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춘표展(갤러리 조이)_20190503

정춘표의 ‘미몽美夢’ 예술세계

정금희(전남대학교 교수)

새는 정춘표의 예술세계를 관통하는 생명의 키워드다. 여인과 첫 만남(‘여체와 새’) 이후 새는 북어와 어우러졌다 이번엔 사과와 해후했다. 새를 동반한 이 구상물들이 가진 상징성은 차례로 아름다움과 행운, 그리고 조화다. 정춘표 특유의 곡선으로 재현된 인체의 미에 이어 액운을 피하고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북어, 그리고 미적 결정체로서 사과가 등장했다. 작가는 굳이 에둘러 가지 않고 선명한 직유의 성정을 가진 듯싶다.

새는 예술, 문학에서 모티브로 많이 선택되었는데 자유, 사랑스런 유희, 드높은 하늘, 아름다운 하모니의 합창, 맑고 청정한 자연 등 무수한 이미지로 변주된다. 정춘표는 그동안의 두 연작과 달리 이번엔 좀 색다른 변모를 시도했다. 동시대 미술 흐름을 반영하여 개체의 조각품들을 설치작업으로 변환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사과와 새’는 오랜 연륜의 기교와 인생의 진미가 내면화돼 완숙미가 더해졌다. 설치미술은 무엇보다 참신한 아이디어를 생명으로 한다. 장소와 재료를 뒷받침으로 한 발상이 중시되며 다양한 재해석이 가능하기에 개념미술에 속한다. 오늘날은 관객과의 소통으로 얼마나 공감할 수 있는가가 관건이다.

‘사과’의 연상 이미지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이브의 유혹과 원죄이다. 아담은 이브가 건넨 사과를 먹고 실낙원에서 추방당했다. 또 하나는 그리스 신화 중 하나인 파리스의 심판과 관련된다. 파리스는 지혜의 여신 아테나와 최고 권력 헤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등 셋 중 하나를 선택해야 된다. 결국 황금 사과는 아프로디테에게 주어진다. 이브와 파리스의 결정은 지난했던 인류의 성장 역사를 대변한다. 인간의 지성은 무엇보다 들끓는 자신의 성정과 가장 먼저 대결하면서 진보했다. 그것은 부리에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물어 나르는 새의 날갯짓에 다름없었다. 생존을 위해 새는 살아있는 한 비행을 멈출 수가 없다. 정춘표에게 새는 바로 그런 존재였다.

인체와 물고기의 전작과 달리 사과는 그 형상만으로 완벽함을 내보인다. 몸체의 형상은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원형이다. 내면에 품은 감미로운 과즙은 색깔로 드러냈다. 사과들은 6종류의 크기에 황금빛 도금, 백색의 알루미늄, 황색, 밤색 계열의 브론즈, 핑크빛, 나무결 느낌의 대리석, 스테인리스 스틸, 플라스틱 등의 다양한 재료를 사용했다. 각 개체들은 원재료의 재질감을 보이거나 파스텔 계통의 감미롭고 사랑스러운 유채색으로 도색하여 형형색색이 되었다. 아름다움이 결정체로 응고된다면 저 모습이 되지 않을까 싶게 사과들은 흠잡을데 없이 반짝인다. 혹자는 탄소결정체인 다이아몬드의 광휘를 빛이 빚어내는 최고의 군무로 친다. 그러나 정춘표는 무기질이 아닌 살아있는 생명체로부터 그것을 취하고자 했다. 씨앗을 품은 사과의 형태는 완전한 원형으로 재현하고 내면의 가치를 표면의 빛으로 끌어냈다.

붉게 도색된 1점과 재료의 특성을 살린 투명한 2점을 배치한 ‘사과와 새’는 주변 대상이 그대로 비쳐져 관객 참여를 유도하면서 강한 인상을 자아내고 있다.

전시장 벽면과 윈도우에 설치된 흰색 또는 연두색의 배경에 나무를 사용한 격자틀을 만들어 각각의 사각형 공간에다 사과를 놓아두었다. 사과들은 모두 크기가 다양하고 색채도 다르다. 그것들은 또한 모두 새와 함께 한다. 변화와 활기가 공존하는 것이다. 작품의 크기에 따라 양감과 중량감이 달라지지만 조화로움을 유지하여 완벽한 미를 추구한다. 격자틀은 채움과 비움의 동시적 공간으로서 음양의 조화를 이루는데 자연스럽다.

이 설치작은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따라 다양성을 주는 특징을 갖는다. 많은 사과 작품이 천장에서 내려온 줄에 매달려 있으며 그 길이의 높낮이 변화로 인해 율동적이고 리듬감을 준다. 그 아래 바닥에 뿌려진, 다양한 색채가 도색된 많은 사과 작품들이 어떻게 집합하느냐에 따라 형태가 달라진다. 이는 인간의 내면세계를 상징한 듯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어도 자신의 마음에 의해 해석할 수 있다는 여지를 준다.

작가는 분명 사과의 의미를 희망과 행복을 주는 모티브로 생각했지만 그것을 수용 여부는 개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다. 우리의 마음에 따라 행복과 희망의 온도가 다른 법이다. 수많은 새와 더불어 영근 사과처럼 우리의 다양한 삶의 여정과 정서는 개개인이 감당해야 할 부분이다. 격자틀 공간을 어떻게 활용함에 따라 달라지듯 우리의 인생도 각자 선택하고 자신의 삶을 걸어가야 한다. 작가는 이 연작을 통해 삶 속의 진정한 행복 찾기란 어떤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잊지 않는다. 진정 그것을 어디서 찾아야 할 것인가 화두를 던지고 있으며 그 해답 역시 각자가 풀어야할 숙제다.

이 연작은 크기, 재료, 색채가 각기 다른 사과와 새가 모여 군락을 이룰 때 완성도가 높아지는 특성을 가진다. 이는 다양한 매체의 사용과 자유로운 형식, 표현 방법에 따라 항시적 새로움을 갖기 때문이다.

사족처럼 덧붙이자면 정춘표의 예술은 긍정적이다. 마치 우주의 새싹이 솟아난 것처럼, 봄날 꿈꾸는 희망의 노래 같다. 아름다운 삶의 가치를 찾아 몰입해 있다.//정금희//

장소 : 갤러리 조이
일시 : 2019. 5. 3. – 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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