 문학 속에 노골적인 표현이 만연하며 은근함에 대한 저항을 하는 이 시대에, 그만의 은근함의 표현으로 장식적이지 않는 섬세한 작품세계가 그의 풍경 속에서 향긋한 바람으로 펼쳐진다. 박준희의 풍경 속에 부는 바람은 신비로운 감촉으로 잔잔한 잔상을 남긴다. 그리고 그 바람은 마음을 전하는 잔잔한 이야기를 들려준다.//양홍근//

– 장소 : 해운대문화회관
– 일시 : 2017. 6. 17. –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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