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우展(부산시민회관 전시실)_20210519

//평론//

이상수(전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실장)

“예술이 자연을 모방한다”라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여기서 ‘예술’은 ‘미술’이라기 보다는 ‘인생’이며 ‘인간의 삶’이라는 말이 더 적합하다. 넓은 의미로 생각해서 인간이 자연의 일부이며, 살아가기 위한 모든 활동은 자연의 섭리대로 움직인다는 말과도 서로 통한다. 이는 자연을 모방하는 기술이나 방법이 무엇이든 간에 그 행위는 결국 ‘자연으로의 회귀를 위한 인간의 정신적 육체적 작용’이라는 것이다. ‘자연’으로의 회귀란 자연을 항상 느끼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능적 습성 때문인지도 모른다.

카메라를 처음 본 시대의 작가들은 두 가지의 관점으로 그 반응은 다르게 나타났다. 구상적 형태를 그리는 “회화는 이제 끝”이라는 사람들과 카메라의 과학적 속성을 미술과 결합한 사람들로 양분되었던 것이다. 후자의 관점을 따른 인상파 작가들은 미술에 빛과 움직임을 회화에 적용 시키며 회화가 주는 시각적 즐거움을 최고조로 끌어 올렸다. 미술표현에서 그 이후의 혁신적 방법들의 변화는 여기서 다 언급할 수 없을 만큼 많고 다양한 양상을 드러내며 15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세월 동안 사물의 모양을 재현하는 회화는 ‘종말’, ‘끝’, ‘죽음’, ‘최후’와 같은 일종의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어느새 ‘복권’과 ‘부활’을 반복해오며 현재까지 든든히 버텨내고 있다. 그 이유는 바로 인간이 자연을 느끼기 위한 궁극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을 다른 곳이 아닌 ‘회화’에서 찾으려 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박용우 회화의 출발은 이러한 관점에서 보아야 하고 읽혀져야 한다. 주목할 점이 있다면 그는 이러한 회화적 전통의 틀 안에서 드러나는 표현의 사실성과 색상의 분석적 태도 외에 분명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는 것이다.

박용우 회화의 주요 소재는 정물이 대부분이다. 일반적으로 정물화는 실내의 정지된 사물들이 품고 있는 이야기와 형태가 적당한 조형적 비례와 색상으로 표현된다. 실내의 중심부 혹은 비워져 있는 공간에 놓여져 있는 정물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의지가 강하게 개입된 소유물’ 들이다.
이 말은 인간에 의해 수확 되어진 자연물이거나 공산물들이 인공적 건축물아래에 놓여지게 되었다는 현재의 공간적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의 정물화란 그 정물이 가지고 있는 장식적 의미와 기호적 효과를 포착해내어 그 정물이 위치하고 있는 주위 환경에 대한 심미안적 요소를 시각화시키는 것이다. 공간 속에 숨어있는 심미안적 요소를 발견한다는 미학적 상상력들은 종종 ‘장식성’과 강하게 연결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정물화에 등장하는 소재의 일반적 물성(物性)을 뛰어넘는 상징성에 의해 장식적 효과를 뛰어넘는 새로운 차원을 가지기도 한다. 그 새로운 차원이란 박용우 회화의 주요 소재로 등장하고 있는 해바라기, 모란, 사과 등이 동양적 생활풍습의 차원에서 풍수 사상과 연관시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동양적 생활풍습에서 자연물들의 외형이 가지는 물리적 형상을 상징성으로 치환시켜 희망과 의지의 표상으로 삼고자 하는 것은, 거의 민간신앙과 비슷한 입장이다. 예를 들어 기도처나 정한수(靜寒水)에 대고 비는 것이 적극적 기도라고 한다면, 이러한 표상으로 가문의 번창, 입신양명(立身揚名), 무병장수, 안락한 삶을 희망하는 것은 간접적 기도의 효과가 있는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 이른바 ‘복·록·수(福·祿·壽)’로 대표되는 각종 소망과 상징들이 그가 선택한 소재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의 실외 소재의 작품을 보면 지금까지의 설명과는 또 다른 양상을 가지고 있다. 실내의 정물들로 이루어진 정물화가 기존의 폐쇄적 환경을 새로운 공간으로 변화시키는 미학적 작용을 하였다면, 실외의 소재는 자연물로서 생명력과 역동성까지 느끼게 해준다는 점이다. 붓꽃과 자목련이 자체의 상징성과 조형성으로 힘을 가진다면 해바라기는 파란 하늘과 구름을 배경으로 현장감과 생명감을 더 배가시킨다. 현장감과 상징성을 극도로 강조하고 싶었던 작가의 의지는 붉게 물든 은행잎들 위에 인간을 정물로 등장시키기에 이른다. 풍수적 상징조형물의 존재가 지극히 현실적이었다면 그의 누드는 아연스런 초현실적 환경의 ‘인체 정물화’라고나 할 것이다. 현대미술의 표현은 현실 세계에 대한 강한 언급을 위한 다양한 형태로 나올 수 있다. 이 강한 언급이란 바로 자연과 현실 세계의 모습을 보면서 취하는 ‘따라 하기’이며 ‘모방’인 것이다. 구상미술은 그 자체로 추상적인 형태에 대한 암묵적인 이해를 기반으로 추상이나 초현실적 표현도 자연에서 파생된다는 말이다. 아무 곳에서나 볼 수 없는 질주하는 군마들에서, 붉은 모노톤이 풍성하게 깔린 은행잎 위의 누드는 초현실적 구상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을 바라보는 중요한 시선은 그가 정물화의 소재로 썼던 사물들의 상징성과 조형성을 ‘함께 보기’로 하자는 것이다. 주렁주렁 열린 붉고 탐스러운 사과, 이른 봄 살색과 핏빛으로 땅을 물들이는 붉은 목련의 풍성함, 투명하고 노란 꽃잎과 그 사이를 뚫는 황금빛 햇살은 구상, 추상의 구분이나 정물화의 속성을 탐구해보려는 자에게는 과분한 축복일 수 있다.//이상수//

장소 : 부산시민회관 전시실
일시 : 2021. 05. 19. – 0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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