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진展(갤러리 이비나인)_20250609

//전시 소식//
작가 임상진의 말은 명확했다.
그의 그림에서 도자기는 단순한 물질이 아니다. 그것은 생의 기억이자,
자아 성찰의 공간이며, 인간 존재의 무게를 담는 상징적 매개체이다.
부산역앞 갤러리이비나인에서 준비하고 있는 임상진 작가의 개인전은, 바로 그 도자기를 꺼내는 지난.그리고 현재 진행중인 여정의 기록이다.

삶의 비바람, 붓끝에 스며들다.
전업작가로 평생을 살아온 임상진 작가의 화폭은 고요하지만 무겁다.
표면 아래 축적된 세월과 감정, 고투의 흔적이 겹겹이 쌓여 있다. 지난 늦은봄
그의 작업실을 찾았을때 봄비처럼 조용히 내리는 작가의 말들은 그의 그림처럼 절제되어 있었고, 오히려 그 침묵 속에서 무게가 전해졌다. 직접 나눈 짧은 대화를 통해 느낀 건, 그가 삶 전체를 붓 끝에 투영해온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그가 사용하는 독특한 재료인 ‘미끌도박’은 오랜 시행착오 끝에 개발한 실험 매체로, 수용성 재료의 특성과 붓의 압력을 정밀하게 조율하여 완성된 질감은, 작업마다 다른 감촉과 밀도를 보여준다. 임 작가는 이 물성을 통해 감정의 깊이, 시간의 층위를 구현해낸다.

예술과 생존, 그 사이의 줄타기
심리학자 매슬로우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로 ‘생리적 욕구’를 들며, 이 욕구가 충족되어야 상위의 욕구로 나아갈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예술가의 삶은 예외적이다. 창작은 가장 고차원의 자기실현 행위이지만, 동시에 생계와 직결된다. 이 간극에서 수많은 작가가 좌절한다.
하지만 임상진 작가는 전업작가로서 이 길을 묵묵히 걸어왔다. 작가로 살아가는 일이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일생을 관통하는 태도이자 각오다. 작가는 “성공보다 생존”이 목표였고, 그림 그리는 일이 나를 지켜줬다”고 말한다. 매일같이 붓을 들고 살아온 그의 시간은, 1만 시간을 넘는 수준이 아니라 13만 시간 이상이다. 그것은 곧 ‘장인’의 시간이며, 한 인간이 견딘 삶의 무게다.
작품, 곧 작가의 시간
작품은 단지 물성을 가진 결과물이 아니다. 임상진 작가에게 작품은 그 자체로 작가의 생애가 담긴 기록이며, 응축된 시간이다. 관람자는 그림을 사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생을, 인내와 정성을, 고요한 투쟁의 시간을 함께 수집하는 것이다.
특히 임상진 작가의 작업은 단순히 형상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대상의 본질을 파고드는 탐구 끝에 도달한 표현이며, 수많은 실패와 실험, 선택과 포기의 결과다. 작가가 생존과 창작 사이에서 지켜낸 균형은, 곧 작품의 밀도이자 깊이다.

이번 전시가 열리는 백제빌딩은 1927년 건축된 부산 최초의 근대식 개인 병원 ‘백제병원’을 전신으로 하는 등록문화재 건물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한국인이 조성한 이건물은 한국인이 지은 부산 최초의 개인종합병원입니다.이후 예식장, 중국 음식점 등을 거쳐 현재의 3층 갤러리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작가는 이 건물을 보자마자 작품과 호흡이 맞는 장소라 느꼈고, 전시에 흔쾌히 응했다. 건물의 역사성과 작가가 회화로 되찾고자 하는 ‘문화 정체성’은 어딘가 맞닿아 있다. 특히 그가 오랜 시간 천착해온 다완(茶碗) 시리즈는, 본디 우리 민족의 것이었으나 일본에서 더 자주 소비되고 연구되는 현실을 반영한다. “잊힌 우리의 미감, 정체성을 되찾는 일 역시 그림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작가의 신념은, 이번 전시의 중요한 축이다.//갤러리 이비나인//

장소 : 갤러리 이비나인
일시 : 2024. 6. 9 –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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