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다원을 찾아서展(소울 아트 스페이스)_140123

『나는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페노바르비탈 육십 알과 새콜사나듐 다섯 알을 한꺼번에 먹었다. 나는 진실로 오래간만에 의식의 투명을 얻었다. 나는 지금 편안하다.
나는 지금 출렁거리는 바다 저편에서 나를 향해 웃음을 보내는 나의 애인의 얼굴을 본다. 그리고 지금 나의 앞에는 나의 친애하는 벗들이 거의 다 모여 있음을 본다. 나는 그들이 나를 지켜 주고 있는 이 시간 이 자리에서 더 나의 생애를 연장시키고 싶지는 않다.
잘 있거라, 그리운 사람들.』

김동리의 ‘밀다원 시대’ 소설 중에서 박운삼이 쓴 ‘고별’이라는 제목의 유언장 내용이다. 밀다원의 한 구석에서 죽어가며 박운삼이 바라본 부산은 당시 어떤 모습이었을까. 전쟁통에 삶과 죽음의 경계를 몇 번이나 넘다들었을 사람들이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습 속에서 삶 대신 죽음을 택한 한 지식인의 애환이 느껴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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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해일(海溢)이 있을
듯한 저녁 때
나는
홀로 바닷가에 섰다.

저 어리광을 부리는 듯한
푸른 물결에
마음은
드디어 무너져 가는가.

먼 바다 저쪽
흰 옷의 신부(新婦)는
등대(燈臺) 같이 섰는데
나는 나를 살르어
불을 켜는가』<‘밀다원 시대’ 소설 속 박운삼의 유작시 ‘등대’>

김동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2013년 가을 서울도서관과 대산문화재단은 김동리 소설을 미술로 재창조한 전시회를 가졌다. 중견화가 7명과 소설가 윤후명 등 8명이 김동리의 대표 단편 8편을 읽고 각자 한 편씩을 선정하여 그린 것이다. 박영근 화가가 ‘화랑의 후예’, 최석운 화가가 ‘바위’, 김선두 화가가 ‘무녀도’, 황주리 화가가 ‘황토기’, 이인 화가가 ‘역마’, 임만혁 화가가 ‘흥남 철수’, 김덕기 화가가 ‘밀다원 시대’, 윤후명 소설가가 ‘등신불’을 맡아 소설 속 장면을 시각화 했다.

이 전시는 2014년 부산으로 옮겨 와 부산 시민들에게 옛 향수와 추억을 되살리고 있다. 특히 김동리의 ‘밀다원 시대’는 부산 남포동과 광복동을 무대로 하고 있어 부산 사람들에게는 남다른 감회를 줄 것 같다. 해운대에 있는 소울 아트 스페이스에선 1월 23일부터 2월 24일까지 <밀다원을 찾아서>란 제목으로 40여점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우리 근대 사회의 풍경과 민중들의 모습을 소설 속에 실감나게 담아내고 있다.

‘화랑의 후예’를 그린 박영근 화가는 몰락한 양반 ‘황진사’가 엉겅퀴, 작약, 할미꽃 등의 꽃말 모자를 쓰고 있는 모습으로 인물의 성격을 표현했다. 김덕기 화가의 ‘밀다원 시대’는 한국전쟁 속에서 밀다원이라는 다방을 암울한 소설 내용과는 달리 화려한 꽃밭과 포근한 안식처로 그리고 있다. 김선두 화가는 ‘무녀도’에서 어머니와 아들 간 종교의 갈등을 수묵화로 그 분위기를 나타냈다.

최석운 화가는 ‘바위’를 읽고 일제 강점기 조선인의 안타까운 삶의 모습을 절절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인 화가는 ‘역마’의 한 장면을 그리고 있는데 계연과 헤어진 성기가 중병을 앓은 후 운명에 순응하는 장면을 새와 복숭아 등을 통해 그려내고 있다. 또한 김선두 화가는 ‘무녀도’를 수묵화로 표현해 소설 속 모화와 욱이 그리고 낭이의 슬픔을 애절하게 표현했다.

서울에서는 2006년부터 서울도서관이 한국 대표 문인들의 작품을 미술로 형상화하는 ‘문학그림전’ 행사를 해 오고 있다. 이번 <밀다원을 찾아서>展을 계기로 부산에서도 문인과 화가가 공동으로 부산의 추억과 향기를 그려보면 어떨까. 활자매체에 익숙한 문학을 그림과 접목해 관객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고 고전을 널리 알리는 계기도 될 것이다. 2014년에는 부산 미술계도 ‘흥미롭고 친근한’ 미술 전시로 풍성 해 지기를 기대 해 본다.

– 장소 : 소울아트스페이스
– 일시 : 2014. 1. 23 – 2. 24

추PD의 아틀리에 / www.artv.kr / ab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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