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송준展(갤러리 이듬)_20190605

글 성수진

작가는 공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공간은 우리의 삶에서 늘 존재하는 부분이다. 그 공간속에서 사람들은 비워냄과 채움을 반복하며 또 다른 공간을 찾고 인지한다. 어떤 물질이나 물체가 존재할 수 있거나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공간의 구체적 개념 속에서 작가는 ‘관계’라는 키워드를 찾아낸다. 단단하고 거친 철의 고유성과 그러한 철의 면과 면이 만나 유연해지는 과정을 사람이 상호작용하는 관계와 비슷하게 생각한다. 금속이라는 재료의 거친 속성을 다루며 여러 기법, 주제, 내용을 만들어내는 작가는 몇 해 전부터 ‘Empty’라는 이름으로 왜곡된 형상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평면에 가까운 부피감을 지닌 조각 작품을 꽉 채워진 상자나 통로, 봉투 등으로 인지하게 되는 그의 작품에서 우리는 공간을 느낄 수 있다. ‘~로 흐르다’의 뜻을 지닌 이번 Empty into 展 에서는 그동안 진행해 온 작업의 변화하는 과정들을 보여준다. 앞으로도 무한한 작품세계를 보여줄 한송준 작가를 기대하며 이번전시가 작품과 관계에 대한 소통을 할 수 있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

지금은 사라진, 대전의 대안 전시 공간 반지하에서 첫 개인전을 마치고 한송준 작가는 작업의 근거지를 경기도 양평으로 옮겼다. 조금 더 작품 활동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찾은 것이었다. 이후 여러 번의 전시를 거치며 그의 작업은 의미 있는 변곡점을 지나 현재에 이르렀다. 금속이라는 재료의 거친 속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초기의 작업은 어느 사이 기하학적이며 다양한 색감이 도드라지는 작업으로 변모했다. 단 하나 변하지 않은 사실은 그가 여전히 금속을 다루며 그 안에서 기법이나 내용, 형식, 주제의 변화를 꾀한다는 것이다. 그는 “철은 내 안으로 몰입할 수 있게 하는 재료”라고 말한다. 철을 다룰 때 자신 속으로 깊숙이 침잠하는 느낌이 좋아 끊임없이 자르고 붙인다.

Connection
양평의 작업실은 산과 논이 있는 한적한 시골 마을에 위치한다. 아스팔트로 단장한 도로가 비포장도로로 바뀌고, 길은 작업실과 면하고는 끝이 난다. 그 길을 그대로 잇기라도 하듯, 작업실은 길게 이어진다. 창고로 쓰였던 공간이다.
한송준은 공간을 탐구하는 작가다. 사전에서 ‘공간(空間)’의 두 번째 정의는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널리 퍼져 있는 범위’이다. 달리 말해 ‘어떤 물질이나 물체가 존재할 수 있거나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자리’다. 한송준 작가는 그 ‘자리’에서 먼저, ‘관계’라는 키워드를 끄집어냈다. 어떤 물질이나 물체가 존재하고 어떤 일이 일어난다면, 그것이 바로 ‘관계’일 거라는 생각이었다.
금속의 단단한 성질을 살리면서도 유연한 느낌이 들도록 해 관계성을 표현했다. 두꺼운 철판을 잘라 다양한 형태로 구부러뜨려 엮고 매듭지었다. 속이 텅 빈 윤곽만 남은 육면체들을 겹쳐 거대한 육면체를 만들었고, 아코디언의 바람통처럼 유연한 네모들이 네 다리를 지지하고 서 있는 형상을 만들기도 했다. 단순하게 구부러뜨리고 묶어 천장에 매달기도 했다. 당시 그가 만들어 낸 이미지는 자유분방하고 거칠며 한편으론 정돈된 느낌을 준다.
철이라는 재료는 한 번에 마음 가는 대로 구부러뜨리거나 이을 수 없다. 단단하고 거칠어 한편으론 차갑게 보이는 철은, 오랜 시간 불에 달구고 가다듬는 과정을 세심하게 반복해야 원하는 형태를 얻을 수 있다. 그 과정은 마치 사람과 사물, 시간과 공간 등이 상호작용하는 ‘관계’와 닮았다.
잘라 붙인 철판의 한 지점에서 다른 연결점들을 찾아 나가다 보면 언젠가 처음의 지점으로 돌아온다. 안과 밖의 구분이 없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그의 작업은 그 내부에서 완벽히 상호작용하며 연결되어 있다. 당시 작품들은 첫 번째 개인전 에서 관객과 연결됐다.

Facet of mind
도심의 소음에서 벗어나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지내다 보니 자연스레 마음의 면면을 들여다볼 시간이 늘었다. 시골 마을에는 색도 많지 않았다. 여름철 우거졌던 녹음은 가을철 잠깐 울긋불긋한 색을 입었다가 앙상한 나뭇가지들을 드러냈다. 양평으로 작업실을 옮기고 환경적 영향 때문인지 그의 작업은 다양한 변화를 수용했다. 숨김없이 드러났던 재료의 속성은 정제된 형태와 규칙으로 다듬어졌다. 금속의 면들은 조금씩 어긋나며 이어지고, 틀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 반복과 변화의 형태가 특유의 리듬감을 만든다. 철의 물성은 파스텔의 색을 입어 한결 수그러진다.
“한 사람을 이루는 건 하나의 마음이 아니라 수많은 마음이라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그 마음의 단면을 면으로 집적했고, 기하학적이고 중립적인 이미지와 색상으로 표현했습니다.”
새로운 형식의 실험이었지만, 주제의식은 의 연장선 위에 있었다. 한 사람을 이루는 수많은 마음은 어떻게든 섬세한 관계성을 지니기 마련이다. 한송준 작가는 무수한 마음의 결에 ‘Facet of my mind’라는 이름을 붙여 두 번의 개인전에 펼쳤다.
사전에서 ‘공간(空間)’은 세 번째로 ‘영역이나 세계를 이르는 말’로 정의된다. 한송준 작가는 에서 마음의 세계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형상화했다. 그가 시각화한 마음의 세계는, 다양한 결을 지닌, 하지만 연결되어 있는 무엇이었다.

Empty into
한송준 작가가 초기 작업에서부터 이야기했던 ‘공간(空間)’의 개념은 사전에서 첫 번째로 정의되는 ‘아무것도 없는 빈 곳’일지 모른다. 그는 늘, ‘있음’과 ‘없음’에 대한 개념을 작업으로 풀어내고자 했다. 몇 해 전부터는 ‘Empty’라는 이름으로, 왜곡된 형상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정면에서 봤을 때 입체성을 지닌 형상(그것들은 색색의 상자나 통로, 크기가 큰 봉투, 여러 면이 잘린 육면체 등의 모습이다.)을 측면에서 들여다보면 오히려 평면에 가까운 부피감을 지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관객은 실제로는 비어 있는 형상을 꽉 채워진 상태로 인지하게 되고, 시간이 지나며 그것이 착시임을 깨닫는다.
“공간은 숙명적으로 삶과 함께합니다. 사람은 늘 공간과 공간을 이동하며 사용하고 그것을 채우고 비워 냅니다. 우리가 인지하지도 못할 만큼, 공간 속에는 또 다른 많은 공간이 있습니다. 공간의 그러한 속성을 관찰해 가며 작업합니다.”
공간에 대한 탐구로부터 ‘Empty’ 시리즈가 나왔지만, 그는 작업을 구상하기까지 과정을 말로 표현하는 것이 조심스럽다. 단지, 자신이 만든 형상 앞에 관객이 잠깐 머물며 무언가를 느낀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ArtSpace128에서 진행하는 전시는 다. ‘~로 흐르다.’라는 뜻을 지닌 숙어를 전시 이름으로 택했다. 이름의 의미만큼, 이번 전시에서 한송준 작가는 그동안 진행해 온 작업의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 준다. ‘Connection’, ‘Facet of my mind’, ‘Empty’ 시리즈는 물론이고 초기의 철사 드로잉 등 소품까지 만나 볼 수 있다. ArtSpace128에서 전시를 열기까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 첫 개인전을 열었던 도시이자 대학을 졸업한 곳에서 다시 전시를 여는 소회가 남다르다.
작업에 침잠하는 시간은 때로는 외롭다. 그 시간을 견디게 하는 것은, 하나의 생각에 불과했던 것이 실체화되는 과정 그 자체다. 또, 그 과정의 결과물을 바라봐 주는 사람들이다.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작업이 ‘세상을 읽어 내는 과정’임을 깨닫는다. 개인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상을 읽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송준 작가는 말한다.
정해진 것은 없다. 재료 또한, 금속에 국한하지 않았다. 당분간 왜곡된 형상 작업을 이어갈 계획이지만, 다양한 실험과 함께 진행할 예정이다.//성수진//

장소 : 갤러리 이듬
일시 : 2019. 6. 5. –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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