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훈展(갤러리 서린스페이스)_20191105

//작가노트//
TIMESLIP’, ‘시간이 미끄러진다는 초자연현상’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시간을 거슬러 과거나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자연스럽게 오고 가는 시간여행을 말한다.

과거의 지나쳐온 것들에 대한 아쉬움, 사라져 가는 풍경과 사물에 대한 애수가 작품의 정서이며 작품 속에 등장하는 다리는 사람들이 시간에서 자유로울 수 있도록 해준 그들 스스로의 개척물이자 시간의 통제에 대한 창조물로 보고 있으며 이를 통하여 다리가 시작하는 내가 서 있는 세상과 다리 끝의 또 다른 세상과의 소통을 의미한다.

달이 지닌 의미는 도달하고 싶으나 도달 할 수 없는 이상향 적인 존재이자 시간에 대한 절대적인 무엇으로 존재하며 모든 사람들에게 초월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형상으로서 걸려있는 비행기는 또 다른 동적인 요소를 가진 존재로서 이상향으로 도달하기 위한 사람들의 희망과 소망을 표현한 것이다.

작품의 제작 과정으로는 표현하려 하는 장소와 소재를 사진촬영 및 에스키스를 한 후 이미지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원하는 구도에 편집한 후 그것을 픽셀화하여 면을 나누어 준다. 그런 다음 이것을 다시 한지에 옮겨 자국을 내어 스케치라인을 형성하여 먹으로 다시 채색하는 방법을 통해 디지털의 시대에 살고 있으며 인화물의 이미지에 익숙하지만 이 이미지를 다시 수작업으로 스케치를 따서 화면으로 옮겨가는 과정자체가 ‘TIMESLIP’의 의미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수묵화 기법 중 먹을 여러 횟수로 반복하여 쌓아 올리는 적묵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레이어를 쌓아가는 방식을 채택함으로서 아날로그적 감성과 디지털적인 강렬한 이미지가 공존하는 중의적인 세상으로 표현하였다.

//평 론//
이지훈 작가는 우리와 닮은 있을법한 일상을 다르게 이해하고 보여준다. 이지훈 작가하면 달이 연상되는데 보통 달의 이미지와 차별적으로 작가의 달은 상호 반영 없이 독자적으로 드러나 있다. 미를 지니지만 여러 작품에서 복제되고 반복된 달은 지극히 인위적이며 기계적으로 다가온다. 달과 유기적이지 않는 작품 속의 도시나 교량, 그리고 비행기의 이미지에도 동시대의 모습이 응축되어 있는데 이 역시 구체적 표상이 결여되고 해체되어 그저 맥락 없는 화려함만이 평면성으로 남아있다. 이처럼 작가의 시선은 담담하면서도 직설적이며 냉소적이다. 그러면서도 치열하게 자신이 처해있는 현실을 적극 해체하고 또 결합함을 반복한다.

작가는 ‘그린다’라는 개념과 ‘현재성’을 해체와 결여에 관한 복구를 통해 풀어나가고 있다. 전통적인 동양화의 기법 위에 그는 현재의 모든 것 혹은 모든 영역 – 현재의 풍경, 동시대 디지털 양식, 전통 회화 양식에서 벗어난 장르간의 경계를 허무는 이미 지의 시도 등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러한 시도는 전통적인 회화 양식에 동시대 장르간의 경계 없는 양식을 결합으로서 어느 한쪽으로 환원되지 않는 이지훈 작가만의 방식으로 이해된다.

작가는 해체의 재구성 방법으로 자신만의 기법을 통한 기존양식과의 차별성과 생성 가능성을 보여준다. 전통양식의 기법으로 먹을 여러 횟수로 반복하여 쌓아 올리는 적묵법을 동시대적으로 재해석하여 레이어를 쌓아가는 방식을 보여주는데 이런 행위는 아날로그적 감성과 디지털적인 강렬한 이미지가 공존하는 중의적인 세상을 표현하는 현재성에 부합한다. 기계적인 표현의 묘사들이 전통기법을 통해 재해석되는 행위는 표상적으로 드러난 이미지 간에 일어나고 있는 일이나, 혹은 오히려 이미지 내면 깊은 곳에서 계속 변화하고 있는 그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가는 깊이를 강요하지 않는다. 이런 다양성을 느끼는 것은 오롯이 작품을 감상하는 타자의 몫으로 남기고 있다. 이처럼 작가가 열어 놓은 가능성하에 각자 갖게 되는 감각이라고 하는 것은 이미지로 표상된 공간의 미학에서 찾을 수 있다.

작가의 작품에 있어서 ‘만(滿)’의 미학적인 감성이 지배한 공간을 환기하는 점에서 주목한다. 기존 미술 양식에서 달의 이미지는 심상의 반영과 기원의 의미가 대부분이다. 그에 비해 이지훈 작가의 달은 스스로의 혈기 왕성한 현재를 솔직하고 과감한 그 자체로 표현하고 있다. 달은 마치 곧 터질 것 같은 불완전함, 불안함, 가득 참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옆을 아슬아슬하게 날아가는 비행기 역시 위태롭게 보인다. 작가의 주관성이 개입된 달과 비행기의 이미지 속에서 현재성과 아울러 생성 가능성으로 가득 찬 욕망을 발견한다. 지속과 단절 속에 작가가 행하는 끊임없는 해체와 반복은 고정된 주체가 아닌 유동적인 잠재성이다. 또한, 그가 보여준 꿈틀대는 욕망은 부정의 의미를 넘어선 동시대에 나타난 사회 전반적인 현상으로도 병치된다. 비로소 달과 그가 나타 낸 이미지들은 작가 자신과 그 주변의 모든 것을 집어삼킨 채 동시대를 산다는 것의 불안이나 고뇌를 잔뜩 짊어진 젊음의 자화상으로 변모한다. 이처럼 작품 한 쪽에 자리 잡고 있는 독립된 달은 무엇인가 고정되지 못한 채로 꿈틀대는 욕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가벼움 혹은 불안감을 간직하며 지속적으로 빛을 발산하고 있다.

동양에서 만(滿)은 물이 평평하게 가득 차서 넘친다는 의미에서 ‘차다·넘치다’라는 뜻이 있다. 그리고 확장된 의미의 만(滿)은 ‘풍족하다·교만하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의 작품에서 달은 화려하고 풍족한 그리고 교만하기까지 한 화려함을 영원히 보여주는 것 같지만 그것이 찰나임을 작가는 말해준다. 동양사상중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하니 ‘차면 넘친다.’라는 만즉일(滿則溢)의 이치가 있는데 그는 이런 의미를 ‘TIMESLIP’로 표현하고 있다. ‘시간이 미끄러진다는 초자연현상’이라는 뜻을 지닌 ‘TIMESLIP’ 속에 현재성을 반영한 시간의 흐름 그리고 그 흐름에 따른 또 다른 생성을 달의 반복되는 이미지를 통해 말하고 있다. 작가는 현재의 찰나를 고정이 아닌 흐름 일부로 그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드리며 미래의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이미 가득찬 그릇에 물을 더 부으면 넘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동양에서는 ‘우리 마음의 욕망 역시 가득하면 번민한다.’라고 말한다. 작가의 이미지에서 가득 찬 달과 대조적인 풍경의 평면적공간은 진정한 만(滿)의 사유를 보여준다. 그러면서 허상과 상생 가능성으로 구분되는 그 모든 것을 포용하며 이해한다. 작가는 허상의 기만(欺瞞)과 동시에 기울임 없는 평면성을 통해 만들어진 세상에서 다름의 이해 그리고 그것을 포용할 때, 비로소 진정 가득 찬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가 만들어내는 때로는 권태롭고, 지극히 일상적인 작품의 응축은 결국 존재 이유로 향해 간다. 이지훈 작가는 과함이 가득 한 다양성이 범람하는 동시대에 있어 솔직한 이해를 전달하고픈 이시대의 청년작가이다. 우리는 미래가 있는 청년의 잠재 속 한 지점을 마치 달을 보듯이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먼 훗날 또 다른 지점과 조응하길 기대해본다.

장소 : 갤러리 서린스페이스
일시 : 2019. 11. 05. –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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