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소개//
오늘날 사진 예술은 끊임없이 경계와 한계를 넘어, 다양한 방법과 시각으로 새롭게 해석되고 있습니다. 기존의 구분은 점차 희미해지고 있으며, 모든 것이 수평선 위에 올려져 서로를 비추고 조율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신에서 개최되는 ‘수평 사진전’은 바로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사진 예술의 본질을 재조명하고, 그 다채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전시입니다.
이번 전시는 ‘수평(Horizontal)’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전통과 현대, 기술과 감성, 경험과 새로움이 서로 동등한 관계 안에서 소통하고자 합니다. 참여하는 작가들은 다양한 지역에서 활동하며 각기 다른 사진 세계를 구축해 온 사진가들입니다. 이들은 나이와 경력, 스타일의 차이를 넘어, 오직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한 자유롭고 평등한 예술적 교감을 지향하며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수평 사진전의 특징은 특정 시대의 조류나 경향에 편승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참여 작가들은 과거 전공이나 전작(前作)의 연장선상에만 머물지 않고, 새로운 시도와 탐구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아날로그 프린트 기법과 디지털 프린트 방식이 나란히 놓이며, 기술적 차이 또한 우열의 기준이 아닌 ‘다름’의 가치로 존중됩니다. 전시 공간에 설치되는 작품들은 모두 수평선 위에 나란히 놓여, 상호 존중과 동등한 시선으로 관람객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이 전시가 지향하는 수평의 가치는 다양성 속의 조화와 개성 속의 상호 이해입니다. 사진은 더 이상 특정 기법이나 경향에 얽매인 매체가 아닙니다. 그 안에는 인간의 삶과 자연, 도시와 추상, 기록과 상상이라는 무한한 세계가 존재합니다. 참여한 작가들은 자신만의 독창적인 시선으로 이 세계를 기록하고, 그 감각을 풀어내며, 나아가 새로운 무한 상상의 의미를 창조합니다. 각자의 사진이 보여주는 것은 서로 다르지만, 그 차이가 공존하는 지점에서 우리는 ‘수평의 시선’을 발견하게 됩니다.
부산이라는 공간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바다와 맞닿은 수평선처럼 열려 있으며, 모든 관객이 자유롭고 동등하게 사진을 마주하는 시간을 제공합니다. 바다 위에 떠오른 수평선이 어제와 오늘, 여기와 저기를 잇듯, ‘수평사진전’ 역시 시간과 공간, 작가와 관객을 하나의 평면 위에서 연결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이 전시가 사진이라는 예술이 지닌 무한한 가능성과 자유를 보여주는 하나의 장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또한, 서로 다른 세계관과 표현 방식을 지닌 작가들이 만들어내는 다층적이고 풍성한 울림이 새로운 예술적 경험으로 다가가기를 바랍니다. 2025년 여름, 바다와 수평선이 만나는 곳, 부산에서 열리는 ‘수평사진전’을 통해 사진 예술의 넓고 깊은 지평을 함께 바라보시길 기대합니다.

//김숙경 작가 노트//
비나리
인류가 자연의 일부였던 원시시대는 자연현상 자체에 의지하며 생존해 왔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 본래 의미가 있고, 영혼이 존재한다고 믿었던 ‘범신론’은 종교라기보다는 믿음에 가까웠습니다. 이후 이성과 과학이 중심이 되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념과 믿음이 전제되는 종교의 개념이 형성되었고, 자연스럽게 신앙의 형태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논리로 설명할 수 없고, 과학으로 분석될 수 없는 무속신앙.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 여전히 영향력을 가진 채 잠재하고 있음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저는 ‘비나리’ 작업을 통해 인공지능이 인류 문명을 대체해 나가는 시대에 이러한 현상들이 어떤 의미인가를 묻습니다.
//김정석 작가 노트//
사색(思索)의 바다 Ⅱ
“서해의 물결은 고요하다. 그 물결 속에 몸을 맡기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세상의 분주함도 잊는다. 물결 따라, 하늘 따라, 나는 다시 나를 찾는다.”
동해 바닷가에서 살아온 저는 늘 바다를 동경해 왔습니다. 그 거칠고 사나운 바다를 보며 사색하며 그 마음을 그려낸 것이 바로 ‘사색의 바다Ⅰ’이었습니다.
동해가 거칠다면, 서해는 부드럽고 포근합니다. 동해가 아버지의 근엄함이라면, 서해는 어머니의 품처럼 따뜻하고 포근합니다. 이곳에서 저는 어머니를 떠올립니다. 마지막을 제대로 모시지 못했던 미안함과 죄책감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습니다. 그래서 저는 동해의 이편에서 서해 저편을 그립니다.
오늘도 무언가에 이끌려 서해로 달려오면, 왠지 모르게 파도는 부드럽게 저를 감싸 줍니다. 서해의 넉넉한 품속에서 보내는 시간은 제 지친 마음을 풀어주고, 제 삶을 돌아보며 성찰하게 합니다.
서해 바다는 단순히 아름다운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 고요하고 깊은 사유의 공간으로, 인간과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입니다. 카메라 너머의 바다는 더 이상 풍경이 아니라, 저를 껴안고 다독이는 하나의 마음입니다. 자연의 품속에서 위안을 얻고, 인간 존재의 본질을 되돌아보려는 제 독백입니다.
//김창민 작가 노트//
도시 장르, RAP
도시는 단순한 공간을 넘어, 인간의 꿈과 욕망, 끊임없는 변화가 살아 숨 쉬는 생명체와 같습니다. 제가 오랜 시간 살아온 울산은 한국 근대화의 심장이자, 산업 발전이라는 이름 아래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변화하며 풍요와 상처를 안겨주었습니다.
거대한 변화의 물결 속에서 우리는 때로 시대의 흐름에 휩쓸렸고, 물질적 넉넉함이 가져다준 불안은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했습니다. 이제는 인공지능(AI) 시대라는 또 다른 파도가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익숙했던 일상, 주거, 생활양식, 심지어 감정 표현 방식까지 모든 것이 격변을 맞이할 것입니다.
이러한 불확실한 미래와 내면의 불안감은 이번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도시를 단순한 배경이 아닌, 감정과 상상이 얽힌 독립적 예술 개체로 바라봅니다. 팝아트의 언어를 빌려, 극단적인 색채와 명암의 대비, 과격한 형상을 통해 현실을 초현실적으로 재해석합니다. 이는 ‘왜곡’이 아니라, 제가 살아온 공간을 직관과 감정으로 풀어낸 시각적 실험입니다.
마치 사이버 게임 공간처럼 강렬한 빛과 색, 음영, 질감을 통해 ‘가상현실(시뮬라크르)’을 구현하고자 합니다. 래퍼들의 빠르고 거친 서사처럼, 도시의 일상도 멈추지 않고 춤추듯 변화하며, 강한 대비와 해체된 형상 속에서 도시의 그림자는 공간을 나누고 감정을 자극합니다.
결국, 우리가 ‘현실을 본다’고 믿는 감각은 사실 끝없이 변형된 거울을 통해 비춰진 이미지일지도 모릅니다. 이번 작업은 답을 제시하기보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도시와 우리 일상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여정입니다. 저는 오늘도 RAP처럼 속사포로 현실을 풀어내며, 익숙한 리듬에 얽매이지 않는 시각적 탐구를 이어갑니다.
//문혜란 작가 노트//
당신의 정원 – 바다는 꽃을 피우며 웃는다
저는 바다를 품고 살아온 사람입니다. 항구 도시 부산에서 태어나 근 반세기를 살아오며, 바다는 제 고향이자 어머니처럼 따뜻하게 저를 감싸준 존재였습니다. 익숙하고 편안한 그 품에 안겨 자연스레 바다로 들어가, 마치 꽃을 가꾸는 정원사처럼 ‘당신의 정원’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의 정원’ 시리즈는 지난 5~6년간, 저와 가족이 함께 이룬 창조의 텃밭입니다. 남편과 두 아들과 함께 바닷속에 들어가 웃으며 꽃을 심고, 가꾸고, 바라본 순간들은 단순한 작업을 넘어선 삶의 환희였습니다.
그곳은 우리 가족이 함께한 정원이었고, 사랑이 꽃피는 장소였습니다.
물속에서 펼쳐지는 이 작업은 다양한 오브제와 빛, 물의 흐름이 만들어내는 환상적이고 추상적인 형상으로 완성됩니다. 빛의 굴절, 파장, 흐름 속에서 색과 형태는 언제나 뜻밖의 아름다움을 드러냅니다. 그 안에서 피어나는 꽃들은 생명의 탄생처럼 느껴졌고, 바닷물은 어머니의 양수처럼 따뜻했습니다.
이 작업은 제 존재를 되돌아보는 여정이자, 세대를 잇는 사랑의 은유입니다. 바다는 저를 길렀고, 이제 저는 또 다른 꽃을 피워내며 그 사랑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다는 꽃을 피우며 웃습니다. 그리고 그 미소는 제 안의 생명, 기억, 사랑으로 끝없이 피어납니다.
//최원준 작가 노트//
인간의 흔적
저는 정년이 될 때까지 자동차의 외형 부품을 제작하는 현장에서 금속과 함께 살아왔습니다. 생산 과정 속에서 기능을 다한 잔여 조각들(스크랩)은 늘 제 시선 밖에 놓여 있었습니다. 어느 순간, 저는 자신이 스크랩과 다르지 않은 존재로 느껴졌습니다. 사용된 후 버려지는 금속처럼, 사회 속 저 또한 정년 이후 쓸모없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질문이 내면 깊은 곳에서 일어났습니다.
이 작업은 그런 근본적 의문에서 출발했습니다. 사물의 탄생, 성장, 소멸이라는 흐름 속에서 저는 스크랩을 단순한 산업 폐기물이 아닌, 시간과 노동, 인간 존재의 상징으로 재조명하려 했습니다. 스크랩의 거칠고 날카로운 표면은 현실의 냉혹함을, 반사된 빛과 어둠은 인간 내면의 복잡한 감정을 대변합니다.
특히 붉은 비상조명, 녹색의 출구 표식, 금속의 광택과 그림자는 감정과 개념의 경계에서 묘한 긴장을 만들어냅니다. 이러한 스크랩을 사진 작업을 통해 추상적 조형 언어로 재해석함으로써, 저는 그 안에 깃든 생의 흔적을 시각적으로 풀어내고자 합니다.
이번 작업은 감정적 공감보다는 존재론적 성찰, 철학적 탐구에 가깝습니다. 기능을 잃은 폐금속에서 인간의 흔적을 발견하고, 그 안에서 아름다움과 의미를 포착하고자 한 것입니다.
결국 ‘쓸모없음’이라는 사회적 정의에 맞서, 존재의 본질을 묻습니다. 인간은 기능이 멈춘 후에도 여전히 존재하며, 스크랩처럼 버려진 잔해 속에서도 삶의 기억과 흔적은 남습니다.
//홍종호 작가 노트//
사이(Between)에 대하여
벽면의 흔적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저는 이 흔적들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발견합니다. 떨어져 나간 광고물의 흔적, 접착제의 패턴, 시간의 켜가 쌓인 모습에서 광고주의 열망, 디자이너의 고단함, 그리고 시간의 흐름이 얽힌 새로운 형태를 보았습니다.
이 작업에서 벽면의 흔적들은 단순히 제거된 광고물의 잔여물이 아닙니다. 인간의 의도와 자연의 개입이 만들어낸 우연한 결과물로, 시각적인 형태를 넘어 추상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흔적들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는 전통적인 미의 기준과는 다릅니다.
하지만 이는 우리의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단색의 반복과 무심한 흔적은 단순한 시각적 아름다움을 넘어, 형상의 소멸을 통해 드러나는 시간의 흐름, 우연성, 그리고 그 속에 스며든 인간의 희로애락을 표현합니다. 자연의 요소가 더해져 인간의 흔적은 새로운 차원으로 재생됩니다.
궁극적으로 이 작업은 한국적인 삶의 미감을 담아내면서, 노동과 희망이 교차하는 복합적인 심리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작업이 미적 완성도보다는 시간, 자연, 인간의 흔적이 얽힌 모습을 통해 각자의 관점에서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심리적이고 시각적인 예술 경험을 제공하리라 생각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저는 인간의 흔적이 자연 속에서 고요히 사라지거나 변화하는 순간을 포착하여, 인간 문명과 자연의 시간 ‘사이(Between)’에 담긴 무수한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합니다.
참여작가 : 김숙경, 김정석, 김창민, 문혜란, 최원준, 홍종호
장소 : 스페이스 이신
일시 : 2024. 6. 18 –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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