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길주展(갤러리 GL)_20190601

서길주의 도예전, ‘불화’의 열기 속에서

김채석

문화예술인들이 예술의 꽃을 화사하게 피워낼 수 있다면 예술제 행사나 개인 전시회를 통해서 일 것이다. 그런 여유로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예술가들이 녹음이 싱그러울 정도로 짙은 유월에 구민들이 고급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저마다의 뜻을 모아 ‘사상예술제’라는 이름으로 행사를 진행하던 마지막 날, 서길주 도예가로부터 다음 달에 개인 도예전을 연다며 짧은 인사말을 청해왔다.

그래서 주저 없이 그러하겠노라고 확답을 했다. 그 이유는 두어 차례 가마가 있는 작업실의 공간을 방문해서 향기로운 차 대접과 함께 완성된 작품들을 스캔하듯 나름 꼼꼼히 살펴 두었고, 평소 여러 만남의 장소에서 서길주 작가를 만날 때마다 말과 행동을 예의 주시한 바 있어 그날 밤 원고지에 단번에 쓰고 그대로 봉투에 넣어 두 주일 정도나 담아 두었다가 건넸다.

몇 번도 아니고 단번에 쓰고 작가에게 원고를 건넬 때까지 한 번도 읽어보지 않은 것은 보면 볼수록 용비어천가를 쓰듯 꾸미는 등 자꾸 미화시킬 수 있음을 경계했던 것이다. 그 글의 내용은 이렇다.

“동안 내가 본 서길주의 도예는 한마디로 토담스러웠다. 토담스러웠다는 말은 예전에 흙으로 쌓아 올린 시골 담장처럼 투박하지만 도시적 기교를 부리지 않아 더 정겹고 진솔하다는 거다. 그래서 내 마음을 비춰보는 거울처럼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믿음인 까닭이다. 흙의 믿음이고, 불의 믿음이고, 작가에 대한 믿음이다. 결과, 불과 흙의 흔적만으로 작품이 되었다. 이는 어떤 기교로서 눈을 희롱하지 않는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마치 박목월의 시에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처럼 꾸밈이 없는 자연스러움으로 거짓을 경계한다. 이것이야말로 맑고 깊은 삶의 성찰이요 삶의 풍경이 아니겠는가. 그러한 작품이 전시를 통해 소통의 시간을 갖는다니 마음속에 품은 그리움을 꺼내보기라도 하듯 내 눈은 벌써부터 좋아라! 좋아라! 한다.”라고 했다.

드디어 오프닝 하는 7월 17일. 부산 도시철도 2호선 감전역에서 김진규 시인과 강지훈 영화감독과 함께 큰 기대를 가지고 사상 갤러리로 향했다. 과연 그 기대는 기대 이상이었다. 전시장은 찾아 축하의 마음을 더하는 사람의 숫자도 숫자지만 작품의 작품 다움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획일성이 아닌 다양성도 중요하지만 작품마다에서 전해오는 진솔함 때문이었다.

또한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으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라쿠Rakujaki 기법으로 완성된 작품도 눈길을 붙들었다. 사실이지 도예에 문외한이나 다름없는 나는 하나의 작품이 어떤 과정을 거쳐 완성이 되는지 에는 관심을 두지 못했다. 부끄러운 일이다. 실지 그 과정 속에 작가의 정신과 땀과 정성과 진솔함이 뜨거운 불로 승화되어 있는데도 말이다.

그저 흙을 반죽하고, 모양을 만들고, 가마에 넣고 열만 가하면 되는 줄 알았다. 이 정도로 도예에 관에 무지한 나에게 라쿠 기법에 대해 이수련 시인이 비수처럼 이르기를 “라쿠는 도자기를 약 900도 정도로 소성한 후 뜨거운 상태에서 가마 문을 열고 집게로 기물을 꺼낸 후 톱밥이나 낙엽을 넣어 환원시키거나, 온도를 급강하시킴으로써 여러 가지 재미있는 효과를 내는 소성법이다.”라고 일렀다.

여기에 부언해서 어떤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우면서도 즉흥적인 기법으로 마치 음악으로 말하면 재즈Jazz와 같다고나 할까. 색감 또한 영특해 보였다. 이는 “막상 준비했다고는 하나, 나름대로 준비했다고는 하나” 등으로 겸손해하는 작가의 변은 되레 드러내지 않은 내공의 힘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여기저기에서 “깜짝 놀랐다.”는 말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면 말이다.

특히 내가 놀랐던 것은 작고 길쭉한 항아리처럼 생긴 모양의 도자기의 문양 때문이다. 그 문양을 보면서 어릴 적에 동네 누이들과 밤하늘을 수놓은 별을 손끝으로 가리키며 헤아리거나 북극성이나 북두칠성, 카시오페아 자리 등을 찾던 기억과 함께 윤동주의❬별 헤는 밤❭에서 별은 과거 회상의 매개체로 추억이나 사랑, 쓸쓸함, 동경과 같은 그리움을 떠올리다가 조그마하게 적힌 작품 제목이 ‘은하수’라는 거였다.

그럼 나를 놀라게 한 도예작가 서길주는 누구인가. 동안의 면면을 보니 한서미술협회 초대작가이며 심사위원으로 한일교류전 및 단체전에 200여 회 전시 참여와 부산 아트페어전 참여는 물론이고, 지난해에는 부산 KBS 방송국 갤러리에서 ‘흙과 불의 융합’ 개인전과 함께 도예 관련 수많은 상을 수상한 바 있는 중견작가로 후진양성에도 열과 성을 다하고 있다.

끝으로 결론지어 말하면 미세한 손놀림으로부터 시작해 백토든 분토든 흙의 강약과 생각의 강약, 불의 강약이 융합된 예술로 그릇이든, 다완이든, 분청자든, 백자든, 사발이든 채움과 비움의 형체로 금형으로 된 틀이 아닌 작가의 손과 생각, 생각과 손의 예술로 태어나는 작품마다 지구라는 별에서 단 하나라는 자부심도 중요하지만, 기교를 부리지 않아 꾸밈이 없는 특이함과 은은함은 서길주 작품의 매력인 것에 확고부동하다 하겠다.

장소 : 갤러리 GL
일시 : 2019. 6. 1. –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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