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신展(갤러리 아트숲)_20150624

● 부산에서 태아나 아버지의 일자리로 인해 인천으로 올라갔다. 잘 살았다. 고1까지 그랬다. 하지만 IMF로 아버지의 건설업은 부도가 났고, 인천에 있던 우리 가족은 전국으로 흩어졌다. 고3을 졸업한 나는 어쩔 수 없이 채권자들로부터 안전한 부산으로 내려갈 수 밖에 없었다. 친구들과는 다르게 나는 대학에 갈 수 없었다. 그래서 20살 봄, 미술과 가장 비슷한 일을 할 수 있었던 화방에 취업했고, 나는 돈을 벌었다.
화방에서 다양한 재료를 직원이라는 명분으로 무료로 사용해 볼 수 있었고, 재료에 대해 폭넓게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판매직의 일상은 즐겁지 못했다. 10시간을 꼬박 서서 일해야만 했으며, 식사기간도 매우 짧았다. 그나마도의 식사의 대부분은 카운터 밑에 쭈구리고 앉아 바나나 따위로 식사를 해결해야 하는 날이 허다했다. 한 날은 쭈구려 앉아 물릴데로 물린 바나나를 먹다가 화가 치밀어 바나나 껍질을 휴지통에 내동뎅이 쳐버렸다. 그 때, 휴지통 입구에 걸쳐 늘어진 거뭇한 바나나 껍질을 보았다.
울컥. 눈물이 났다. 내 현재와 미래가 어쩌면 저런 헝클어진 껍질이 될 수도 있겠구나라는 절망과 분노, 한탄 같은 참아내기 힘든 감정이 올라왔다. 그리고 얼마 뒤 화방을 그만 두고, 부산예술대학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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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예대에 들어갈 즈음 우연한 기회에 서울에서 내려온 영화촬영팀의 미술감독님을 알게 되고, 나는 학교입학과 동시에 영화미술팀에서 일하게 되었다.
영화세트를 만드는 일은 흥미로웠다. 가상의 상황을 진짜처럼 만들어내는 일. 열심히 일했고, 대학에서 작업도 열심히 했다. 그렇게 4년을 영화세트를 만들며 작업하면서 얻은 것은 공간 스케일에 대한 이해와 스텝들과의 교류, 현장감이었다. 하지만 내게 벅찼던 부분이 있었다. 바로 하나의 작품을 여러사람이 만드는 영화의 기본적인 시스템이 나에게 맞지않았다. 그래서 나는 처음과 끝을 온전히 내가 책임지고 완성해내는 것에 집중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물리적 공간 안에서 평면의 시각경험이 내겐 더 크게 와닿았다. 그래서 평면회화에 더욱 몰두하기위해 서양화과에 편입하였다.
편입 후 닥치는데로 그렸다. 선과 공간, 신체의 움직임, 화면의 울림, 내제적 감정에 몰두하고, 선 하나하나에 예민하게 접근해 나갔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線에 적합한 재료를 찾기 시작했고, 그렇게 나의 몸에 밀착된 재료가 바로 목탄, 먹, 종이였다.

● 다시 유년으로. – 내가 초등2학년 때부터 어머니께서는 집에서 서예를 쓰셨다. 주로 한글궁서체와 해서(楷書)를 쓰셨다. 어머니께서는 연습하신 커다란 글씨들을 집안 곳곳에 붙여놓으셨다. 집안 전체가 글씨들로 가득했다. 나는 줄 곧 어머니의 커다란 서예 책상에서 붓과 종이를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했다. 더욱이나 난독증이 있었던 내게 서예는 아주 느리게 글자 한 자, 한 자를 써 내리는 반복적인 패턴이 단어의 뜻에 대한 접근을 더욱 차분하고 깊게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이 되었다. 또한 단어의 의미뿐만 아니라, 서예의 예민한 미적감각을 익힐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서예를 쓰기 시작하면서 연필과 볼펜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선으로 익히기 쉬웠던 그림을 좋아했다. 난초를 보는 것을 좋아했고, 디즈니 만화주인공을 볼펜으로 그려내기를 좋아했다. 붓은 유화붓 보다는 모필을 좋아했으며, 물감보다는 먹이 편했다.

● 다시 대학원시절로. – 나는 서양화, 동양화, 한국화를 생각하며 작업하지 않는다. 내게 다가오는 재료로 딱 그만큼씩 그리는 편이다. 단지 서양화를 전공했던 이유는 배우게 되는 스펙트럼이 어떠한 면에서 조금 더 넓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나의 작업을 마주할 때면 당연히 한국화를 전공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지 않다. 난 단지 한지와 먹과 목탄과 약간의 물감을 좋아했을 뿐이다.
모필, 목탄, 연필은 공통점이 있다. 내가 생각하는 만큼의 긴 선을 그어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목탄은 손을 대는 만큼 화면이 움직이는 폭넓은 구성력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종이와 목탄은 언제든지 집어들어 바로 그어내릴 수 있는 작업상의 민첩성도 지니고 있다.
종이.- 나는 갱지, 판화지, 순지, 화선지, 신문지, 장지 등 종이는 가리지 않고 작업하는 편이다. 같은 목탄이라도 받아내는 표면에 따라 그 파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장지는 물감을 깊이 스밀 수 있게 함으로써 높은 밀도를 얻어낼 수 있으며, 또한 건필(목탄, 연필, 콘테, 파스텔)까지도 최상의 울림으로 받아내어 주는 매체이기도 하다.
배접.-장지에 작업할 때, 가장 중요한 시간은 바로 판넬에 배접을 할 때이다. 이때는 작업실의 모든 집기를 정리하고 청소를 한 다음 아주 조용한 상태에서 배접을 진행한다. 이 순간 만큼은 나를 내려놓고 생각을 비워낼 수 있는 아주 편안한 시간이다. 이 과정이 끝나면 그 위에 그려낼 그림을 차분히 결정하고 적극적으로 드로잉에 몰입한다. 바나나를 그려낼지, 인체를 그려낼지, 한글을 그려낼지, 또다른 무엇을 그려낼지는 모두 이때 정해진다. 그래서 나의 작업은 여러시리즈가 비슷한 시기에 제작되어진다.

● 난독증. – 시각을 다루는 미술인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증상이 난독증이다. 단지 나는 조금 심했을 뿐이다. 글을 읽으면 단어들이 종이 위를 떠다니고, 아주 간단한 문장도 십수번을 읽어내려야 겨우 다음 문장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그래서 소리내어 책을 읽었으며, 그렇지 못하면 연습장에 글씨를 가지고 그림을 그렸다.
서예를 처음 배우면 쓰게 되는 단어 중 하나가 ‘바다‘이다. 이 단어를 처음 쓸 때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푸른바다를 떠올리며 써내린다. 그리고 두 번, 세 번, 계속 써내리다보면 ’다바‘가 되었다가 ’바바‘가 되었다가 ’다다‘가 된다. 더 이상 단어의 이미지나 의미는 사라지고 글자만 남는다. 그리고 이마져도 반복하다보면 ㅂ,ㅏ,ㄷ만 남다가 나중엔 붓으로 점을 찍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나는 한글그림을 작업하면서 ‘정의’된 것에 대한 많은 것들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단어가 의사소통의 기능을 넘어서 그 자체로서 완벽해지려 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정의된 단어’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폭력을 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사랑’이 그렇다. 사랑의 의미는 폭넓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사랑이라는 정의를 남녀로 한정 짓거나, 같은 인종으로 한정 짓거나, 일정한 나이로 한정 짓는다. 그리고 그것을 벗어나는 모든 것은 ‘사랑’의 정의에 어긋남으로 사랑이 아니라 외친다. 그것은 폭력이 될 수 있다.

● 회화의 기본. – 나는 회화의 기본을 인체에서 찾는다. 인체에는 세계의 모든 線들이 담겨있다. 또한 인체는 평면을 다루는 나로서는 평생을 걸쳐 도전하고, 경험해야하는 가장 큰 주제이다. 그래서 인체는 내게 크고, 소중하다.
목탄.- 목탄으로 선을 그어내리는 것은 내 손끝이 닳아없어지는 것과 같다. 목탄을 쥐는 순간 나의 신체는 손끝을 넘어서 목탄까지 이어진다. 모든 신경이 목탄 끝에서 시작되고 멈춘다. 강하게 그어내린 목탄선은 그 주변이 파편들로 가득하다. 사실 그 선을 받쳐주는 것은 선 주변의 파편이다. 그래서 아주 작은 점과 아주 미세한 흑적도 화면에선 우주 만큼이나 중요하다.
채색.- 바나나가 등장하는 Modern Life중세어도 선명한 색채들은 쉽게 작업되지 않는다. 먹으로 그려낸 바나나 위로 엷은 아크릴 물감이 스민다. 그렇게 딱, 한번. 그리고 하루를 기다린다. 바짝 마른 화면위에 어제보다 조금 더 짙은 아크릴 물감을 올린다. 그렇게 20번(20일)정도가 지나면 장지의 가장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밀도있는 색채를 얻어낼 수 있다. 그렇게 드리운 평면위에 이제는 흐릿해진 바나나 먹 선을 찾아 분채로 또 한번 겹겹이 올리기를 수십번 반복하면 하나의 작품이 완성된다. 이러한 작업은 자수를 두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든다.
상처로 얼룩얼룩한 바나나와는 대조되게 뚜렷하고 밝게 채색된 색채는 현대인의 외면을 이야기하기 위함이다. 내면의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허무한 화려함. 내가 바나나를 통해 보여주고자하는 현대인의 모습이다. 나는 조금은 엉뚱할진 모르나 이러한 현대인의 모습이 예전 우리의 규방여인네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표출할 수 없는 규범화 된 삶 속에서 고고한 기와집에 갇힌채, 눈뜨면 올라오는 물결치는 내면을 잠재우기 위한 느린 바느질을 그와 대비되는 화려한 문양과 색상들을 통해 표현했던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분명 시각적으로는 아름답지만 내면은 억눌린 삶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바나나, 한글, 인체, 그리고. – 그림을 그리는 것은 ‘생각하는 것’과 ‘그리는 것’ 사이의 어디쯤이다. 어느 때에는 생각에 가까울 수도, 또 어떤 날은 그리는 것에 가까울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이에서 그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자신을 그 순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Modern Life!●

– 장소 : 갤러리 아트숲
– 일시 : 2015. 6. 24 –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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