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소展(갤러리데이트)_140611

최병소 화백(1943년 생)은 신문지 위에 볼펜과 연필로 까맣게 칠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대체로 너덜너덜 해져있고 빛을 받아 번득거린다. 신문지에 그려 나가는(작가는 ‘지워 나가는’이라고 표현한다) 그의 작업은 1970년대부터 시작됐다. 오후 내도록 비가 오던 날, 부산 해운대 갤러리데이트에서 작가를 만날 수 있었다. 전시 오픈식을 마치고 막 전시장을 나가는 작가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는데, 작가는 흔쾌히 응해줘서 다행히 작가의 모습을 영상에 담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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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0년대 단색회화의 대표적 인물로 손꼽히는 작가는 중앙대학교를 졸업하고 대구에서 오랫동안 활동하고 있다. 한정된 면적 또는 공간 안에 어떠한 물질이 빼곡히 들어 있는 정도를 ‘밀도’라고 한다. 최병소 작가의 작품에는 이러한 ‘밀도감’을 느낄 수 있다. 신문 한 장을 볼펜과 연필로 꽉 채운 그의 작품은 당연히 밀도가 높다고 볼 수 있다. 비평계에서는 노동이라는 수고를 통해 밀도를 높인 그의 작품에 대해 진정성, 개념성이란 함축된 단어로 평가하고 있다.

신문은 매일 매일의 소식을 종이라는 매체에 담아 독자에게 전달한다. 작가는 이러한 신문 속에 세상 이야기가 모두 담겨 있다고 생각하고 캔버스 대신 신문을 사용한다. 70년대 유신시대에는 작가의 이러한 행위에 대해 목적의식이 담겨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최병소 작가의 작품은 그 이후로도 다양한 각도에서 해석되고 평가 된다. 칠순이 넘은 작가는 이제 그의 작업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젊은 시절의 목적의식은 이제는 모두 비워냈고, 단지 재료와 도구의 물성에 대한 관심과 실험이 재밌을 뿐입니다. 아직까지 못해 본 시도가 있으니 당분간은 이 작업을 계속 해볼 생각이에요. 그리고 어느 순간 재미가 없어지면 다시 물감과 붓을 들어야죠. 물감 작업에 대한 목마름은 아직도 내 속에 내재되어 있습니다.” <‘삶과 예술’ 인터뷰 중에서>

전시장에는 신문의 주식 면은 그대로인데 그 옆면이 까맣게 칠해져 있는 작품이 있다. 작가는 세상 돌아가는 것이 반영된 주식 면은 그대로 두고 옆면만 지웠다고 한다. 최근 그의 작업에 변화가 생겼다. 요즘은 볼펜과 연필로 작업한 후 흑연으로 마무리 한다고 한다. 흑연으로 칠하고 나면 그의 작품은 더욱 너덜거린다. 흑연으로 마무리 된 작품의 표면은 찢어지고 종이가 일어나면서 어떻게 보면 밀도가 떨어지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소멸하며 태어나는 그의 작품을 보며 우리 인생과도 참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볼펜과 연필이 소멸되면서 태어난 작품은 인생의 희로애락을 충분히 겪은 후에 작가에 의해 밀도가 떨어진다. 하지만 밀도가 적어진다고 해서 인생의 끝인 것은 아니다. 그 때야 말로 진정한 인생을 즐기고 느낄 수 있는 시기가 아닐까. 노(老)화가로부터 또 한 수 배운다. 이번 전시는 해운대 팔레드시즈 2층에 있는 갤러리데이트에서 7월 21일까지 이어진다.

– 장소 : 갤러리데이트
– 일시 : 2014. 6. 11 – 7. 21

추PD의 아틀리에 / www.artv.kr / ab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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