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수展(PH 갤러리)_20211105

//전시 서문//
강선학(미술평론가)

인물군상은 대체로 익명적일 수밖에 없다. 사실적 묘사조차 군상은 사건이 전면화 되고 개인은 묻히기 마련이다. 개별적 묘사마저 군집화 되면서 개인은 사건의 일부로 해체되기 마련이다. 개인은 파편화되어 화면에 놓이고 등장인물들은 서로 무관하게 군집을 이룬다. 거리에서 보행하는 사람이거나 아이들과 산책을 나선 장면이거나, 어떤 구체적 일상의 모습으로 보이지만 한명의 움직임, 하나의 제스처로 잡혀 있다. 때로 그조차 희미하고 외곽선으로 겨우 가늠할 정도의 형태가 허용된 채 그곳에 있다. 드러나 있는 인물의 표정이나 입성으로는 개인으로서 정체성을 파악할 수 없다. 철저하게 익명화의 맥락에서 인물들이 처리된다. 개인은 그저 희미하게 흐려진 상태로 드러날 뿐 일관성 없는 전체에 소속되어 있다. 미완의 형상이 주는 불편한 물음이 시야를 막아선다. 한영수의 이번 작품전이 주는 인상이다.

계곡을 배경으로 인물 셋이 등장한다. 계집아이들이 계곡의 바위 위에 서 있고, 그 앞의 여인은 상반신만 잡혀 있다. 여름날 한번쯤 기억 속에 떠오름직한 정경이다. 그러나 이 인물 셋과 계곡의 정경은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다. 계곡 따로 인물 따로, 서로 겉돈다. 합성된 사진 같다는 인상도 그런 때문이다. 게다가 인물과 계곡의 묘사는 충분하지 못해 분명한 현실적 정경을 잡기 힘들다. 마치 희미한 기억 속에서 어떤 장면을 끄집어낸 듯하다. 스냅사진으로 찍힌 계집아이들의 표정은 어딘가로 시선이 향해 있는데, 배경이 없다. 표정은 희미하고 배경이 없으니 어디인지도 알 수 없다. 까맣게 기억 저 편에 박혀 있던 시간의 파편이 드러나고 있을 뿐이다. 배경도 내용도 없이 그림자를 깔고 앉은 모양이다. 그렇게 있는 순간일 뿐 어떤 구체성도 가지지 않는다. 옷맵시로 보아 어느 나이쯤인지 자신의 나이를 짐작하게 하겠지만 그쯤에서 기억은 이리저리 헤맨다.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하더라도 어느 순간 어떤 정황으로 고정된다. 앞뒤가 없는 정황과 사건은 서사라기보다 의식의 파편에 가깝다. 계집아이 하나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모양새다. 그림자조차 없다. 빈 공간에 그렇게 앉아 있다. 한때는 분명한 기억이었을 장면이지만 이제는 그저 그런 순간이 있었구나 하는 정도다. 보는 이에게 또 다른 추억이나 기억을 떠올리게 하겠지만 어떤 구체적 지칭성도 갖지 않는 대상이다. 떠오르지 않는 기억들의 움직임, 지나간 시간들이 빈 공간을 들쑤시고 있을 뿐, 그 기억들은 어떤 현실감도 용납하지 않는다. 애틋하게 비어있을 뿐이다. 어릴 적 사진을 보고 단숨에 그렸다는 인물소품이 있다. 단숨에 한 붓, 한 색으로 그려낸 작품의 특징은 부정확한 묘사와 물감의 흔적, 붓이 지나는 흔적들이 생경하게 드러난다. 붓이 급하게 형태와 기억을 쫓고 있는 모양이 역력하다. 그러나 그 형태는 희미하고 색상은 미완이고 구성 역시 온전하지 못하다. 그런 상태에서 그림은 완성된다. 미완의 상태로 놓인 채 완성된 것이다. 기억은 선명하기보다 희미하고 단편적이다. 그런 상태에서 묻어나온다. 그리고 시간의 선후는 섞인다. 한 개인의 시간이 개인의 차원에서 무너지면서 우리라는 익명이 된다. 그가 자신의 사진을 서슴없이 선택하는 데는 이런 이유가 없지 않을 것이다.

그의 이번 작품 소재는 사진이다 사진이 환기시키는 정황, 기억, 시간 속에서 그것들의 존재감들이 내용을 이루고 있다. 그것은 그가 현장 실사나 스케치를 통해 얻어낸 장면이 아니라 대부분 자신의 지난날 사진을 소재로 삼았다는 데 있다. 개인적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기억을 더듬는 것이자 과거를 현재화시키는 과정인 셈이다. 모든 사건의 의미는 언제나 사후적이다. 그것은 시간을 더듬어 가는 짓이다. 시간을 통해 과거를 보아내는 것이자 과거를 현재화시키는 것이다. 개인적 일이자 한 인간이 지나간 시간과 어떻게 맺어지는 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는 시간으로서 인간의 모습, 시간으로서 자신의 과거, 시간으로서 사건, 현실, 존재의 문제를 더듬거리며 머뭇거리며 모색하고 있다. 게다가 이번 작품들은 대부분 단색이거나 최소한의 색상으로 이어간다. 묘사도 대상에 대한 지칭성이나 사건을 보여주기에는 언제나 미치지 못한 지점에서 멈춘다. 사람들이 여기저기 서성거리고 있지만 어떤 전체성, 통일된 장면을 만들지 못하고 익명으로 거기 있다. 희미한 형태들과 색상들, 그리고 연관성 없는 정황은 현실의 한 순간이지만 지금 확인 가능한, 선명한 인지의 순간이 아니라 지난 것들에 대한 회상으로 보인다. 기억의 파편들이 드문드문 화면을 차지하면서 현재로 다가온다. 시간과 사건의 파편들이 콜라주로 다시 재구성되고 있다. 여러 사람이 등장하는 작품들에서도 군집에서 드러나는 사건과 정황이 하나의 집단적 기억이거나 회상의 것으로 뒤물러 간다. 그곳에서 개인은 무력화된다. 개인의 사사로운 기억조차 하나의 기억으로 개별화되고 희미하게 들춰냄으로 개인을, 때로 자신을 익명의 어떤 것으로 몰아간다. 그는 이런 시간 속의 존재를 드로잉이라는 형식으로 접근한다. 미완의 순간, 그러나 직관적으로 판단된 사건을 시간적인 성격으로, 현재의 경험으로 형상화 해낸다.

풍경이나 실내 정경을 잡은 작품들에서 인물로 이어지는 이번 작품들에 이르기까지 목격되는 특징은 미완의 순간을 하나의 형식으로 수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이번 전시는 인물을 통해 과거를 서사가 아니라 현재형으로 만나게 한다. 드로잉적 접근을 통해 그 형식과 내용을 모색하고 있다. 화면의 정황은 현재형으로 끝없이 유보되고 인물은 묘사와 미완의 경계에서 우리에게 다가온다.//강선학//

장소 : PH 갤러리
일시 : 2021. 11. 05 –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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