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옥展(써니 갤러리)_20220704

//작가 노트//
수채화의 정통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작가만의 개성 있는 작품을 추구하고자 한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하며 그림을 하면 할수록 그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음을 절절히 체감하는 중이다.

어떤 특별한 소재에 천착하지 않고 소소한 일상 속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을 특별한 관심과 애정으로 살펴 그려내는 일에 재미를 느끼고 있다. 그러다보니 그림의 성장만큼이나 인간적인 고뇌가 거듭되고 성숙되는 것 또한 좋은 일이다 싶다. 자연의 이치에 맞물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사소하지 않다는 경외감과 지나치고 무관심했던 대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공존한다.

일상이 여행이 되고 그 때문에 풀 한 포기에도 애정이 샘솟는 삶은 감사의 마음으로 풍요로와 진다.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그려보고 싶은 대상들이 너무도 많다. 관심을 가지는 순간 모든 것이 나한테 와서는 특별한 가치를 가지는 사실이 흥미롭다. 저마다 환경을 탓하지 않고 적응하며 살아내는 생명의 존귀함은 숙연함과 감동을 갖게 하고 그 감동의 물결이 나의 붓끝에서 살아 숨쉬길 바란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코로나 시국 내내 그림만 그렸다. 위기는 기회라고 했으니까… 남들보다 많이 가진 게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내게는 자유롭게 나 자신을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는 사실이 떠올랐고 무엇보다 그 사실이 위안이 되었다. 그동안 치열하게 작업했던 작품들을 꺼내 닦아내서 올 한해 자주 선보이고 있다.

작업을 하다보면 대세와 유행을 쫒거나 타인의 충고에 멋대로 휘둘리는 자아를 단단히 부여잡는 일이 쉽지가 않다. 혼자는 고독하지만 깊어진다. 성공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 해보면 나의 성공은 결과만큼이나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는 이 길의 지난한 과정이 만들어주는 기쁨이려니 한다. 잠시 대중의 눈을 가리고 속일 수 있지만 나 자신을 속이는 일은 불가능하다. 보여지고 평가받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않는 나만의 속도와 나만의 사유로 수채화란 영역 안에서 나만의 길을 만들어 가고 싶다.

대상이 친근한 것만큼 구상의 세계는 비평이 쉬워 보인다.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하지 않을까 싶다. 호평과 혹평 속에서의 시소게임은 부단한 기술과 테크닉 연마를 하게 만든다. 수채화는 실패와 동시에 작품은 버려진다. 회생이 불가능하다. 한 작품이 나오려면 숱하게 버려지는 그림들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재료의 접근이 용이하다 보니 쉽게 다가왔다 힘들다고 떠나는 이유가 그 때문인 듯하다. 재료의 특성상 부단히 노력하지 않으면 감각이 무뎌지는 걸 경험할 수밖에 없다. 하루라도 붓을 들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시간이 날 때 하는 것이 예술이 아니길 나에게 주문한다. 그렇게 끊임없이 작업하는 연장선 위에서 긴 연결고리가 만들어지고 새로운 영감과 대상에 대한 이해가 겹겹이 쌓여 새로운 길이 열리리라 믿기 때문이다.

전시장에 어떤 어르신이 오셔서 요즘 그림은 너무 어렵다고 하셨다. 본인은 80평생을 살아도 잘 모르겠는 갖가지 철학적 사유를 그럴싸한 이유처럼 떠드는 사람의 작품엔 거짓뿐이 없는 것 같다는 말씀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림과 작가가 별개의 것처럼 구분되어지는 일없이 물아일체가 되는 일.. 도를 닦듯이 마음을 닦고 그림을 그리는 일.. 소재의 친근성과 획일화된 표현기법으로 작품이 폄하되지 않도록 하는 일.. 의미와 뜻을 말로 하지 않아도 발길을 붙들 수 있는 그런 작품을 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나는 그림과 함께 인생이 깊어지길 바란다.
그래서 깊어진 무게만큼 그림이 품어내는 향기가 무겁고 진해지면 좋겠다.//임종옥//

장소 : 써니 갤러리
일시 : 2022. 07. 04 – 0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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