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展(청사포 라벨라치타)_20170821

해운대 청사포 라벨라치타 1층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갤러리가 있다. 거친 시멘트 벽면으로 투박한 느낌이지만 전시장으로서는 손색없는 곳이다. 이 곳에서 종이 작업을 하는 이건희 작가의 28 번째 개인전을 진행하고 있다. 거친 장소와 대비되는 한지 작품들은 ‘저생전’이라는 가전체소설의 스토리를 담고 있다.

전시장 중간 벽면에 종이 군상들이 서 있다. 사람의 형태는 아니지만 두터운 종이가 군상처럼 보인다. 작품 앞에는 다음과 같은 저생전의 글귀가 쓰여 져 있다.
‘생(生)의 성(姓)은 저(楮 닥)요, 이름은 백(白 희)이요, 자(字)는 무점(無玷 깨끗)이니, 회계(會稽)사람이고, 한(漢)나라 중상시(中常侍) 상방령(尙方令) 채륜(蔡倫)의 후손이다. 생이 날 때에 난초탕에 목욕하고 흰 구슬을 희롱하고 흰 띠로 꾸렸으므로, 빛이 새하얗다.’

바로 옆에는 닥나무가 붓의 형태로 군집 해 있다. 전시 기획을 할 때는 붓대를 위로 하여 천장에 매달려 했으나 천장이 낮아 붓대를 아래로 해서 설치했다고 한다. 붓과 종이는 떨어질 수 없는 한 몸과 같은 것.
‘성질이 본시 정결하여 무인(武人)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즐겨 문사(文士)와 더불어 노니는데, 중산(中山) 모학사(毛學士 붓)가 그 계우(契友)로서 매양 친하게 놀세, 비록 그 얼굴을 점찍어 더렵혀도 씻지 않았다.’

이웃 옆 벽면에는 작가의 평소 익숙한 평면작품 20개가 붙어져 있다.
‘같은 배의 아우가 무릇 19명인데, 다 서로 친목하여 잠간도 그 차서(次序)를 잃지 않았다.’

또 한 벽면에는 붉은 네모 조각들이 하늘로 솟아오르는 듯한 작품이 있다. 가까이에서 보니 바느질로 ‘돈’이라고 새겨져 있다.
‘원(元)나라 처음에는 본업을 힘쓰지 않고 오직 장사만을 익혀 몸에 돈꿰미를 띠고 다방(茶房)과 주사(酒肆)에 드나들며 그 분(分)⦁이(厘)를 계교하니, 사람들이 혹 비루하게 여겼다.’

영상이 나오는 스크린 뒤쪽에는 나열된 단어들의 작품이 바닥과 벽면에 놓여 져 있다.
‘화제(和帝)가 사람을 시켜 징험하니, 과연 능히 강기(强記)하여 백의 하나도 놓침이 없이 방책(方策)을 쓸 필요가 없었다. 이에 저(楮)를 포상(褒賞)하여 저국공(楮口公) 백주자사(白州刺史)의 벼슬에 올려 만자군(萬字軍)을 통솔(統率)하게 하여 드디어 봉읍(封邑)으로써 씨(氏)를 삼았다.’

가전체소설이란 사물을 의인화한 소설로 저생전은 종이 즉 닥나무를 의인화한 내용이다. 작가는 평소 작업들과 디지털 종이(영상작업), 동양과 서양의 만남(한지 아프로디테)까지 새로운 시도를 보여준다. 중견 작가로서 새로운 변화에 도전하는 이건희 작가의 다음 전시를 기대 해 본다.

– 장소 : 청사포 라벨라치타
– 일시 : 2017. 8. 21. –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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