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경진 불화展(청사포 갤러리)_20210515

//주경업이 만난 부산을 지키는 꾼·쟁이들//

사찰 법당 안에 예배용으로 내걸린 벽화나 천정과 기둥 등을 채색으로 그린 그림이나 무늬 등을 통틀어 불화라 한다. 그러나 좁은 의미로는 부처님을 묘사한 그림으로서 걸개그림 형식의 ‘후불탱화’를 지칭한다. 예로부터 불화를 그리는 화원을 화사·화공·화원 등으로 불러왔으며 19세기에는 금어·편수 등 다양한 명칭을 쓰기도 하였다.

오늘날 불화장으로 칭함을 받는 화사는 전국적으로 상당수에 이르렀으나 일제강점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전통 불화의 맥을 계승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특히 스님의 신분으로 조선 후기 사찰화원의 계맥을 잇고 있는 화사는 소수에 불과하다. 그중에서도 조선 후기 근대 불화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금어는 만봉과 석정 두 스님이 대표적이다(두 분 모두 타계하였다).

2006년 선주산방의 석정 선사를 취재했을 때 불화를 익히던 유발시자(有髮侍者) 하경진 씨 소식을 듣고 부산 금정구 부곡동 담향산방을 찾았다. 하 씨는 2012년 11월 큰스님 입적 후 6개월 간 선사가 못다 한 불화를 마무리하고 지난해 5월 부곡동으로 거처를 옮겼으며, 시외의 조용한 곳으로 화실을 물색하고 있었다. 거실 넓은 바닥에 후불탱화 출초(出草)를 펼치고 수정작업이 한창인 하 씨를 만났다.

경남 하동군 진교면 양포의 3남 1녀 막내로 태어난 하경진(48) 씨는 5살 때 모친을 여의고 양포초등학교 5학년 때 현대조선에서 일하는 부친을 따라 울산으로 이사 와서 중학을 마쳤다. 부산 거제리 고모 댁에 드나들면서 고종사촌 자형 배인법 씨의 불화 그리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되었는데 당대 불화 최고봉 석정 선사의 첫 제자인 인법 선생의 불화는 소년의 관심을 끌 만했다. 대여섯 살 때 할머니 손잡고 어머니 제사를 모시러 절에 드나들며 보았던 금불상과 탱화를 사삿집에서 보게 된 것이 무척 신기롭고 매력적이었다. ‘불화 한 번 배워볼래?’ 고모님 말씀 한마디에 기다렸다는 듯이 엎어져 불화 수업을 받는다. 1981년 16살 때였다.

불화작업은 반복하여 습화를 하고 필력을 키워야 한다. 하나의 초(草)를 수백 수천 번 그려야 한다. 동자초부터 시작하여 시왕초, 보살초, 사천왕초 등과 불보살의 의습을 익혔다. 스승이 시키는 대로 반복 또 반복 작업하면서 단청도 익혀나갔다. 1988년 석정 선사 선주산방 곁으로 불화소를 옮기면서는 석정 선사를 뵈올 기회가 잦았다. 선사가 회갑 되던 해 인법 스승을 비롯한 무문·무생 등 상좌 스님들과 함께 5대 적멸보궁을 참배하는 여행에 동행하게 되었다. 큰스님과 함께한 설악산 봉정암 참배 길은 평생을 두고 잊을 수 없는 영광이었다. 이후 석정 선사는 간송미술관 등 서울에서 중요 전시회가 있을 때마다 꼭 동행하도록 해 불화 보는 안목을 넓혀 주었다. 선사 따라 눈높이를 키우는 일들은 반복되었다. 28살 때 선주산방 석정 선사 불화소로 옮겼다. 선사를 시봉하며 본격적으로 불화 공부를 익혀나갔다. 내제자로서 선사의 엄격하고도 자상한 가르침으로 화사가 되기 위한 자세와 의식 등을 새롭게 배웠다. 종일 4장 정도밖에 그리지 못하는 사천왕초도 1000장 가까이 그리면서 필력을 키웠다.

평소 자상하고 인자한 큰스님도 불화습작에서만큼은 무서우리만큼 엄격하였다. 고려 시대로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는 불화의 전통을 중요시하였다. 어쩌다 초(草) 위에 천을 입혀 숫 그림(첫 그림) 하면서 자칫 어색해 보이는 데생 부분을 살짝 수정해 놓으면 이를 발견한 스님께 “이놈, 그걸 내가 몰라서 너한테 시킨 줄 아느냐. 그렇게 표현한 옛 화사 스님의 오묘한 뜻을 깨우치지 못한 놈!”이란 불호령을 들어야 했다. 예배자가 본 모습이 편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록 손 모습과 원근의 표현이 어색해 보이더라도 원만하신 부처님 표현을 위해서는 예배 대상으로서 보편적인 생각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인도 요가인들을 보아 수행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표현들로도 능히 짐작되는 표현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무엇보다 불화를 제대로 배운 사람의 작품인지 격이 떨어지는 불화인지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할 일이다. 그러므로 의겸, 신감, 긍척, 회안 등 조선 불화의 금어들 작품을 보고 익혀 안목을 높여야 했다.

석정 선사의 제자는 많지만 금어로서 불화를 계승하는 이는 하 씨의 스승 인법(73)이 유일하여 선사의 큰 제자로 불린다. 그 외에 수안(선화), 혜각(단청) 스님과 무용(전각)도 있다. 그러므로 하 씨 불화계보는 석정-인법으로 이어진다. 28살부터 큰스님 입적할 때까지 한시도 선사 곁을 떠나지 않으며 금어 훈련을 쌓고 불모의 법통을 계승하고 있었다. 2005년 선사의 배려로 경북 경주 동국대 불교미술과에 진학한다. 그리고 올해에는 같은 대학 석사 과정에 합격통지를 받았다.

2009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18호 불화장 전수조교가 된다. 통도사박물관을 개관할 때 개설한 불화반 출신들로 구성된 ‘돌샘’ 회원 30여 명이 격년으로 전시하는 등 전통 불화의 맥을 잇는 일에도 전수조교로서 책임지도를 하는 한편 문화재청 주관 전시회에도 매년 빠짐없이 출품하고 있다.

하 씨는 1991년 배인법 선생 불화소에서 만난 한국화를 전공한 동갑내기와 결혼하여 딸 셋을 두었는데 세 딸 모두 초등학교 때부터 미술에 관한 관심이 커서 부부를 기쁘게 한다. 특히 둘째는 화사로서 아버지의 작업세계를 존경하여 대학에서도 불화를 깊이 공부하기 위한 밑바탕으로서 한국화를 전공하려 한다.

하 씨에게 불화란 마음 찾는 공부이다. 마음을 항상 가다듬고 다잡는 큰 책임감으로 그려야 한다고 믿는다. 1981년 불화를 배우기 시작한 이래, 신념에는 변함이 없다. 큰스님에게서 그렇게 배웠다. 조소를 전공하는 큰딸과 판화에 두각을 내는 셋째 그리고 한국화를 전공하는 사랑하는 아내가 있기에 선 수행에 버금가는 어려운 화사의 길을 선택하고도 후회 없다. 그렇기에 석정 큰스님과 인법 스승의 전통 불화 정신을 계승하려는 금어로 향한 서원으로 오늘도 정진하고 있음을 행복으로 생각한다.//국제신문 2014.02.29, 주경업 부산민학회장//

장소 : 청사포 갤러리
일시 : 2021. 05. 15. – 0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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