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현섭展(아트 스페이스)_20161031

분절과 연속의 감성 세계

김미희(전시기획)

캔버스 가득 수많은 점들 그리고 그 사이사이 또 다른 점들의 연속이다.
하나의 점과 다른 하나의 점 사이에는 여백이라 표현되는 열린 공간이 만들어진다. 작가의 손으로 하나하나 찍어낸 수없이 많은 점들 사이에 빈 공간은 스스로 한 점이 되어 의미를 가지려 한다. 점을 점이게 하는 빈 공간을 점유하는 점들의 연속이다. 점과 점이 아닌 여백의 점들로 채워진 작품 속에 나타나는 모든 점들은 1과 0으로 대응되는 디지털표현의 최소 단위 속에 내재되어 있는 의미들과 상통한다. 우리에겐 이제 너무나 익숙한 디지털 세계. 있음과 없음, 안과 밖, 드러남과 숨김, 밝음과 어둠, 진실 혹은 거짓 등 이분법적으로 분리되는 모든 개념들이 디지털 사회의 문화코드 속에 숨어 있다. 모든 순간 선과 악, 옳고 그름의 선택 속에 놓여있는 우리의 삶이 하나를 취하면 다른 하나를 놓아야 하는 순리와도 같은 허망한 1과 0이다. 수많은 검은 점들은 하얀 점들을 만들어 낸다. 물론 여러 색의 점들이 이어지고 있다. 하얀 점들을 찍지 않아도 검은 점들에 의해 하얀 점들은 화면의 공간을 갖게 되고 검은 점들에게 공간을 내어준다. 안이 있기에 밖이 있는 것과 같이, 있음이 있기에 없음이 있듯이 의식하지 않아도 하나가 생기면 그 나머지 하나의 의미도 생성된다. 비트의 기하급수적인 집적은 우리에게 아날로그적인 세상의 재현(representation)을 완벽히 가져왔지만 허망한 이분법, 디지털표현의 최소단위는 작가의 손을 통하여 하나의 세계를 향한다.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작업 방식이다. 찍고 또 찍는다. 모든 점들은 규칙도 없고 일정하지도 않으며 두께도 크기도 밀도도 위치도 모두 다른 유일한 하나의 고유한 점이다. 무한반복과 재생산, 복제가 가능한 디지털 코드 속에서 작가의 손작업은 유한성을 추구하며 점과 점들의 의미를 이어가고 있다.

점과 점 사이로 분절되어 이어가는 형상들은 수많은 점들의 연속인 선이 아니어도 쉽게 드러난다. 작가의 부단한 노동으로 형상들은 가시적으로 드러나지만 완벽한 형태는 아니다. 작가는 언제나 크게 외치지 않았다. 분명한 형상과 명확한 의미로 재현되는 사물을 불러오지도 않는다. 그저 우리 주변에 있는 작은 생물과 사물들, 그리고 그것들의 이미지들일 뿐이다. 형상을 드러내는 점은 선으로도 이어지지 않고 면으로도 채워지지 않았다. 그러나 작가의 감성세계는 물리적 기반 없이 논리체계로만 존재하는 디지털 세계에서 인간과 합의하는 그 지점에 있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집적할 수 있는 비트의 개수가 기술의 발달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분절된 세계는 연속성을 완벽히 구현해 가는 것만 같은데 작가의 한 점 한 점들은 결코 디지털 세계 속 비트의 속도와 함께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분절이 맞닿아 연속으로 이어지듯이 점과 점 아닌 점들의 공간 사이로 우리의 감성은 흘러간다. 보이지 않는 입자들 사이로 있는 듯 없는 듯 형상들이 드러나듯이. 작가의 감성세계는 있어도 없는, 없어도 있는 그 지점이고 우리의 감성은 점과 점사이로 분절과 연속들이 이어지는 지점에서 각자의 비트를 집적하여 자신만의 세계를 구현하는 것이리라.

점 하나에 온 우주를 넣지 않아도,
수없이 많은 점을 세지 않아도,
비어있는 형상이 완벽하지 않아도, 우리의 시선은 그 곳에서 멈추고 점과 점이 아닌 점들의 분절과 연속을 따라 조용하고 겸손한 세상 속으로 흘러간다.

– 장소 : 아트 스페이스
– 일시 : 2016. 10. 31 –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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