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슬展(아트스페이스 이신)_20240104

//작가 노트//
애써 사진을 찍으려 하지 않았다. 눈길 끌 일 없는 일상생활과 생활용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일상은 하찮은 것처럼 보이지만 늘 가까이에서 나와 동거하므로 가식의 옷을 입지 않는다. 그런 일상적인 것들이 간혹 나를 빤히 응시하기도 한다. 그때 카메라를 들었다. 일상에서 만나는 주변의 사소한 사물들을 소재로 시간을 성찰하며 나의 심리를 흑백 사진에 풀어 놓았다.

“두꺼운 현재”는 ‘스며들다’, ‘과거완료-익숙한 낯선’, ‘과거-편안한 어두운’, ‘현재완료-불편한 밝은’, ‘현재-낯선 익숙한’, ‘향하다’의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사진 ‘스며들다’와 마지막 사진 ‘향하다’가 수미쌍관(首尾雙關)을 이룬다. 첫 사진 ‘스며들다’의 여성은 어둠 속에 진입하고 마지막 사진 ‘향하다’의 여성이 빛을 밟으며 어디론가 향해가고 있다. 그 사이에는 ‘과거완료’, ‘과거’, ‘현재완료’, ‘현재’라는 시간이 있다. 그래서 각 장에는 시간을 나타내는 시계와 달력이 제일 먼저 등장한다. ‘과거완료-익숙한 낯선’은 지나간 과거이지만 한때 나에게 익숙한 듯 낯설게 다가왔던 인간관계를 두 개씩 짝지은 사물들로 상징한 사진들이다. ‘과거-편안한 어두운’은 인간관계로부터 단절되어 겉으로 편안했지만 어두웠던 내면의 표현들이다. ‘현재완료-불편한 밝은’은 반복되는 일상이 불편하여 자신을 투사할 대상을 찾으려 노력하는 모습들이다. ‘현재-낯선 익숙한’은 사진을 만나 출발한 새로운 삶이 아직은 낯설지만 곧익숙해지길 바라는 마음이 투영된 사진들이다.

이처럼 “두꺼운 현재”에는 두 가지 상반된 감정들이 섞여 있다. 자신에 대한 열등감과 자긍심 사이에서 오락가락한 흔적이 보인다. 이런 감정들은 결코 고요롭거나 온순하지 않다. 또한 “두꺼운 현재”에는 현실과 무의식이 씨실과 날실처럼 직조되어 있다. 현실의 모습과 무의식의 모습 중 어느 것도 나의 본모습은 아니다. 그 둘은 서로 혼재되어 그 모습을 흐릿하게 드러낸다.

결국 “두꺼운 현재”는 도피처나 해결책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현재의 시간과 동거하는 과정이며 동시에 현재의 시간을 이해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과정은 거칠고 두꺼워서 쉽게 관통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내게는 서서히 나의 시간을 이해하고 대처할 수 있는 응답 능력(response ability)이 생겼다. 내 몸은 헐렁해지는데 나의 시간은 퇴적되어 무겁다. 그 퇴적층은 쉽게 부서지지 않고 나의 현재를 두껍게 한다.//문슬//

장소 : 아트스페이스 문슬
일시 : 2024. 01. 04 – 0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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