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희展(낭만시간연구소)_20260711

//전시 소개//
부산 동구 초량의 독립예술공간 낭만시간연구소는 최은희 작가의 개인전 ‘해방된 회화: 토양에 뿌려진 그림들’을 개최한다.
‘해방된 회화: 토양에 뿌려진 그림들’은 회화가 견고한 흰 벽 위에 걸려 영구히 보존되어야 한다는 통념에서 벗어나, 자연의 시간과 환경 속에서 변화하고 소멸하는 과정까지 작품의 일부로 바라보는 전시이다. 작가는 회화를 고정된 이미지나 완결된 오브제가 아닌, 흙과 바람, 비와 햇빛 속에서 살아가는 하나의 생명체로 제안한다.
최은희 작가는 부산예술고등학교와 부산대학교 미술학과를 졸업하고, 동서대학교 디자인전문대학원에서 시각디자인 박사학위를 받았다. 작가는 오랜 시간 물감 튜브와 붓을 자신의 페르소나로 삼아 삶과 창작,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회화로 탐구해 왔다. 물감 튜브에서 피어나는 꽃과 잎, 붓과 나무가 결합 된 작업은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고 삶을 통과하며 형성해 온 감각과 철학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이번 전시는 회화가 화이트큐브를 벗어나 밭으로 나아갔다가, 다시 전시장 내부로 돌아오는 과정을 담는다. 작가는 기존 회화가 요구받아 온 완결성과 보존성에 질문을 던지며, 일부 작품을 실제 자연환경 속에 놓아둔다. 린넨 위의 그림은 비와 바람, 온도와 습도에 그대로 노출되고, 물감은 스며들거나 번지며, 화면은 마모와 변형의 시간을 지나게 된다.
작가에게 이러한 변화는 작품의 훼손이 아니라 회화가 자연과 관계 맺는 방식이다. 일반적으로 회화는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도록 관리되고 보존되어야 하지만, 이번 작업은 그 반대의 조건을 받아들인다. 작품은 자연 속에서 견디고, 변하고, 때로는 소멸하며, 그 변화의 흔적 자체가 새로운 회화적 이미지가 된다.
전시장 내부에는 잔디를 깔았다. 잔디는 단순히 자연을 재현하는 장식이 아니라, 밭에서 진행된 작업의 시간과 감각을 전시장 안으로 옮겨오는 매개다. 전시기간동안 잔디는 관람객의 이동과 공간의 사용에 따라 눌리고, 길이 생기며, 일부는 시들어갈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작품이 전시장 안에 들어온 뒤에도 여전히 자연의 시간 속에 놓여 있음을 드러낸다.
화이트큐브는 더 이상 깨끗하고 중립적인 배경으로 남지 않는다. 관람객의 발자국, 잔디의 변화, 작품이 머문 시간은 전시장 안에 축적되며, 회화와 설치, 관람 경험을 함께 변화시키는 요소가 된다. 전시는 완성된 결과물을 보여주는 데서 멈추지 않고, 시간이 지나며 달라지는 풍경 자체를 하나의 작업으로 받아들인다.
이번 전시에서 린넨은 단순한 캔버스가 아니라 식물이 뿌리를 내리고 수분을 머금는 토양으로 기능한다. 작가는 밭에서 자라나는 식물의 잎과 뿌리, 새순과 마른 줄기, 열매와 낙엽의 변화를 관찰하며 자연의 순환을 작업으로 옮긴다. 식물은 계절마다 잎을 피우고 내려놓으며 성장과 쇠퇴, 소멸과 재생을 반복한다. 작가는 이 과정을 인간이 감정과 경험을 쌓고, 때로는 좌절과 자책을 견디며 다시 살아가는 시간과 겹쳐 본다.

작품 속 뿌리는 생명의 시작점이자 보이지 않는 내면의 힘을 상징한다. 작가는 관람객이 자신의 삶에서 잎을 내려두었던 순간들, 멈추거나 흔들렸던 시간을 떠올려 보기를 바란다. 식물이 땅속의 뿌리를 통해 다시 새로운 계절을 준비하듯, 인간 역시 각자의 시간 속에서 회복과 재생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메시지다.
이번 전시에는 실제 야외에서 자유롭게 전시되며 비와 바람, 온도와 습도를 경험한 작품과, 한 번도 전시장 밖으로 나가지 않은 작품이 함께 소개된다. 관람객은 서로 다른 환경과 시간을 거친 회화들을 한 공간에서 마주하며, 자연에 노출된 회화와 보존된 회화 사이에 생겨난 표면의 변화와 감각의 차이를 살펴볼 수 있다.
특히 해방된 작품 가운데 일부는 관람객이 직접 손으로 만져볼 수 있도록 구성된다. 이는 작품을 시각적으로 감상하는 대상에만 머물게 하지 않고, 자연 속에서 변화한 린넨의 질감과 물감의 흔적, 시간의 축적을 촉각적으로 경험하도록 하기 위한 시도다. 작품을 만지는 행위는 회화가 다시 자연과 관객의 몸 사이에서 관계를 맺는 과정이기도 하다.
관객은 흰 벽에 걸린 작품을 일정한 거리에서 바라보는 방식에서 벗어나, 잔디 위에 놓인 회화와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하게 된다. 손으로 작품을 만지고, 발밑의 잔디를 밟고, 변화하는 공간의 분위기를 감각하면서 관람객은 작품의 외부에 머무는 존재가 아니라 전시의 시간에 함께 참여하는 존재가 된다.
최은희 작가는 “회화를 더 이상 흰 벽에 걸린 고정된 이미지로만 바라보고 싶지 않았다” 며 “비와 바람을 맞고 변화하는 과정을 통해 회화가 자연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소멸하며 다시 새로운 감각으로 태어날 수 있는지 탐색하고자 했다”고 전했다.
낭만시간연구소는 “이번 전시는 회화를 보존해야 하는 대상으로만 바라보던 시선에서 벗어나, 자연과 시간, 관객의 몸과 관계 맺으며 변화하는 존재로 다시 생각하게 하는 자리”라며 “잔디가 깔린 전시장 안에서 관람객들이 작품을 시각적으로만 감상하는 것을 넘어, 자연 속에 놓인 회화의 감각을 몸으로 경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 ‘해방된 회화: 토양에 뿌려진 그림들’은 회화의 경계를 자연으로 확장하고, 다시 전시장 안으로 불러들이는 과정을 통해 회화가 어디까지 자유로워질 수 있는지를 질문한다. 작품은 자연으로부터 빌려온 재료와 시간, 변화의 흔적을 다시 회화 안으로 되돌려 놓으며, 보존과 완결의 언어 바깥에서 새로운 회화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낭만시간연구소//

장소 : 낭만시간연구소
일시 : 2026. 7. 11 – 7. 26

추PD의 아틀리에 / www.artv.kr / charmbit@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