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지展(솔트 갤러리)_20260827

//작가 노트//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을 경험한다. 나 역시 어린 시절부터 가족의 마지막 순간을 여러 차례 함께했다. 떠나간 이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오랜 시간 내 작업의 시작점이 되었고,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진 아름다움과 함께했던 평범한 순간들을 붙잡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나를 찾아왔다. 새로운 생명을 만난 행복감은 단순히 상실을 잊게 해준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욕조는 목욕만을 하는 공간이 아니라 자신의 온 세상이 된다. 작은 인형은 가족이 되고, 컵은 배가 되며, 도깨비는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 함께 놀 수 있는 친구가 된다. 아이는 세상을 구분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나는 아이를 통해 비로소 알게 되었다. 세상이 변한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변하고 있었다는 것을. 상실을 경험한 사람이 새 생명을 통해 배운 것은 결국 존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방법이었다.
이번 전시 ‘신묘하고 아름다운 순간’은 아이의 시선을 통해 세상을 다시 배우게 된 경험의 기록이며, 우리가 잃어버렸던 감각을 다시 일깨워 주는 이야기이다.

작품 속에 도깨비 가면이 등장한다. 도깨비는 낯선 존재이지만, 우리 설화 속에서는 늘 인간 곁을 지켜온 존재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이는 도깨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함께 놀고, 친구가 되며, 한 공간에서 즐거운 세상을 만들어 간다.
12지신 애착 인형 또한 단순한 장난감이 아니다. 부모의 사랑과 보호가 머무는 존재이며, 때로는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기억하게 하는 또 하나의 가족이 된다.
나는 이러한 아이의 세계를 오래도록 바라보고 싶었다. 먹물과 세필로 선을 긋고, 수십 번의 채색을 반복하는 공필(工筆) 기법으로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우리가 의식하기도 전에 순식간에 지나가는 순간들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 선물한 나만의 시간이다. 하나의 선을 긋고 한 겹의 색을 올리는 일은 사랑하는 존재를 오래 바라보고 기억하고자 하는 마음의 표현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가장 느린 시간으로, 빠르게 흘러가는 삶을 기록한다. 이 전시가 누군가에게는 떠나간 사람을 그리워하는 시간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을 다시 바라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아이가 세상을 바라보듯, 우리도 잠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란다.//정상지//

장소 : 솔트 갤러리
일시 : 2026. 8. 27 –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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