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경展(광안 갤러리)_20220402

//과부화//
얼룩말이 나온다.
분명 정갈한 줄무늬인데 이름은 얼룩말이라니.
어쩌면 우리도 각기 다른 재주가 있는데도 사회의 틀 안에서 사람들의 시선 안에 살고 있는지 모른다. 이 얼룩말처럼.
내면 깊이 흐려진 자아와 사회의 시선에 부딪혀 과부화 걸린 이 얼룩말은 마치 ‘나’를 보는 듯하다.

//BLUE FOREST//
한때 의미 없는 파란 그림만 그렸을 적, 간혹가다 들었던 말이 있다.
‘파란색 좋아하면 정신병 있다던데?’
그때는 그런 게 어딨느냐 생각으로 넘겼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정신병은 기본인 지금 사회에선 창피할 일도 아닌 듯하다.
기분 안 나쁜 척, 괜찮은 척 나까지 속이는 거보단 이 또한 흘리듯 받아드리는 게 어떨까. 정상적인게 없는 이 숲에서 지금만큼은 어떤 생각 없이 아주 가볍게 보고 웃어줘.

//불선명//
가끔은 선명한 기억들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가 있다.
흐려졌으면 좋겠지만 도저히 흐려지지 않을 그런 때.
흐려지고 싶은 기억은 다 이 나무에 쏟고 털어버리길 바란다.

//동심//
동심이 필수적인 나이에 나는 동심이라곤 없었다. 놀이동산, 인형놀이, 숨바꼭질 등등 하나같이 유치했다.
간지럼도 안 타는데 간지러운 척을 했고, 재미도 없는데 숨바꼭질도 해야 했다. 모두가 생각하는 보통의 어린아이처럼. 웃긴 건, 모든 게 순수했던 그때보다 얼룩진 지금에서야 유치함에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것들이 좋아졌다.
어떠한 영향을 받지 않았을 그때의 나라면 파란 숲을 어떻게 그렸을까 생각하며 한껏 봄을 담아본다.

//집 시리즈//
어릴 적부터 허상을 놀이처럼 즐겼다.
숲속에 있는 작은 집, 동산 위에 덩그러니 홀로 있지만 외롭지 않은 집, 울타리가 있는 마당 너른 집, 아마 이 허상의 집들은 나중에 아빠가 지어주겠다며 허세 가득한 무게를 실은 말로 살고 싶은 집을 그려보라 하셨을 때부터였을지도 모른다.
내가 살고 싶은 집을 마구마구 그린 게.
이루어지지 못한 약속 안에서 아직도 난 신나게 집을 짓고 있다.

//새벽 시리즈//
나는 새벽의 온도, 습도, 특유의 향이 너무 좋다.
그 시간에만 느낄 수 있는 그 찬 공기도 거슬림 없이 깨끗하게 마시게 되는 좋다. 곧 밝아지기 전 이 새벽을 조금이라도 느끼길 바라며 그려 본다.

장소 : 광안 갤러리
일시 : 2022. 04. 02 – 04.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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