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을 기억하는 영원 – AURORA//
지난 시절을 떠올리면 한여름 밤의 은하수 같을 때가 많다. 아프고 슬펐던 일도 아득하고 아스라하여 그저 아름답게 반짝인다. 미처 소원도 빌기 전에 한순간의 탄성과 함께 어둠 저편으로 사라져 버린 별똥별 같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의 지금과 내일도 어쩌면 우주의 별자리를 찾아 헤매는 건 아닐까 싶다. 닿지 않는 먼 우주의 별들이 가끔 바람에 일렁일 때가 있다. 우주의 그 말할 수 없는 아득함이 신의 영혼 한 자락처럼 날갯짓을 한다. 우리는 그것을 오로라(Aurora)라고 부른다.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기 위해 애쓰다 보면 말할 수 없는 것이 더욱 간절하고 애틋하다. 삶이 그러하고 사랑이 그러하다. 작가 박현주는 말로 표현하거나 그 무엇으로 흉내 내기 어려운 생명의 에너지를 ‘Aurora’ 시리즈로 구현하고자 한다.
작가 박현주는 삶에서 얻어진 사유와 철학이 담긴 기억을 기반으로 작품을 구현했으며, 특히 기억을 오로라로 상징화하였다. 기억은 잠재적 형태로 존재하지만 본인의 자기 인식을 끌어내는 수단이 되며, 본인 자신의 ‘존재 의미’와 ‘자아’를 실현하는 예술 행위의 바탕이 된다. 오로라는 자연현상이지만, 본인은 오로라가 삶과 죽음을 넘어서는 생명의 역동성에 대한 상징이라고 보았으며, 본인이 가진 기억의 원형태인 순수 기억과도 맞물릴 수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본인은 순수 기억의 현실화로 오로라를 표현하였으며, 이를 통해 자아 정립과 타인과의 조화를 실현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작가 노트//

“생명의 본질은 기억에 의한 지속적 창조이며, 이는 예술의 본질이다.” – Henri Bergson
이와 같이 저 개인의 역사와 지속성, 정체성을 담은 기억에 의한 예술적 동기는 순수 기억이라는 근원적·예술적 사유를 불러일으키고, 그것을 생명 에너지로 전환하여 창조적으로 발현시키고자 하였다. 이것을 바탕으로 저만의 사유와 철학이 담긴 순수 기억을 ‘AURORA 시리즈’로 상징화하였으며 이를 위해 조소적 표현 방법과 3D 디지털 조각 제작 방법으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LINE OF MEMORY 시리즈//
박현주의 이번 전시에 가을날 자연의 바람 소리를 연상시키는 듯한 선율적 이미지와 섬세한 조명이 두드러지게 시각을 끄는 것은, 바로 작가의 그러한 고심(苦心)의 결과라 할 수 있다. 특히 은은한 색조가 특색인 오동나무를 3미터 높이로 수직 연결하여 6미터 길이로 물결치듯 리듬감을 강조한 메인 작품은 강한 대비를 피한 조명 속에서 마치 일본 선사(禪寺)의 명상을 위한 정원 가레산스이(枯山水)를 떠올리게 한다. – 신나경 평론글 중 일부
- 키워드 healing수직으로 연결한 오동나무는 불규칙적으로 보이지만 치유를 뜻하는 영어 단어 ‘healing’을 표현한 것이다. 마치 숲속을 거닐 듯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관람자가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도록 유도하며 기억을 정화시키고자 하였다.
- 빛과 그림자오동나무 판재의 그림자를 이용해 천장, 벽, 바닥을 연결하였다. 나무와 그림자의 반복적 겹침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마치 다른 세계의 동굴이나 미로를 연상하게 한다. 이렇게 완성된 공간은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로서 동적인 공간이 되었다.
여기에 더해 오로라의 이미지를 관람자에게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 빛과 소리, 공감각적 소재를 활용하였다. 이들 소재는 정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 기여하며, 관람객으로 하여금 자신을 되돌아보게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연구자는 타인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자신과 타인의 내적 성장, 곧 삶의 주체로서 행동하는 능동적 자아를 지향한다. - 음향오로라의 일렁이는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설치 공간 내에는 웅장하면서도 차분한 팬플루트의 선율이 흐르고, 하늘에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섬광을 표현하기 위해 크리스털 조각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를 연출하였다. 작품에 소리를 활용한 이유는 관람자의 작품 몰입과 의식 확장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이다. 관람자는 작품을 감상하면서 소리를 듣고, 이때 관람자의 직관이 소리를 포착한다. 오동나무, 빛, 그림자, 소리, 영상 설치를 통해 삶의 에너지에 대한 순수 기억을 구현하고, 이를 통해 자아 정립과 타인과의 화합을 시도하고자 한다.
//ORIGIN 시리즈//
밤하늘에 운위하는 오로라의 움직임이 커튼처럼 접히고 펼쳐진 작품이다. 제작 방식은 조소 기법을 통한 수작업으로 이루어졌다. 근원적인 기억은 개인의 기억이 모여 추상화된 원형으로, 순수 기억인 ORIGIN이라 할 수 있다. 오로라는 모든 근원인 태양으로부터 온다는 점에서 순수 기억과 맞닿아 있다. 따라서 ORIGIN 시리즈는 오로라의 순수 기억을 구현하는 과정이다.
변화무쌍하게 움직이는 오로라, 그리고 시간.이 생성과 소멸의 시간성을 매체적 표현이 아닌 하나의 상징처럼 기호화하고자 하였다. 이는 ‘임시적 시간의 구현’이 아닌 ‘지속적 시간의 상징적 표상’이라는 미학을 담는다.
나이테라는 시간의 미학을 품은 나무, 철, 돌과 같은 정직한 재료들은 기호와 상징을 표상하는 데 있어 오히려 더 효율적인 그릇이 되었다.
//FLOW 시리즈//
목판을 깎아 그 위에 ‘빛의 주름’과 수직의 ‘빗살무늬’를 새겨 시간의 흐름을 오로라의 형상으로 구현한 작품들이다. 빗살 표현은 수작업에서 직선 표현의 한계가 있었기에, 네추럴 모던의 의도를 살리면서도 효율적 제작을 위해 창의적 실험을 시도하였다. 특히 3D 연구와 실험 속에서 제작된 작품들이다.
작업 과정은 먼저 ORIGIN 시리즈와 같이 수작업으로 원형을 제작한 후, 이를 3D 스캔하고, 라이노(Rhino) 작업을 통해 빗살을 설계한 뒤 CNC 장비로 조각하였다. 마지막으로 직관적 수작업으로 마무리하여 완성하였다.
오로라는 우주 태초의 신비로움을 간직한 존재이다. “빛의 주름, 곧 신의 옷자락”이라는 과한 은유조차 어색하지 않다. 오로라는 모든 문학적 수사를 동원해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꿈꾸게 하고 상상하게 만든다. 박현주는 이러한 오로라의 ‘이미지적 상상 효능’으로부터 생명 에너지를 상상한다.
그에게 오로라는 “말로 표현하거나 흉내 내기 어려운 생명의 에너지”이며, “삶과 죽음을 넘어서는 생명의 역동성에 대한 상징”이다.
//SYMBOL 시리즈//
심볼 시리즈는 앞선 부조 형식의 조각을 넘어 삼차원 공간을 점유한다.4미터 이상의 FRP 대형 작품은 6개월간 제작되었으며, 중·소형 작품들도 함께 전시된다.
작품 속 기억의 소환들은 다음과 같다.
- 딸의 어린 시절 뛰노는 모습 속 찰랑거리는 치마에 대한 기억 → 오로라의 순수 기억과 결합되어 재구성됨
- 밤하늘의 오로라 한 쌍이 춤추는 듯한 모습 → 사랑의 기억
- 발레하는 아이의 모습
- 작업이 잘 풀리지 않거나 누군가의 모함으로 아팠을 때, 하늘을 올려다보며 구름 사이로 쏟아지는 태양 빛을 본 기억
- 첫 생명, 큰아이를 처음 마주했을 때 눈동자를 통해 느낀 강렬한 교감
- 달빛 아래 눈부신 벚꽃과 시원한 바람의 기억
- 어릴 적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과 오로라
- 신의 옷자락 등
이 연작들이 내포하는 ‘SYMBOL’, 곧 기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과거의 기억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인 것을 구체화하는 행위이다. 상징은 여러 대상을 결합해 내면의 개념을 표현한다. 작가는 상징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거쳐 집적되고 생성된 정신 세계를 함축적으로 전하고자 한다.
극지방 대기 공간을 점유하는 오로라의 변화하는 시간을 지속적 곡선 형상으로 구현하되, 이를 흐름으로 기호화하였다. 부챗살처럼 펼쳐지거나 하늘로 소용돌이치듯 오르는 오로라 이미지는 시간의 상징성을 더욱 강하게 드러낸다.
이처럼 오로라의 순수 기억은 특정 시공간의 분절된 장면이 아니라, 생명과 물질의 지속적 흐름 속에서 전체적으로 파악되는 기억이다. ‘머리로는 어렴풋하지만, 가슴으로는 선명한 기억.’ 즉 박현주에게 오로라 기억이란, 생명 에너지를 “조각으로 새기는 순수 기억”이다.
//맺음말//
박현주에게 창작은 개인의 경험과 감정을 작품으로 구현하여 예술적 메시지를 전하는 일이다. 이는 외부의 경험이 내부의 정서와 결합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이며, 동시에 작가 스스로 자신의 내면을 기억하고 인생에서 던진 화두에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기도 하다.
장소 : 금샘미술관 제1,2전시관
일시 : 2025. 8. 13 – 8. 24
추PD의 아틀리에 / www.artv.kr / charmbit@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