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경민展(에스플러스갤러리)_20151013

남경민

*유년 시절 독서로 다져진 작가적 영감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서울서 살아온 나는 늘 자연을 동경하고 그리워한다. 나무와 시냇물, 드넓은 하늘, 따사로운 햇살과 나뭇잎을 흔들리게 하는 바람은 나로 하여금 늘 미지의 세계에 대한 꿈을 꾸게 하였다. 그 꿈에 대한 동경과 갈증은 자연스레 독서로 연결되어 책 속의 다양한 삶은 나를 상상의 나래로 이끌었다. 유년 시절 우리 집에는 문고판 소설책이 꽤 많았는데 삽화가 전혀 없던 새로 줄 깨알 글씨의 동서양소설을 즐겨 읽기 시작하면서 문학에 대한 동경과 미지의 먼 곳을 향한 그리움에 대한 향수를 가지게 되었다. 어쩌면 그시기에 마음의 항해를 하는 작가로서의 나의 운명은 결정되기 시작했는지 모른다. 학교 일과후의 대다수의 시간을 독서로 보낸 유년 시절과 학창시절은 현재 작가로서의 나의 삶에 깊은 영감을 주었으며 지금까지의 내 일생에서 가장 완벽하고도 완전한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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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풍경
1998년 대학원 3학기 재학시절 시작된 비현실적인 실내풍경작업은 현재 작업의 연장선상에 있는 나비풍경, 화가의 작업실, 화가의 서재에 이어 지난 2015년 사비나 미술관에서 선보인 개인전 ‘풍경 속에 머물다’의 소재인 국내고전작업의 모태이기도하다. 나는 작업을 통해서 삶 속에서 느끼는 소외되고 고독한 인간의 심리를 실내공간이란 모티브를 통해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실내 공간 안에는 빛과 어둠이 존재했으며 창과 문, 커튼과 테이블, 의자 등의 오브제만으로도 내가 표현하고자하는 풍경의 느낌을 극대화 할 수 있을 것 만 같았다. 그 시절의 그러한 감성들은 그림과 존재에 관한 사유로 이어져 현실에 기반을 두면서 비현실주의적 느낌의 실내 풍경으로 표현되었으며 그 풍경은 적막했고 쓸쓸했다. 그 적막함은 풍요로운 문명의 혜택 속에서도 불현듯 찾아오는 공허함만은 감출 수 없는 나 자신은 물론 당대를 호흡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닮아 있었다.

*나비채집
2000년 대학원 졸업 후 실내풍경작업의 스팩트럼을 확장하게 되는데 나비채집과 화가의 작업실이 그것들이다. 당시 회화는 위기였고 영상설치작업의 시대가 도래 하였다. 이 시기에 그림이란 무엇인지, 또 내게 그림이 주는 의미에 대한 진정한 의문이 시작되었다. 그물음의 끝은 낙천적 혹은 염세적으로 다가왔다. 다시는 그림을 그릴 수 없을 듯이 절망했다가도 어느 새 작업실의 캔버스를 마주하며 그 어떤 일을 마주할 때보다도 열정적인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그러면서 그 순간만은 절대 행복이라는 것, 내 자신에 가장 솔직해지는 순간이었다. 회화를 통해서 나 자신을 내밀히 응시하고 표현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일이며 자유로웠다. 동시에 좀 더 예민해 질수 있으며 상처받을 수 있는 예술가의 내적인 자의식에 관한 긴 사유가 이어졌고 이를 작업에 투영하고자하는 욕구를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공기의 흐름에 몸을 맡기듯 유연한 실루엣의 나비 떼가 창을 통해 아파트 실내로 들어왔는데 그 찰나는 생경하면서 낯 섬과 동시에 매우 아름다웠다. 이 광경은 무척이나 기이하면서 초현실적인 느낌으로 뇌리에 남았고 작업의 연장선상으로 이어졌다. 나비의 존재는 섬세하고도 연약한 듯 보이나 강인한 면을 지닌 곤충이다. 무중력 상태의 우주정거장에서 날개 짓을 할 정도이니까. 단 며칠 아름다운 비행을 위해 수개월간 고치로 살아가는 그 모습은 끝없이 내면을 응시하고 다지고 내공을 쌓으며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화려한 비상을 꿈꾸는 작가의 모습과 닮아있었다. 나비가 부유하는 실내공간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쓸쓸한 타인의 의식 속 고독한 공간이자 희망을 상징하는 이중의 공간이다. 빛 속에서는 공중을 날지만 어두움이나 그림자가 진 부분에서는 바닥에 떨어져있는 나비의 형태 역시 소외된 것들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단편적으로 은유한다. 그림의 액자 안 판도라의 상자로부터 나오는 나비, 거울 속의 이젤에 세워놓은 그림으로부터 나오는 나비, 욕실의 거울 속으로부터 나오는 초현실적인 나비의 존재는 회화에서의 일루젼(환영)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동시에 예술가 내면속의 섬세하여 상처입기 쉬운 예술적 자의식의 흐름이다.

*화가의 작업실
실내풍경 작업에 이어 나비채집 작업들이 진행되면서 대다수의 시간들을 작업실에서 보내고 있던 어느 날 문득, 습관처럼 작업실의 문을 열고 들어온 나는 작업실 공간이 마치 나의 내면의 모습을 마주한 듯 매우 친근하고 은밀한 느낌을 받았다. 내밀한 나의 깊은 자아와 마주하는 묘한 느낌이었고 그것은 창작의 산실에서의 고통과 자유로운 유폐, 고독과 함께 진행되는 작업과정이 고스란히 녹아 환희의 모습으로 전환 된 듯 한 신비로운 느낌이었다. 호기심이 많은 나는 문득 고흐의 작업실풍경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고 그 후 작업실 자료와 미술사 공부를 바탕으로 화가의 작업실 시리즈가 태어나게 되었다. 특히나 흠모했던 세잔느, 마그리트, 호크니, 페이르메르 등의 초기 작업실 시리즈에 이어 어느 덧 김홍도, 신윤복, 정선 등의 국내고전 화방시리즈로 확대되어 최근에는 작년 11월에 4년 만의 작업을 사비나 미술관을 통해 발표하기도 하였다. 캔버스라는 매체를 통해 평소 동경하고 존경하던 대가와의 소통과 교감은 내게 그리기라는 회화의 새로운 묘미를 주었고 그것의 신선함에 자연스레 매료되어 갔다.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진리의 투명한 본질을 나타내는 투명 병, 자유와 부자유의 은유적 표현-새장이 등장하고 순간과 영원성을 보여주는 촛대, 삶과 죽음의 바니타스 해골, 시간의 흐름과 정지를 상징하는 모래시계와 회화의 순수와 진정성을 보여주는 백합 등 상징적인 오브제들이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일련의 실내풍경 시리즈작품들은 내 작품의 모태이다. 그림 속에 자주 등장하는 나무 특히 숲의 풍경은 상상하기, 사유하기에 적절한 모습을 지녀 좋아하며 침묵의 자연을 사랑한다. 이러한 실내풍경 작업들은 나의 내면을 돌아보게끔 하는 스승과도 작업들이다.

화가로서 내가 표현하고자하는 것들은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는 없지만 늘 내면 깊은 곳에서 갈망하는 것들이다. 이를테면 나는 렘브란트가 숨 쉬던 시대의 그의 향기를 느끼고 싶고, 열정의 화가 피카소의 작업 풍경을 보길 원한다. 그 모습을 상상했으며 보고 싶어 하는 것을 그려왔다. 보고자하는 풍경은 거울과 캔버스의 틀, 창밖의 풍경을 통해 드리워진 커튼과 문틈 사이로 그려지며 그것은 그림 안에서 서로 유기적인 상관관계를 맺으며 더 많은 이야깃거리를 갖는 다른 풍경이 된다. 그래서 때로는 현실감과는 거리가 먼 신비감을 더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의도한 바이다. 그림 안에는 늘 두개 이상의 풍경이 있고 그 풍경들은 서로 연관관계 속에서 필요 충분 관계로 엮여 상충하고 보완한다. 이렇게 그려지는 대부분의 공간은 일상적인 공간이지만 화가의 공간이자 사색의 공간이다. 테이블 위나 의자위에 놓여있는 붓은 화가의 일상 도구이자 그 풍경이 그려진 것임을 암시한다.
내가 보고 싶어 하고 상상하는 공간들과 세계는 나의 머리와 가슴속에 들어와 내면의 풍경을 이루고 그 풍경은 곧 나만의 풍경이 되어버린다. 이를테면 내안에 또 다른 나의 고요한 정적이 깃든 풍경, 이와는 반대로 캔버스 앞에 앉아 붓을 들어 물감을 묻히기 까지가 힘들었지만 한번 시작하면 동트는 것조차 잊을 정도로 몰입했다는 세기의 거장 피카소가 작업에 몰입하는 바로 그 열정의 모습은 평생 잊혀 질 것 같지 않은 아름다운 풍경이다. 미술사에서 가장 빛나는 모더니스트이자 거장의 작업공간과 캔버스 앞에서 몰입하는 순간적인 그의 포즈는 캔버스에 옮겨지면서 시공을 초월하여 나의 영혼과 교감한다. 이렇듯 내면 속 풍경들은 사유와 상상을 거쳐 캔버스에 스케치되고 공이 들어가 그림이라는 또 하나의 실재의 풍경이 된다. 나는 음악을 좋아하여 대부분의 작업들이 음악과 함께 진행되지만 침묵과 명상 속에서 때론 피하고 싶거나 가리고 싶은 자신의 내면과 대면한다. 그 과정 속에서 좀 더 솔직하고 진정한 나 자신과 마주 할 때 작업은 깊어지는 듯하다. 작업을 해나가며 스스로에게 되뇌이는 말들 중 하나가 있다. 바로 ‘작업의 집요함과 섬세함’이다. 또 작업 과정을 통해 스스로 객관적인 평가를 끊임없이 내릴 수 있을 때 좀 더 가치 있는 작업에 다가 설 수 있을 것이다.//2015. 9. 남경민

– 장소 : 에스플러스갤러리
– 일시 : 2015. 10. 13 –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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