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인플레이션展(제이무브먼트 갤러리)_20220310

//보도 자료문//
치직치직.……들리세요?

이 메시지를 받은 당신은 살아남은 마지막 인류 중 하나입니다. 인류는 알 수 없는 이유로 파국을 맞았으며 이 상황 속에 놓인 당신은 그 이유를 추측해 볼 따름입니다.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고조(高潮) 피해가 원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지대가 낮은 곳은 범람에 의한 피해를 받았을 수 있겠죠. 당신은 이미 오래전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가라앉아버렸다고 알려진 인도양과 남태평양의 섬나라 이름들 – 몰디브, 피지, 사모아 – 의 이름을 기억하려 애써 봅니다.

인류의 파국은 대규모의 감염병이 원인이었을 수 있습니다. 인류는 항상 질병과의 힘겨운 싸움을 이어왔습니다. 오래전, 혹은 가까운 과거에 대규모 팬데믹이 있었을 수 있습니다. 지속된 지구 온난화가 감염증을 매개하는 모기와 같은 생물의 번성을 불러왔으며 이로 인해 말라리아, 뎅기열 같은 오랜 역사를 가진 질병부터 새로운 질병까지 발생했을 수 있을 것입니다. 혹은, 열파나 홍수, 가뭄 등으로 인한 질병이 창궐했을지도 모르죠.

예전에 당신은 ‘생물 다양성의 위기’라는 문구를 본 기억이 있습니다. 육상 생물들이 상승하는 지구의 온도에 맞추어 끊임없이 고위도 지역으로 이동하기에도 한계가 있었죠. 해양 생태계의 경우도 별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수온의 상승으로 인하여 해수의 순환이 약해지고, 이는 해양 생태계에 치명적이었습니다. 바다에는 백화된 산호만 남은 지 오래입니다. 이에 생태계의 균형이 깨지며 인류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겠죠.

당신은 주위를 둘러봅니다. 우거진 녹지대가 보입니다. 자연은 인류가 사라지자 생각보다 빨리 스스로를 회복했습니다. 이상하게도 이질감이 들지 않는 풍경입니다. 당신은 이미 유적처럼 남겨진 인류의 조그만 자취 – 무너진 콘크리트, 녹아든 플라스틱 조각 등 – 를 허망하게 바라봅니다.

인류가 남긴 전파는 영원히 우주를 떠돌 것입니다.

치직치직.……들리세요?

우리는 인류의 번성과 존속에 대해 이상할 만큼 공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인류는 지금까지 주어진 위기를 능숙히 해결해 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믿음이다. 기나긴 지구의 역사를 생각해 본다면 인류는 이제 막 걸음마를 떼었을 뿐임에도, 몇 만 년에 걸쳐 지구의 주인 행세를 해왔으며 유례없이 생태계를 교란시켜 왔다.
지난 2020년 시작된 Covid-19 팬데믹은 이러한 인류의 공고한 특권의식에 약간의 불안감을 심어주기 충분했다. 인류의 고통은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종의 번성을 불러왔다. 팬데믹으로 인해 줄어든 인간의 활동이 도로에 다니는 차량 수를 줄여 야생동물의 로드킬 수를 줄임은 물론 서식지 간의 교류를 활발히 만들어 생물 다양성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쳤다는 보고가 있었다. 이러한 아이러니가 유발하는 불안한 질문은 다음과 같다; 인류는 지금까지 지구에 어떠한 영향을 미쳐온 것인가? 전시 《그린 인플레이션》이 상정하는 소수의 인류만이 살아남은 아포칼립스의 세계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성찰을 요청한다. 나아가, 세 명의 작가(김도연, 김원정, 윤석원)는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제시하고 있다.

윤석원이 그려내는 식물이 가득한 풍경 속에는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덤덤히 그려낸 식물의 모습은 인간과 식물이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주는 듯, 얼핏 완벽한 타자가 되어 등장한다. 그러나 그가 이전의 작품들에서 민중미술을 연상시킬 정도로 인간 사회에 밀착한 풍경을 그려냈다는 점으로 볼 때 그의 식물 연작들을 단순한 타자화로 읽어내는 것은 부당할 것이다. 작가는 식물이 일으키는 기억과 감정을 소환하며 작품을 완성한다고 말하고 있다. 즉, 오히려 이러한 거리 두기는 어떠한 정념들을 일으키며 인간의 기억에 대한 매개자로 기능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 인간과 자연은 ‘서로 지켜보는’ 타자로서 밀접히 연관된 공동체의 일원인 것이다.

반면 김도연은 인간의 눈으로 세계를 집요하게 관찰한다. 김도연이 그려내는 풍경들은 속도감이 느껴지는데, 이는 카메라 렌즈를 통해 본 듯 관조의 시선이 느껴지는 윤석원의 작품과는 확연히 다르다. 김도연 또한 이러한 풍경들을 기억을 소환하는 매개체로 삼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마치 인류가 이룩한 문명을 상징하는 교통수단을 이용하여 빠르게 이동할 때 포착되는 풍경을 묘사한 듯한 김도연의 풍경들은 결코 자연을 단순한 배경화면으로 두지 않는다. 철저히 인간의 눈에 비치는 찰나의 모습을 담아내면서도 그 시선은 자연에 단단히 고정하고 있다.

한편 김원정은 일괄적으로 제시되는 가치의 기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 위한 방법으로 식물을 등장시킨다. ‘잡초, 그 ‘의미 없음’에 대하여‘에 사용된 화분들은 모두 작가가 가격을 흥정한 화분들로, 작품의 영상은 잡초의 정의와 화분의 가격 측정 과정에 대한 인터뷰로 이루어져 있다. 작가는 ‘잡초’로 대표되는 모든 밀려난 존재의 편에 서서 일괄적 기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데, 이러한 태도는 ‘Dear to Dear’에서 더욱 확장된다. 작가는 작가노트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생(生)과 사(死), 선(善)과 악(惡), 빛과 그림자와 같이 대등한 관계로서 존재하며 서로의 실재를 증명하는 대상들… (중략) … 서로가 존재함으로써 비로소 증명되는 관계는 결국 개인이 아닌 서로를 위한 ‘하나’로써 존재하게 된다.” 작가는 단순히 인간과 비인간으로 분류되는 존재론이 아닌 ‘하나의 존재론’을 표방하며 포용력을 보이고 있다.

인류의 암울한 미래를 피하기 위하여, 우리는 ‘서로가 존재함으로써 서로 증명되는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인류에 대한 편협한 존재론을 극복하고 하나의 존재론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아직 남아있을까. 이것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면서 이미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한 것이다.//글/한수정 큐레이터//

장소 : 제이무브먼트 갤러리
일시 : 2022. 03. 10 – 04. 20

추PD의 아틀리에 / www.artv.kr / charmbit@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