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종보展(미광화랑)_20211101

//작업 노트//
시절정경 時節情景

“좋은 비는 때를 알고 내린다.”
중국 시인 두보의 ‘춘야희우’에 나오는 구절이다. ‘호우시절’처럼 아름다운 기억이 담긴 이야기들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고 가슴에 남아있다.

물론 좋았고 슬펐던 일, 행복하고 힘들었던 일도 있었지만, 그런 시절을 지내면서 그만큼 성장하고 단단해진 인생의 깊이를 발견하는 것 같다.

‘시절정경’은 지난 시절 경험하고 다녔던 곳곳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 기록이다. 사계절에서 느껴지는 정감어린 풍경을 표현하고,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삶에 주목한다. 과거에서 현재까지 이어지는 시절의 이야기들은 철 지난 것이 아닌 오늘의 이야기 속에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림 속의 정경들은 이미 없어진 곳도 있지만 여전히 따뜻하고 평온한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런 공간들이 사라지거나 잊혀지지 않았으면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옥상마을, 용호농장, 영도 점바치 골목… 사라진 공간들.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은 사람과 밀접하게 함께한다.
사람들이 함께한 공간이 사라지면 사람에 대한 기억과 공간에 대한 추억도 옅어진다. 경제적인 논리에서 보면 꼭 필요한 공간이 아닐 수 있겠지만, 삶의 필요한 공간으로 남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림으로 옮겨 놓았다.

도시의 주변을 둘러보면 언덕받이 집들을 제외하고 평지의 집들은 이미 아파트 일색이다. 재개발 되고 있거나, 예정되어 있다. 마을과 골목길이 사라지고 건물과 도로만 있다. 예전 마을의 골목길은 생활의 공간이었다. 아이들의 가장 안전한 놀이터였고, 사람들의 이야기 마당이었다. ‘시절정경’은 그런 삶의 공간에 대한 이야기 들이다.

그림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일반적인 풍경이 아닌 ‘정경’에 관점을 두었다. 정감 있는 풍경이라고 할까, 그래서 풍경 속에 사람들이 있고, 꼭 그 사람들의 이야기가 묻어 있을 것 같은 것에 관심을 가지고 그림을 그렸다. 꽉 찬 풍경 속 그림의 한 모퉁이에는 조그마한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 넣어야만 그림이 완성 된다. 어떤 때는 아기자기한 사람들의 일상과 주변의 삶을 그리다 보면 위해 풍경은 부수적인 표현물이 되어 조연에 머무른다.

한편으론 사람들의 모습과 공간과 시간을 담은 ‘시절정경’ 그리는 것은 나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이었다. 타인의 모습이면서 나의 모습을 담은 정경 이기도하다. 그림을 통해 나를 알고 나답게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는 것 같다.//설종보//

장소 : 미광화랑
일시 : 2021. 11. 1 –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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