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소개//
아리안 갤러리에서 열리는 구인성·심승욱의 2인전, ‘Black Limbo’ 전시의 제목은 ‘검은 연옥’을 뜻한다.
‘검은색’은 단순한 어둠이 아니라, 모든 색이 겹쳐져 탄생하는 복합적 상태이며, ‘연옥’은 이승과 저승 사이, 소멸과 탄생 사이에 존재하는 중간 지점, 즉 잠정적이고 부유하는 감각의 공간을 의미한다. 이처럼 ‘Limbo’는 완전히 도달하지도, 완전히 사라지지도 않은 상태를 가리키며, 이는 이번 전시에 참여한 두 작가, 구인성과 심승욱이 공통적으로 드러내는 ‘경계적 감각’의 무대와도 맞닿아 있다.
구인성 작가와 심승욱 작가는 각각 상이한 조형 언어를 사용하지만, 이들이 호출하는 ‘블랙’은 단순한 색채를 넘어서 감정, 기억, 감각, 이미지의 층위들이 응축된 상태이자 드러나지 않지만 강하게 감각되는 존재의 잔향이다. 이들의 작업은 가시성과 비가시성, 기억과 망각,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에 머무르며, 블랙이라는 장막 아래에서 감각의 지층을 천천히 드러낸다. ‘Black Limbo’는 이처럼 ‘정지된 넘침’의 상태에 대한 조형적 탐색이며 두 작가의 작업은 이 공간에서 서로 다른 결로 교차하는 감각의 공명을 만들어낸다.

구인성 작가의 작업에서 블랙은 보임과 숨김이 교차하는 시각적 역설로 기능한다.
그의 골판지 작업은 규칙적인 구조 위에 교차된 이미지와 칼질, 누름이라는 물리적 행위를 통해 하나의 복합적 감각 공간을 창출한다. 이미지들은 정면에서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으며, 관람자의 위치 변화에 따라 은근히 떠오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는 마치 피부 아래 얇게 드러난 정맥처럼 ‘거기에 있지만 완전히 잡히지 않는 형상’을 만들어낸다. 그 이미지들은 감춰진 것이 드러나고 드러나는 것이 다시 은폐되는 역동적 구조 안에 놓이며, 단일한 의미를 제시하기보다는 시선의 미끄러짐과 감각의 어긋남을 유도한다. 구인성 작가의 블랙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감춰져 있는 상태 자체’를 형상화하며, 감각적 추론의 층위를 생성한다. 그의 작업은 이미지의 해체와 재구성을 통해 ‘영원히 다다를 수 없는 이미지’라는 림보적 상태를 구현한다. 그의 작업은 이미지의 해체와 재구성을 통해 ‘영원히 다다를 수 없는 이미지’라는 림보적 상태를 구현하며, 이로써 ‘Black Limbo’가 제시하는 주제인 고정되지 않고 유예된 채 머무르는 감각과 의미의 감각의 유예 지대를 보여준다.
보이되 확정되지 않는 이미지, 드러나되 완결되지 않는 감각은 곧 이 전시가 탐색하는 림보적 경험이며, 구인성 작가의 블랙은 바로 그 지대 위에서 감각적 혼성과 지각적 긴장을 지속적으로 생성한다.
심승욱 작가의 작업에서 블랙은 생명과 감정이 억눌리고 정지된 채 침잠해 있는 세계의 감각이다. 비닐로 감싸진 불분명한 덩어리들은 내부에 무언가가 존재하지만 끝내 형상화되지 않는 감정을 은유하며, 마치 숨을 죽인 생명체처럼 고요한 저항과 정적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의 회화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블랙의 형상들 또한 이름 붙을 수 없는 흐릿한 윤곽을 지닌 채, 감정의 응어리처럼 일그러지고 중첩된다. 특히 ‘Object A’ 시리즈에서는 세계가 붕괴된 이후의 심연, 언어 이전의 침묵 상태가 블랙을 통해 시각화되며, 그것은 단지 어둠이 아니라 의미가 소실된 이후 남겨진 감정의 밀도이자, 말해지지 않은 기억의 잔향으로 기능한다.
심승욱 작가는 이처럼 블랙을 매개로, 감정과 기억이 침전된 내면의 지층을 드러내며 관람자를 감각의 심연으로 이끈다. 그의 작업은 조각, 설치, 사진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현대 사회의 억압된 감정과 고립된 욕망, 표면적 안정 아래 잠재된 불안정성과 같은 내면적 문제들을 감각적으로 탐구한다. ‘과잉과 결핍 속의 인간 욕구’, ‘정체 불안정’은 그의 작업 전반을 관통하는 핵심 개념으로 이는 언제나 고정되거나 결정되지 않은 ‘중간 상태’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 그는 구축과 해체가 동시에 발생하는 딜레마적 구조를 통해 사회적 관계의 불안과 내면의 균열을 시각화하며, 의미와 감정이 불확정한 상태로 부유하는 세계를 조형적으로 구성해 왔다. 바로 이러한 유동성과 미완의 감각이 이번 ‘Black Limbo’의 주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처럼 구인성 작가와 심승욱 작가의 작업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Black Limbo’를 구성한다.
구인성 작가는 이미지의 표면에서 시선의 경계를 흔들고 심승욱 작가는 형상의 내면에서 정지된 감정을 응축시킨다. 하나는 시각의 외곽에서 다른 하나는 감정의 중심에서 출발하지만, 이들이 도달하는 장소는 서로 교차한다. 두 작가 모두 드러나지 않는 것을 감각하게 하며, 언어 이전의 상태에서 감각적 긴장과 존재의 흔적을 포착한다. 블랙은 그들에게 있어 단지 결핍의 색이 아니라, 감각이 머무는 공간이며, 의미가 응축되는 표면이다.
‘Black Limbo’는 이처럼 ‘보이지 않음’과 ‘말해지지 않음’ 사이에서 발생하는 감각의 진동을 추적한다. 두 작가의 블랙은 고정된 해석을 거부한 채, 우리가 감각하는 이 세계가 단일하거나 안정된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환기한다. 그것은 끊임없이 흔들리고 침잠하며, 다층적인 시간과 중첩된 존재들로 구성된 공간이다. 이 전시는 그 감각의 복잡성과 미세한 떨림을 따라가는 여정이며, 감정과 이미지, 기억과 사유가 겹쳐지는 림보의 지형도를 그려낸다
작가 구인성은 열다섯 번의 초대 및 개인전을 가졌으며, 파리 이응노 레지던스, 말레이시아, 베트남, 인도네시아, 루마니아, LA, 부산 등 국내외 예술프로그램 선정 및 참여. 현재 강화도 스튜디오를 중심으로 작품활동하고 있으며, 경희대, 경인교대, 신라대 강사로 역임과 창원대, 충남대 출강.
작가 심승욱(b.1972)은 홍익대학교 학부와 대학원, 시카고예술대학 대학원에서 조소를 전공했다.
‘흐르는 시간 속 지워지지 않는 질문들’ (2024 김종영미술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익숙함’(2022, 수에뇨339), 부재와 임재 사이’(2015, 갤러리아트사이드), ‘구축/해체’(2014, 문화역서울284 RTO), ‘사유의 경계를 허물다’(2011, 텐리갤러리, 뉴욕), ‘검은중력’(2008 칼 해머 갤러리, 시카고)등 국내외에서 총 15회 개인전을 개최 했다.
주요 그룹전 으로는 ‘친숙한 기이한’(2022, 부산현대미술관), 제주비엔날레(2022, 제주도립미술관 외), ‘이미지의 향연’(2022 대구예술발전소), ‘강원비엔날레 악의 사전’(2018, 강릉 녹색도시체험센터 일원), ‘예술만큼 추한’(2017, 서울대학교미술관), ‘무심’(2015, 소마미술관), ‘라운드업’(2013, 서울시립미술관), ‘코리언 아이 2012’(2012 사치댈러리 런던)이 있다. ‘새벽의 검은 우유(2020, 김종영미술관) 등의 전시를 기획하고, 푸르덴셜 아이 어워드 컨템포러리 아시안 아트상(2014, 사치갤러리) 등을 수상하였으며, 주요 작품 소장처로는 국립현대미술관(미술은행), 서울시립미술관, 시카고 칼해머갤러리 등이 있다.//아리안 갤러리//
장소 : 아리안 갤러리
일시 : 2024. 6. 11 – 7. 25
추PD의 아틀리에 / www.artv.kr / charmbit@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