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환展(아트스페이스 소두)_20170516

소두 미학의 현재, ‘한 그루의 푸른 나무가 서 있다’

박만준(철학박사, 동의대 교수)

하늘과 바다가 작아졌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무슨 말인가? 우리네 마음속의 하늘과 바다가 그렇다는 말이다. 그래서 요새는 하늘과 바다를 깔보고 무시하는 이들이 너무 많다. 그들에게는 하늘과 바다보다 훨씬 큰 것이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시야가 좁아지면 그 편협한 사고는 매우 폭력적일 수 있다. 종종 지식과 가치의 정통성을 주장하는 그들의 취향이 미적 편협성과 결합한다. 그 속내가 훤히 보인다. 미를 앞세우고 그 뒤편에 자본이 버티고 있다. 자기 확장을 위한 위장이고 허세이다. 그래서 예술의 정통성을 주장하는 예술가나 전문가들의 논쟁이 보기보다 덜 순수할 때가 더러 있다. 그것이 삶이나 생활예술의 방식에 대한 진정성이 동반되지 않으면 더욱 그렇다. 자본과 예술이 무슨 명분으로 영합하는 것일까? 정말 동전이 하늘보다 큰 것일까?

이러한 역설 위에 한 그루의 푸른 나무가 서 있다. 나무처럼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나무로 서 있다. 나무는 그의 상징적 표상이고 현실의 역설을 투영하는 방편이다. 그러므로 나무는 하늘이고 산이고 강이다. 그래서 소두 그림의 기표는 늘 자연이다. 자연은 현실의 역설을 직시하는 깃발이고 무한한 예술적 소재의 공급원이다. 그렇다고 단순한 사실(寫實)은 아니다. 그가 그린 산이 그저 산일뿐인가? 강을 그린다고 그냥 강일뿐인가? 아니다. 사실과는 다른, 삶을 직시하는 또 다른 정직(正直)의 깊이 때문이다. 그 정직의 시선은 명확하고 단호하다. 그리고 그 시선은 언제나 자연의 부재(不在)를 주시한다. 엄연한 자연의 부재는 오늘의 현실이고 우리의 실상이다.

소두의 그림은 바로 이 자연의 부재를 그린다. 도처에서 자연이 사라지고 무너지고 있다. 멀리 떠난 친구가 절실하면 마음속에 친구를 그리듯이, 소두는 자연을 그리고 그 부재에 대한 그리움과 갈증을 그린다. 자연 가까이 자연과 더불어 살고 싶은데 도대체 그것이 왜 그리 힘든지를 그린다. 그의 그림은 부재의 현재(顯在)이며, 그 형상과 색깔은 그 부재와 갈증의 순도(純度)를 나타내는 기호이다. 최근 그에게 묵(墨)의 발걸음이 잦아지고 검정색의 폭이 넓어지는 까닭도 거기 있다. 발색(發色)도 오색(五色)의 자연이지만, 발묵(發墨)의 자연을 더 주목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소두의 미학은 사실보다는 진실의 미학이다. 색을 소중히 여기면서도 색의 사용을 최대한 절제한다. 절제해야 할 것이기에 더 소중하다는 것이다. “색채는 야단스러워서는 안 된다.” 색은 꾸미기 위한 것이 아니다. 색으로 야단스럽게 꾸미는 것은 자연의 진실보다는 겉으로 드러나는 물리적 현상만을 보는 것이요, 흔히 말하는 사실이고 인위다.

소두는 인위보다는 자연을 좋아한다. 그래서 그는 몸으로 그린다. 머리의 인위보다는 몸의 자연으로 그린다는 말이다. 미의 본연(本然)이다. 미의 영역은 머리가 아니라 몸이다. 머리는 분열과 분리가 소임이지만 몸은 미적 공감의 터전이고 공존의 토대이다. 머리는 차이와 차별을 즐기지만 몸은 마음이 살기 좋은 곳으로, 아름다운 곳으로 가꾸고 꾸며가는 장소이다. 몸은 마음의 그림판이다. 몸의 확장이 집이고 마을이고 강이고 산이다. 그러므로 소두의 그림은 그의 몸의 확장이고 몸이 하는 대로 그린 또 하나의 자연이다. 그의 그림은 그의 몸이고 자연이다. 그 사람을 보면 그 작품을 알만 하고 그 작품을 보면 그의 마음이 보인다. 그의 그림이 곧 그의 삶이고 꿈이다. 속마음을 뒤집어 보여주고 온갖 수난을 당하면서도 그의 작품들은 눈에 보이는 다른 어떤 대안보다도 많은 것을 우리에게 약속한다.

소두 미학의 토대는 자연이다. 의미와 상징이 실천에 귀속되고 거기에서 다시 상징이나 실천이 선택되고 재선택되고, 재구성되는 터전이다. 예술은 인식적이기도 하지만 감정적이기도 하고 실천적이다. 그러므로 토대미학(Grounded aesthetics)이 말하듯이 토대는 창조의 터전이다. 미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과정의 산물이며 그 동력은 생명이다. 토대가 많으면 그만큼 많은 미학이 존재하게 되지만 소두의 미학은 초지일관 하나다. 그리고 그 중심은 자연과 생명과 인간이다. 소두 미학의 3분법적(三分法的) 전개의 진원지가 여기다. 셋은 자유로이 흩어지고 하나로 모이고, 또 하나로 모이고 흩어진다. 3분은 공간적, 시간적 펼침의 구조이자 미적 이념의 분화와 통일을 가리킨다. 3分은 존재와 생성을 표현하는 미학적 기호이자 다시각화(多視覺化)를 위한 화면의 분할이다. 그리고 이것이 민족 미학의 전통으로 돌아가 현재로 회귀하는 소두 미학의 독창적인 기획이자 실험이다.

3分을 관통하는 힘은 생명이다. 존재와 생성의 변증법에서 생명은 자연과 인간의 매개이다. 생명을 사이에 두지 않고서 인간이 자연과 무엇으로 만날 것인가? 생명을 매개하지 않는다면 인간에게 자연이 뭐 그리 소중할 것인가? 인간과 자연을 이어주는 소중한 인연의 끈은 곧 생명이다. 생명을 전제하지 않는다면 자연을 사랑한다고 해서 인간을 사랑하지도 않을 것이며 인간을 사랑한다고 해서 자연을 사랑하지도 않을 것이다. 생명을 매개로 할 때 비로소 자연과 인간은 하나이고 다 같이 소중하다는 인식이 생겨난다. 우리에게 자연은 생명이고 우리는 그 생명이 몸으로 드러난 자연이다.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늘 그의 가슴에 붙어 있는 ‘자연, 생명, 인간’이란 글자를 바라보는 그의 맑은 모습이 눈에 선하다.//박만준//

//국제신문//
노(老) 화가와 미술평론가 딸이 함께 전시공간을 열었다. 노 화가의 전 생애 작품을 상설 전시하고, 지역사회 다른 화가들의 작품도 소개하는 뜻깊은 공간이다.

소두(蘇斗) 김인환(76) 작가와 그의 딸인 전시기획자·미술평론가 김소라(50) 씨가 부산 북구 금곡동 주택가에 갤러리 ‘공간 소두’를 개관했다. 지난 16일 개관전으로 ‘김인환-백과 흑, 그리고 그 사이’를 시작하고 운영에 들어갔다.

부산 끝자락, 한적한 주택가에 갤러리를 마련한 이유는 무엇일까. ‘공간 소두’의 일차적 목표는 평생 자연과 생명을 주제로 작업해온 김 작가의 작품을 관리하고 소개하는 것이다. 기존 건물을 리모델링해서는 마음에 드는 공간을 만들 수 없어, 단층 건물을 매입해 2층을 증축했다. 복층인 갤러리의 아랫층은 전시장, 위층은 작품 보관실과 작업실이다.

딸 소라 씨는 “부산에 젊은 작가가 많이 나오지만 시간이 지나면 ‘허리 세대’가 끊기고, 어느새 40~50년 작업하신 분들이 사라져 버린다. 아버지도 부산에서 50년 넘게 작업하셨는데 최근에는 대중에 작품을 보여줄 기회가 별로 없어 안타까웠다. 아버지가 평생 어떤 작업을 했는지 여러 기획을 통해 소개하고 싶은 마음에 ‘공간 소두’를 열게 됐다”고 설명했다.

2008년부터 5년간 북구 화명동에서 갤러리를 운영한 그는 “아버지 작품 외에도 문화환경이 열악한 지역사회를 위해 북구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을 대상으로 기획전을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금곡동에 자리를 잡은 것은 낙동강을 너무도 사랑하는 김 작가의 취향이 반영됐다. 김 작가는 “낙동강은 가장 부산다운 자연환경”이라고 말했다. 그는 작품에서 꾸준히 쓰레기 투기 등으로 인한 낙동강의 환경 파괴를 우려했다.

김 작가는 1941년 부산에서 태어나 홍익대 서양화과와 프랑스 파리 아카데미 그랑슈메르에서 수학했다. 1965년 ‘논꼴’과 ‘습지전’을 시작으로 1967년 ‘청년작가연립전’, 1969년 ‘혁동인’ 등에 참여했으며 이후 부산을 중심으로 실험미술운동에 투신했다. 개인전 47회를 열었고, 단체전에는 수백 회 참여했다.
김 작가는 초기부터 단청과 한국적 색채를 작품에 활용하는 등 우리 미술의 발현을 위해 노력했다. 초기 작품세계는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 ‘삼분법’ 논리를 적용한 작품으로 발전했다. 한국인에게 가장 익숙하고 조화로운 숫자인 ‘삼’을 작품에 적용해 화면을 가로 혹은 세로로 삼분할했다. 김 작가의 작품은 서양화이면서 수묵화와 실경산수를 접목해 한국화 느낌이 물씬 풍긴다. 최근에는 족자처럼 폭이 좁고 긴 종이에, 일명 ‘줄줄이 그림’을 집중적으로 제작하고 있다. 세월호, 동구 초량동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 등 현실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1970년대 초기 작품부터 최근까지 시대별 대표작을 보여준다. 50년 세월 동안 작품의 흐름과 변화를 조명한다. 백색으로 시작한 그림은 가면 갈수록 어둡게 변했다. 그 사이에는 화려한 원색이 자리 잡고 있다. 다음 달 16일까지 오후 1시에서 7시 개관. 일·월요일 휴관.//박정민 기자 link@kookje.co.kr, 2017.5.23//

– 장소 : 아트스페이스 소두
– 일시 : 2017. 5. 16. – 5. 31.

추PD의 아틀리에 / www.artv.kr / abc@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