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철展(미광화랑)_20170818

그 감각적 발현이 품은 힘에 관하여

김소라

김성철작가는 2015년 ‘가려움’을 주제로 개인전을 열었었다. 가려운 피부를 긁어 생긴 종기와 진물들을 패턴처럼 반복적으로 이미지화했다. 끝없이 증식될 것만 같은 가려움으로 전시장은 불편과 불안으로 가득 찼다. 그것은 메마르고 각박한 현실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진실한 관계에 대한 목마름으로 읽혔다. 그 목마름을 채워줄 ‘위안’을 어디서도 찾지 못한 인간들은 이제 ‘위선’을 생존방식으로 체화한다. 이것이 <우울한 관계>라는 제목의 이번 전시의 주제다. 회화, 입체, 설치, 영상 등 다양한 매체의 작품들이 이러한 주제를 공유하고 있다. 그 중에서 전시의 중심이 되는 것은 입체물인데, 사람과 동물을 흙으로 만들어 구운 작은 형상들이다. 이 작은 입체형상물들이 2015년의 ‘가려운 이미지들’처럼 수없이 증식하면서 펼쳐지고 있다.

이 작은 ‘흙 인형’들이 만들어내는 불편과 불안은 그것들의 기괴한 모습에서 기인한다. 생략과 과장으로 형태가 심하게 변형되고 왜곡되었다. 이 기형적인 흙 인형들이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풍기며 군상(群像)을 이룬다. 작가는 그 모든 것들이 결국 인간의 모습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라면 어떤 모습으로든 변신하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까마귀, 토끼, 원숭이, 뱀 등 각각의 동물들이 가진 습성적인 특성들이 수시로 변모하는 인간의 모습에 비유된다. 사람모습인 경우에 그것들은 벌거벗은 채 성적 심볼을 과장되게 드러내고 있기 일쑤다. 노골적인 몸에 비해 얼굴은 가면을 쓴 듯 무표정하다. 눈동자 없이 텅 빈 검은 눈, 괴로운 듯 움츠리거나 늘어뜨린 몸, 기형적으로 꼬여있는 팔과 다리들… 그들은 함께 있으면서 서로를 병들게 하고 괴물이 되어간다. <우울한 관계>다.

그런데 이 기괴한 형상들은 한편으로 그 우스꽝스러움 때문에 웃음을 유발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이 형상들은 ‘혐오’와 ‘웃음’을 동시에 품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상충되는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대상을 보통 그로테스크하다고 말한다. 그로테스크는 주로 격하(格下)의 원리를 통해 이러한 특성을 지니게 된다. 고상한 가치를 끌어내려 세속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중세 성당의 현관 위나 성직자들의 수사본 책들의 가장자리를 장식하고 있는, 갖가지 세속적이고 흉측한 형상들이 엄숙하고 경건한 것들과 대조되면서 특유의 웃음을 유발하는 것처럼 말이다. 김성철의 형상들도 비슷한 양상이다. 이 형상들에서 작동하는 비유는 역전된 의인화다. 의인화가 사람이 아닌 것에 인격을 부여하는 것이라면, 여기서는 사람으로부터 인격을 벗겨낸다. 사람은 짐승이나 괴물이 되고, 또 욕망만을 드러내는 육체로 격하된다. 고상하고 정신적인 것은 소거되고 뒤틀린 육체만 남는다. 여기서 웃음이 유발된다.

이러한 육화(肉化)는 그 형상에서도 드러나지만 작가의 작업하는 손에서도 묻어 나온다. 흡사 토우(土偶)를 닮은 이 형상들은 감각적으로 단번에 빚어낸 듯 그 모습들이 자유자재다. 작가는 머리의 통찰이 아니라 몸의 육감적 감성을 손끝에 담아 물질화한다. 감각의 작용에 따라 끝없이 변종들이 생성되고 꿈틀댄다. 일견 ‘흙 인형’들과는 매우 대조적으로 보이는 시계작품들에서도 마찬가지다. <유배된 사물>이라는 제목의 이 시계들은 고가의 명품시계를 정밀하게 입체적으로 재현한 작품이다. 실용성에서는 배제되고 단지 부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소비되는 것에 대한 불편한 마음을 담고 있다. 무척 정밀해보이지만 그것들이 눈길을 끄는 이유도 역시 그것이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 때문이리라. 이 시계작품들을 보고 있자면 작업대 위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손과 정교하기 위해서 잔뜩 웅크린 몸이 느껴진다. 이 역시 다른 흙 인형들처럼 손과 몸의 이야기다.

이렇듯 김성철의 작업에는 혐오와 웃음이, 그리고 비판과 긍정적 생성이 동시에 있다. 끊임없는 몸과 손의 감각적 발현, 그것이 만들어 내는 생성과 증식들… 이러한 점들이 작품을 단순히 세계에 대한 비판이나 비관에 머물지 않도록 하는 특성이며, 웃음을 조롱이나 비웃음에 머물지 않도록 하는 요소들이다. 그것들은 작품의 한 축인 비판적 태도와 긴밀한 긴장을 이루며 새로운 차원이나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특유의 힘으로 작용한다. 그렇게 하여 김성철의 작업은 끊임없는 감각적 발현을 통해 내면의 불안을 해소시켜 나가면서도 외부 세계에 대한 비판성을 잃지 않는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글 김소라//

– 장소 : 미광화랑
– 일시 : 2017. 8. 18. – 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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