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석展(갤러리 GL)_20190501

무거움을 덜어낸 유쾌한 조각

이영준(큐레이터, 김해문화의전당 예술정책팀장)

박경석의 작품이 주는 첫인상은 매우 가볍다는 점이다. 그것은 ‘깊이 없음’이 아니라 의미나 개념의 과잉에서 자유로운, 어깨에 힘을 뺀 조각이라는 의미다. 일반적으로 조각하면 떠오르는 것이 “Mass”라는 단어다. 회화와는 달리 덩어리를 강조할 수밖에 없는 장르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공간과의 상호작용을 늘 염두에 둘 수밖에 없는 특유의 ‘버릇’ 때문일 것이다. 특히 공공조각들은 화이트 큐브를 벗어나 일상적인 공간에 위치하며 자연스럽게 “Mass”를 강조할 수밖에 없다.

박경석은 이전의 작품에서도 이 덩어리들을 의도적으로 거부하고 있었다. 작가의 작품은 덩어리를 최소화한 선과 선으로 만들어진 그림자를 조형적인 요소로 끌어들이는 작업을 진행해 왔다. 물질과 비물질이 교차하는 박경석의 작품은 Mass 자체에 주목하는 일반적인 조각의 틀을 서서히 벗어나고 있었다. 덩어리와 선이 유기적으로 연결되거나 Mass만을 다루더라도 윤곽이 가지고 있는 형태미에 주목한 작업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그가 최근에 즐겨 다루는 소재들은 동물들이다.

“동물은 사람보다 더 좋을 때가 있다. 말은 안 통해도 그들의 감정과 교류 할 수 있는 시간이면 그 어떤 사람들과의 관계보다 편하다. 어쩌면 나의 본질보다 아직 나의 외곽선에 더 민감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고래나 말, 물고기처럼 말은 안 통해도 그 몸짓만으로도 나를 표현할 수 있다면 더 편안하고 잔잔한 열정으로 살아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마치 내가 동물인 양……..”(작가의 작업 노트 중에서)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은 모두 “나들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첫 번째 공간에 들어서면 스테인리스스틸로 제작된, 작가 특유의 유려한 선적 표현이 두드러지는 작품이 공간을 가로지르면 매달려 있다. 스테인리스스틸 특유의 금속적인 재질이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 자세히 보면 고래 형상이다. 고래의 형상을 다듬고 다듬어 그 특유의 선만을 남기고 모두 비웠다. 다른 한쪽에서는 작가의 이전 작업에서도 보여 왔듯이 자연에서 구해 온 돌과 물고기 형상의 선조가 결합한 작품들이 공간을 점유하고 있다. 검은색 벽면을 배경으로 설치된 물고기들은 말 그대로 공간을 유영하고 있다.

박경석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커다란 매력은 사물이 가지고 있는 특징적인 선들을 정교하게 포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각가들이 Mass에 집중함으로써 쉽게 간과할 수 있는, 선이 가지고 있는 뉘앙스에 박경석은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래서 그의 조각들은 실루엣처럼 처리된 선으로도 대상의 움직임이나 부피감을 충분히 드러내고 있다. 그 선에 대한 응집력 있는 작가의 시선은 덩어리(Mass)의 무거움을 배제하면서도 사물의 본질에 육박해 들어간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종종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자주 초대받곤 하는데 특유의 대중적인 친화력과 정밀한 선적 표현이 만든 결과이다.

박경석의 작품이 여기까지 진화해 온 과정은 그렇게 순탄해 보이지 않는다. 작가가 수학하고 활동할 당시 조각계는 여전히 Mass와 개념이 중요한 가치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가치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감수성을 수용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가 이 덩어리들을 배제하는 과정은 선과 그림자의 만남 때문이다. 그림자는 소리처럼 물질이 아니라 효과이다. 무게도 존재도 없는 이 ‘가벼움’의 발견이야 말로 박경석의 조각이 지향하는 의미 있는 소실점이지 않을까?//이영준//

장소 : 갤러리GL
일시 : 2019. 5. 1. – 5. 31.

추PD의 아틀리에 / www.artv.kr / abc@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