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우展(아리안 갤러리)_20230513

//비평문//
글 : 김주옥

이인우 작가의 작품은 분명 이미지를 ‘그리는’ 행위가 아닌 무언가를 ‘새기는’ 행위라 부를 수 있겠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선 우선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이야기부터 해야할 것이다. 한 인간의 생각과 사상을 표현하는 예술은 분명 어떠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 메시지는 ‘내용’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어떠한 ‘지향점’을 나타낸다는 말이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은 어떤 것을 단순히 충실한 테크닉이나 화려한 기교를 통해 표현하는 것이라 부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지향점’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지향점이라는 것은 작가의 예술적 행위의 의도라고도 볼 수 있고, 넓게 보았을 때에는 그 작가의 ‘삶의 태도’를 대변하는 행위라 볼 수 있다. 그 사람이 인생을 대하는 태도, 그 사람이 삶을 바라보는 자세 등 모든 것이 합쳐져 그 사람의 예술로 만들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예술이란, 누구나 기준은 다르겠지만 올바른 삶의 태도를 대변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래서 예술이 무엇인가, 무엇이 좋은 예술인가에 대한 정답은 없다. 누구나 삶의 기준과 가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인우 작가가 살아온 삶의 역사를 함께 나누다 보면, 물론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들이 있겠지만 모두가 느끼는 삶의 순간들은 모두가 강하고 뾰족하다는 것을 느낀다. 고통스러운 만큼 진하고 뚜렷하며 기쁜 만큼 찬란하고 짧다. 고통의 순간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터널처럼 계속되는 어두움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기쁨의 순간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짧고 가볍게 증발한다. 사람이 인생을 살며 배우는 것이 하나 있다면 아마도 그것은 모든 순간이 지나간다는 것 일테다. 공평한 기쁨과 슬픔 속에서 인생은 흘러간다. 물론 그 공평한 인생의 생로병사 속에서 저마다의 차이를 만드는 것은 그것을 바라보는 삶의 태도와 내가 인생을 대하는 그 자세가 아닐까?

그렇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작가는 그 시간을 몸으로 느끼며 살아왔다. 그리고 그 기억은 작가의 몸에서 다시 캔버스로 전이된다. 필자는 그것을 캔버스 화면에 작가가 몸으로 쓰는 역사라고 말하고 싶다. 작가의 회화를 가까이서 바라보면 무수한 이야기가 쓰여 있다. 모두가 다른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한 사람의 삶을 온전히 모두 이해하기는 힘들다. 마치 그것을 아는 것처럼 작가는 캔버스에 그려나간 무수한 흔적을 찬란한 색으로 덮어버린다. 그 덮어버리는 행위는 단순히 지우는 행위가 아니다. 축적된 시간을 표현하는 행위이자 다시 시간을 이어가는 행위라 볼 수 있다. 그 행위는 캔버스의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 이어진다. 이때 작가는 붓을 든 자신의 팔이 아닌 몸 전체를 활용하여 그 세월의 역사와 이야기를 지워내는 동시에 새로 이어간다. 아마 작가는 알고 있을 것이다. 모두의 인생이 다르듯 자신의 인생은 자신만이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모두 이해할 수 없는 그들과 세상을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김주옥//

장소 : 아리안 갤러리
일시 : 2023. 05. 13. – 0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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