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노트//
당신의 차가운 심장(윤사유)
시인 허수경을 알게 된 것은 전시를 한 달 앞둔 올해 겨울의 초입이었다. 나는 12월에 시작되는 전시에 걸릴 그림을 펼쳐두고 제목 짓는 일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날은 노트에 무엇이든 적어보는 걸로 작업이 시작되었다. 나는 거친 종이 위에 연필로 이렇게 썼다.
당신의 차가운 심장
핏덩이 같은 빨간색을 그려보고 싶어
당신의 심장을 만지고 싶어
이 문장들 옆 빈 공간에는 ‘빨간색’이 좋을지 ‘붉은색’이 좋을지 끄적여 두었다. 붉은색 옆에는 ‘따뜻한 심장’이라고도 썼다. 나는 최초의 표현을 고치지 않고 내버려두었는데, 붉고 따뜻한 심장은 어루만지지 않아도 이미 따뜻하기 때문이다. 차갑고 빨간 것, 온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당신의 차가운 심장’이라는 문장을 검색해 보았을 때 우연히 보게 된 것은 허수경의 시이자 동명의 시집인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이었다. 어느 블로거가 올려둔 시 전문을 읽고 도서관에 가서 그의 시집을 전부 빌렸다. 그날 오후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이마를 짚은 채 시를 읽는 일로 시간을 보냈다. 시를 좋아해 왔지만 내가 시인을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은 드물게 찾아오는 것이었고, 허수경은 금세 내게 중요한 사람이 되었다. 시집은 총 여섯 권이었는데, 2016년 이후로 신간이 없었다. 책 앞 날개에 있는 사진 속에서 화장기 없는 말간 얼굴로 미소를 띤 그녀는 젊어서 세상을 떠났다. 나의 어머니에게 찾아온 것과 같은 병으로.
나는 ‘그림’으로써 추구하고자 하는 ‘시적’인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었다. 허수경의 시가 갖는 정취를 원하는 것이라면, 내가 그의 시에 반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표면적인 배경의 유사성은 단순했다. 경남지역과 그 인근에서 나고 자라 대학을 졸업하고 20대 후반에 상경한 여성이라는 것.
전시 제목으로 가져온 동명의 시집 ‘혼자 가는 먼 집’(1992)에서 허수경은 가난한 서울 생활의 현실을 이렇게 말한다.
서울 와서 내가 제일 많이 중얼거린 말
먹고 싶다…….
살아내려는 비통과 어쨌든 잘 살아 남겠다는 욕망이 뒤엉킨 말, 먹고 싶다
(‘먹고 싶다……’)
33년이 흐른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은 그때와 다르지 않다. “혼자 대낮의 공원”(‘흰 꿈 한 꿈’)에 만취한 사람이 있고, 녹물이 뚝뚝 떨어지는 굴다리 밑에 모여든 ‘갈 곳 없는 사람들’과, “한 칸의 누울 자리”(‘쉬고 있는 사람’)를 찾아 헤매는 사람이 있다. 앙상한 나무와 뼈가 다 드러난 몸들은 호젓하게 밤거리를 돌아 다니며, 나의 ‘늙은 민들레’ 그림처럼 “꽃을 잡고 우는 마음의 무덤”(‘씁쓸한 여관방’)이 듬성듬성하다.
근대화와 함께 한때의 꿈을 상징하는 ‘붉은 벽돌 집’에는 이제 “한 시절 갈아 입지 못한 속옷에서 나는 냄새”(‘산수화’)가 난다. 가수 신해철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작가로 일했다는 그는 ‘바다탄광’에서 신해철의 노래를 인용하며 이렇게 노래한다.
내 노래는 누굴 위한 걸까
허수경은 사회를 구조적으로 바라보고 비판하는 대신 다소 무력하고 허무한 태도로 현실을 견뎌낸다. 우리의 유한한 몸이 “이만큼 살아옴의 상처”(‘혼자 가 는 먼 집’)에 어떻게 기대고 또 대항하는지 보여줌으로써 쓸쓸한 마음들을 위로해 준다. 이십 대의 그가 하고 있는 위로의 방식은 효율이 중요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애써 잊고 지내는 일을 들추어내는 데 있다. 아픈 몸, 슬픈 기억, ‘혼자’가 된 감각들은 불쾌한 자기 연민으로 비춰지며 사회가 요구하는 생산성에 반한다. 그 안에서 현실을 분석하려 드는 일은 불가능하다. ‘먹고 싶음의 욕망’에 사로잡힌 자는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배고프게 하는지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가 서울을 떨쳐 떠나 독일에서 고고학을 공부한 건, 유동하는 현실에 가라 앉을 시간을 준 채, 침묵하는 것들을 응시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지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더 무거워진 몸을 피할 수 없이 끌어안아야만 했다. 나는 허수경의 시가 아프다. 읽는 순간에는 견딜 만하다가도 시집을 덮고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불현듯 찾아와 울린다. 내 그림도 당신의 아픈 곳을 날카롭게 찌를 수 있 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소리내어 우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들이 목소리를 빌려 울 수 있기를, 끝끝내 나을 수 있기를 바란다. 서로의 차갑고 빨간 심장에 따뜻하고 붉은 손을 올려줄 수 있기를….
몇 달 전 흥미로운 일이 생겼다. 케케묵은 첫사랑의 편지를 꺼내어 이제는 버리겠노라 마음먹은 것이다. 오늘 내가 허수경의 시에서 느끼는 놀라움도 머지않아 발굴이 필요한 것이 되리라 생각한다. 나의 스승은 “깊은 슬픔이나 묵시적 공포의 허무함도 한때의 일상일 뿐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때는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아무래도 내 그림을 꿰뚫어 보신 것 같다. 일상의 무게를 견디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존경한다.//윤사유//
장소 : 갤러리 이듬
일시 : 2025. 12. 09 – 12. 29
추PD의 아틀리에 / www.artv.kr / charmbit@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