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경展(어컴퍼니)_20240425

//전시 내용//
부산 해운대 달맞이 고개에 위치한 어컴퍼니에서는 파리와 브뤼셀, 서울을 오가며 종횡무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수경 작가의 개인전 ‘팔림세스트 Palimpsest’를 준비했다.
전시 제목인 ‘팔림세스트 Palimpsest’는 ‘이미 적힌 글씨를 긁어내거나 씻어내는 행위’를 뜻하는  라틴어로 이미 글이 쓰여져 있는 양피지 위에 글을 지우거나 긁어내고 다시 다른 글을 덧씌워 쓴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글 위에 다른 글을 쓰는 과정에서 이전 글들은 그에 영향을 받게 되고 글과 글이 겹쳐져 가는 과정에서 풍부한 의미가 발생한다.

“나의 행위는 익숙한 제스처의 반복이 아니라 한 순간순간의 직감으로 나오는 흔적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첫 단계의 시작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나는 끊임없이 관찰하고 또한 변형시키고 행위에 행위를 겹치고 다른 형태를 덧붙이며 쉴 새 없이 캔버스를 드나든다. 바로 이러한 단계를 거쳐서 천천히 형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나의 시각과 행위의 쉴 새 없는 왕복은 어떠한 특정한 의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행위들은 캔버스의 평면이 주는 범위에 대한 인식, 그 구조, 비율 등을 고려하며 조형화되어 간다. 미리 구축한 선험적 생각으로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기대하지 않고 상상하지 않은, 일상 언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그러한 영역들을 발견하며 하나하나 찾아가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형상이라는 것은 특정한 이름을 가질 수 있는 그런 형태들이 아니다. 나의 작품에 드러나는 형상들은 확실한 색깔들로 간혹 대조적이기도 조화롭기도 두껍기도 하고 얇게 칠해지기도 하는 그런 조형적 조직체들이다. 마치 평면에 붙은듯하기도 하고 꼭 걸어놓은 것 같기도 한 이러한 형상들은 서로 함께 어우러지기도 하고 부딪히기도 하면서 패러독스를 형성하지만, 한 평면에서 서로 함께 존재하고자 한다.
이렇게 많은 의문의 순간들이 쌓이며 하나하나의 작품이 완성되어간다. 즉 나의 작품은 문제를 던지는 것이지 한 방향의 해답을 주지는 않는다. 이 전시를 통해 끊임없는 의문들을 품고 바라보는 타인의 시각과 함께 그 의구심을 나누고 소통해 보고 싶다.”(이수경, 2021, 파리에서)

이수경 작가가 작품을 대하는 태도와 작품을 제작하는 행위, 그리고 글 결과로 나타나는 작품을 특징은 ‘팔림세스트’의 의미와 상당히 닮아있다. 작가는 순간순간의 직감과 끊임없는 관찰 하에 여러 행위들을 쌓아가며 형상들을 만들어내고 또 지워내며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완성된 작품이 다시 지워지고 겹쳐지며 여러 레이어들이 쌓이면, 배경이었던 색과 형상이 주인공으로 변하기도 하고 다시 그 위에 새로운 형상들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평면 속에서의 이 레이어들은 무한한 깊이와 반복된 시간과 율동을 만들어 낸다.

작품의 강렬하고 세련된 색감은 이수경 작가의 작품을 처음보는 작가들에게도 상당히 매력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미술전공자들의 관점에서 다소 생소한, 전혀 사용하지 않는, 아니 오히려 시도해보지도 생각해보지도 않을법한 색의 조합을 과감하게 사용한다. 그런 색의 조합 때문인지 그녀의 작품은 우리에게 아주 낯선 경험을 제공한다. 다섯 번 이상 매끄럽게 겹쳐진 단색의 바탕 위에 서로 보색을 이루고 있는 띠의 다발들 혹은 선들은 강렬한 색의 대비효과를 이루고 있고, 서로 얽히고설킨 그 색띠들은 캔버스 위에서 무한한 공간감과 입체감을 만들어 낸다. 단숨에 한 터치 한 터치를 과감하게 그어나가는 붓질의 레이어는 그녀의 행위자체가 작품을 완성해 나가는 중요한 요소임을 보여준다. 작가의 모든 제스처는 그림을 구성하고 신체와 그림 사이를 끊임없이 이동하며 하나하나의 레이어를 만들어간다. 그 결과 레이어와 레이어 속에서 적당한 긴장감과 휴식의 균형을 찾아내며, 결국 그녀의 이러한 자취는 치열한 의식작용의 결과물임을 나타낸다. 작가의 작품은 그림에 대한 표현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캔버스 위에 존재하며, 관람자로부터 상상력을 자극시켜 그것을 보는 사람의 시선에 의해 만들어진다.

이번 전시는 2021년 ‘아트부산’ 아트페어에서 어컴퍼니의 솔로 부스 이후 부산에서 개최되는 첫번째 개인전이다. 특히, 이번 전시에는 부산에서 약 일주일정도 머물며 작업한 이수경 작가만의 드로잉이 담긴 아티스트 에디션 티테이블 ‘Mushroom series’를 새롭게 선보인다.//어컴퍼니//

//작가노트//
이 전시에 제목인 ‘Palimpsest’의 어원은 라틴어로서 불어로 직역을 하면 “다시 긁어낸다”라는 뜻에서 온 것으로, 종이를 쓰기 전 시대에 기록을 하고 또 지워진 것의 위에 다시 세기고 지속적으로 이야기를 담아왔던 양피지를 말한다.

오래전부터 내 작업에 대해 생각을 하며, 이 제목을 생각해 보았다.
순간순간의 직감으로 나오는 행위들, 혹은 끊임없는 관찰 하에 변형되어 가는 행위들, 쉴 새 없이 드나드는 행위들이 차곡차곡 싸여져 가며 드러나는 형상들 혹은 지워진 흔적들이 내 작업의 결과물이다. 즉, 내가 느끼고 인식하는 한 순간순간의 기억들이 저장되어 가는 과정이 보여지는 곳이다. 이 여정 중에는 뜻하지 않은 형상들이 읽히기도 하고 기대하지 않은 조형성들이 어우러지기도 한다.

양피지에 적혀온 그리고 지워져 온 이야기들처럼 나의 작업도 많은 행위의 겹침, 외면, 만남들로 흘러간다…//이수경//

장소 : 어컴퍼니
일시 : 2024. 04. 25 – 0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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