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경展(갤러리 이듬)_20230707

//사진예술 작가 소개//
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숲 하나가 있다. 그곳은 내 작품의 출발점이라도고 할 수 있는 어머니 같은 포근함이 담겨 있는 숲, 비자림이다. 요즘은 숨겨져 있던 수많은 제주의 숲들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비자림의 인기가 예전 같지는 않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애틋한 그리움의 장소이자 사진 한 장으로도 행복감이 밀려드는 곳이다.
-중략-

곶자왈은 독특하고 다양한 나무와 넝쿨들이 어지럽게 뒤엉켜 숲을 이룬 곳이지만 나는 그 속에서 그들만의 질서와 공존하는 법을 보았다. 자연에서 삶의 진리와 여유를 배운 것이다. 곶자왈은 깊숙이 들어갈수록 사람을 빠져들게 하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 곳에 들어서면 어떠한 잡년도 끼어들 겨를이 없고 시간은 멈춰버린 듯 고요하다. 어느새 숲은 온전히 나만의 공간이 된다.
-김미경, 제주 낭만 여행 中-

어머니는 해녀였다. 끝을 알 수 없는 바닷속으로 자맥질해 들어가는 어머니를, 혼자 남은 아이는 오도카니 기다렸다. 섬에서 태어난 섬집 아이였지만, 정작 바다는 무서웠다. 물은 근원적인 공포이지 미지였다. 그래서 김미경 작가의 사진작업에는 ‘물’의 테마가 빠지지 않는다.
“바다에 빠져 죽을 뻔 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은 늘 내 발목을 붙잡았다. 호흡이 가빠오고 온 세상이 시퍼렇게 나를 짓눌러가던 순간, 내가 보았던 바다의 얼굴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절대적인 ‘무엇’이었다. 그 뒤로 나는 절대로 바다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바다에서 도망칠수록, 나는 도리어 바다와 가까워지고 있었다.”
-김미경, ‘바단, 결’ 작가노트 中-

김미경은 홍익대 사진학과 석사 졸업전 때, 수조의 물을 담은 ‘She is who she is’ 시리즈를 선보였다. 수조 안의 물은 이후 바다로, 비로 확대됐다. 이어진 ‘바당, 결’, ‘Paradise Lost’ 시리즈 등에서도 물과 바다에 대한 기억은 그의 작업에 꾸준히 등장해왔다. 제주의 몽돌 해변부터 남해안 시리즈까지 바다를 찍어오던 그는, 제주의 숲에서 또다른 바다를 봤다.

천 년의 고요를 품은 비자림, 촘촘히 나무들로 가득한 곶자왈, 사려니 숲길까지, 어린 시절 그를 품어주던 제주의 숲은 역시 물과 연관돼 있다. 숲의 나무들은 촉촉히 비에 젖어있고, 그래서 더욱 깊은 어둠을 간직하고 있다.

“처음에는 물, 바다에 대한 트라우마로 작업을 시작하게 됐는데, 참 이상하죠? 어느새 작업을 하다보니 그 트라우마마저 이겨낸달까, 껴안게 됐어요. 더 이상 무섭지 않아요. 원래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더 무심한 것처럼, 전국을 다니며 사진을 찍었는데, 제주도의 숲, 내가 어린시절 나고 자란 숲을 이제야 찍게 됐어요. 새벽에 숲에 홀로 다가서면, 비가 내리거나, 혹은 막 그친 숲은 나를 어머니의 품처럼 그냥 푹 안아줍니다. 그 안에서 몇 시간이고, 어느 순간이 나를 찾아오기를 기다렸어요.”

김미경의 사진 속에서 숲은 물 같고, 물은 숲 같다. 그의 바다는 물결 하나하나가 녹아들어 또 다른 대기를 형성하듯 투명하고, 그의 숲은 짙은 심록(深綠)안에 숲을 숨긴 듯 빠져들게 한다. 신비한 그 무엇-시방 위험한 그 무엇인가를 숨기고 있는 듯-그런 보이지 않는 대상이 숨어있기 때문인지, 그의 사진은 평온한 듯 일면 위태롭다.

박영택 경기도 교수는 “김미경은 제주의 자연, 숲과 바다를 촬영했다. 특히 어둡고 깊은 숲에서 번져 나오는 비릿한 냄새와 미묘하게 밝게 빛나고 형언하기 어려운 색채로 파득거리며 모종의 깊음과 더할 나위 없는 눅눅함이 몸을 섞는 바로 그 때의 공간, 그 순간만 얼굴을 내미는 느낌(빛과 색채)을 찍고자 했다. –중략- 작가의 사진은 깊고 어두우면서도 선명하고 놀라운 빛과 색채가 뒤척이는, 생성적인 제주 숲의 신비스러운 자태, 그 숲이 뿜어내는 영기와 놀라운 매혹, 그리고 보이지 않는 유령 같은 비가시적 존재의 자취를 힘껏 낚아채고자 한다”고 평한다.

‘바당, 결’ 시리즈는 물이 직접적으로 보이기보다는 대기 속에서 뭉그러지면서 마치 인상주의의 그림과 같은 결이 느껴진다. 그는 “시각적으로 비가 보이면 공간에서 시간이 흐트러지는데. 시간을 길게 하면 투명하게 표현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빛과 노출을 조절하기도 하는데, 특히 장노출을 하면 물결이나 내리는 비가 안개처럼 보이는 것도 가능하다고. 무엇보다 파도를 길게 장노출로 찍었을 때는, 마치 파도의 움직임이 한 면이 된 평평한(Flat)한 이미지로 나타나게 된다.

반대로 그의 숲은 숲이지만 때로는 물결 같아 보이기도 한다. 짙은 심록의 파도가 화면 위를 미끄러져 관객의 시선에 부딪힌다. “바다와 숲은 연관돼있고 그 이미지도 연결돼있어요. 크건 작건 나의 트라우마, 공포심에서 작업이 출발했지만, 결국 작업을 통해 그 공포를 즐길 수 있는 단계가 된 것 같아요.”

그가 이렇게 제주의 바다와 숲, 자연을 찍는 것도 결국 자신의 사적 경험에서 시작해, 그것이 공감각적으로 확대되고, 이를 통해 풍경을 있는 그대로, 기다릴 수 있는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연 앞에서 우리가 스스로 작아지고, 편안해지는 경험에서 우러나온다.

“자연은 예측할 수 없기에 자연을 찍다보면 생각지도 못한 작업들이 나와요. 작업이 안이뤄질때도, 그런 우연의 힘으로 힘이 생겨서 다시 작업을 하는 것 같아요. 사회생활 하면서 힘들었던 것들이 머리가 맑아지면서, 그냥 그 공간을 가져오고 싶다는 마음이 들죠. 내 작업으로 스스로 행복해졌다면 성공했다고 생각하고, 보는 분들도 그런 편안함을 느낀다면 작가로써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그가 계속 바다, 물, 숲을 테마로 작업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전시장에 걸린 두 장의 동백꽃 사진, 유독 어두움 속에 등불 밝히듯 꽃이 펴있는 사진을 보며 그가 말했다.

“저는 사람도 풍경도 ‘살포시’가 좋아요. 어느 새벽 숲속에서 동백꽃을 보았는데, 그야말로 ‘살포시’ 피어 있더라구요. 어두움 속에서 이제 막 눈을 뜨기라도 한 듯이. 아마 이 동백꽃이 다음 내가 하는 작업의 힌트가 되지 않을까 ‘살포시’ 그런 예감이 들었어요.”//사진예술 2016년 10월호, 석현혜 기자//

장소 : 갤러리 이듬
일시 : 2023. 07. 07. – 0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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