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선정展(나인원 갤러리)_20260511

//작가 노트//
모래사장은 단 한 순간도 고정된 상태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이 지반은 공기의 흐름과 바람의 미세한 압력에 의해 끊임없이 해체되고 재구성됩니다. 모래알 하나하나가 비산하고 흩어지며 매초 다른 형상을 빚어내는 과정은 존재가 소멸로 향하는 지극히 자연스럽고도 필연적인 움직임입니다. Sand Series는 이처럼 포착할 수 없는 찰나의 흔적을 집요하게 추적하며, 사라짐 그 자체를 기록의 영역으로 끌어들입니다.

작가의 작업은 ‘동일 장소, 다른 시간’이라는 엄격한 아카이빙의 원칙 위에서 수행됩니다. 고정된 좌표 위에서 반복적으로 시간을 지켜보는 행위는 단순히 풍경을 채집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이 소멸해가는 과정을 묵묵히 증언하는 제의적 관조에 가깝습니다. 이번 흑백 시리즈는 색채라는 감각적 층위를 걷어내고 오직 입자의 물성과 텍스처, 그리고 빛이 빚어내는 명암의 대비에 집중합니다. 화면 속에 포착된 패턴과 고립된 파편들은 곧 지워질 것들이 내뿜는 사라지기 전의 긴장을 시각화합니다.

우리가 이 이미지들에서 마주하는 것은 완성된 형태가 아니라, 형태가 무너져 내리는 경계에서의 불안입니다. 그러나 그 불안은 파괴적인 종말이 아니라, 모든 것이 흩어져 다시 영점(Zero-Point)으로 회귀하는 찰나의 아름다움입니다. 흩어지는 것들을 지켜보는 작가의 시선은 소멸을 슬퍼하기보다, 그 덧없음이 지닌 절대적인 진실을 찬미합니다. 인위적인 개입을 배제한 채 공기가 빚어낸 무질서의 질서를 기록하는 과정은, 결국 우리 삶이 마주하는 수많은 사라짐에 대한 예술적 긍정이기도 합니다.

전시장을 채운 사진들은 각기 다른 날짜와 시각의 기록을 품은 개별적인 데이터들입니다. 관객은 이 정지된 장면들 사이에서 흐르는 시간의 궤적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이 비산하고 붕괴하여 마침내 아무것도 남지 않는 그 영점의 순간, 우리는 비로소 소멸이 지닌 고요한 완성도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번 전시는 사라지는 것들을 향한 긴 기다림의 결과물이자, 그 시간을 흘러가게 지켜본 기록자의 정직한 아카이브입니다.//류선정//

장소 : 나인원 갤러리
일시 : 202. 5. 11 – 5. 31

추PD의 아틀리에 / www.artv.kr / charmbit@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