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소개//
어컴퍼니는 프랑스 파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 유혜숙의 개인전 ‘오늘의 표면: 모든 것이 남아있는 곳, 마치 아무것도 지워지지 않은 것처럼’을 8월 29일부터 10월 4일까지 진행한다.
직관적 감각을 바탕으로, 매체와 시간이 쌓여 빚어내는 층위의 이미지와 흔적을 회화적 표면으로 드러내는 작업을 지속해온 유혜숙 작가는 붓, 연필, 물감, 손, 몸과 같은 물성과의 관계 속에서 생성되는 층위를 통해 ‘회화’라는 매체의 본질을 탐구하며, 매 순간의 현재성을 화면에 고스란히 담아낸다.
작가에게 있어 이미지는 언어보다 먼저 다가온다. 언어는 이미지를 설명하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본래의 감각과 흐름을 고정시키거나 때로는 잃게 만든다. 따라서 유혜숙의 회화는 특정 메시지나 감정을 직접적으로 전달하기보다, 언어화되기 이전의 순간—말로 다 담을 수 없는 울림과 침묵, 순간의 인상을 포착하는 시도다. 이는 비트겐슈타인이 ‘논리철학논고’에서 언급한 “말할 수 없는 것”의 영역, 곧 윤리적·미학적 체험에 대한 예술적 응답으로 이어진다.
유혜숙 작가의 작업은 ‘현재를 기록하는 행위’에서 출발한다. 매일 다시 그리기를 시작하는 행위는 희망의 제스처이며, 축적된 흔적은 시간이 쌓이며 새로운 현재와 존재를 형성한다. 화면 위의 붓질, 물감의 흘림, 연필의 선은 곧 시간의 층위이자 몸의 기억이다.
그 중심에는 빛이 있다. 모든 것은 빛을 통해 드러나고, 우리는 빛을 통해 존재를 감각한다. 손에 잡히지 않고 소유할 수 없는 빛은 회화 속에서 번역되며, 이 과정에서 구상과 추상의 경계는 무의미해진다. 기억, 무의식, 자동적인 몸짓에서 비롯된 흔적들은 때로는 형상으로 나타나기도, 때로는 공백이나 투명함, 겹침의 형태로 드러나기도 한다.
이번 개인전 ‘오늘의 표면’에서는 지난 20여 년간 이어온 검은색 아크릴 물감과 흑연, 목탄 등을 활용한 검정 톤의 작업들과 더불어 최근 변화한 다채로운 색채의 작품들이 함께 소개된다. 평면 위에 축적된 흔적과 이미지들은 겉으로 지워진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지워지지 않은 채 여전히 남아 순간의 현재성과 우연성을 드러낸다. 시간, 빛, 질료, 행위 등 회화의 본질을 이루는 절대적 요소들이 작품의 표면 위에 자연스럽게 스며있다.
작품 속 켜켜이 쌓인 흔적과 이미지들은 현재의 시공간성을 드러내며, 회화가 지닌 깊이와 유혜숙 작가의 확장된 작품 세계를 관객에게 제시한다.

//작가 노트//
‘표면’은 물성과의 관계에서 시작된다. 캔버스, 붓, 연필, 물감, 손, 그리고 나의 몸이 직관적으로 서로 맞닿고 반응하여 각각의 현재성을 갖고 겹을 만들어간다. 시간성과 존재성은 여기에 (장소로서의 여기, 시간으로서의 여기)있다. 서로 교차된 레이어들이 매 번 서로 다른 시간과 존재로 만나 층을 이루고, 이전과는 차이있는 세계를 느낄 때 나는 그것을 독립적인 개체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다.
예전엔 작품 제목이 없었다. 몇 년 전부터 작품이 행해진 장소 시간을 이니셜로 제목을 짓는다. 그것은 현존성에 가장 가까운 ‘회화’에 가장 근접하고 적합한 제목같다. 나는 어릴 적에 포스터나 그림일기 외에 한번도 이야기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그림을 그린 기억이 없다. 매번 직관적으로 가능한 것을 가능한 만큼 감각하며, 그때마다 생성되는 표현을 따라가는 것이다.
시간, 빛, 질료, 나, 회화를 이루는 절대적 요소이고, 내가 회화 작가로 존재하게 하는 감사한 것들이다. 이번 전시에서 ‘시간’이라는 말 대신 ‘오늘’을 택했다. 하루이자 현재이며, 시간의 형태다. ‘오늘의 표면’에는 현재의 현존성이 감각된다. 인식할 수 있고 만져질 수 있는 곳이 표면이자, 나의 회화가 이루어지는 장소이다.//유혜숙//
//작가 소개//
유혜숙(b.1964)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후,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 8대학 조형미술과 학사 및 석사과정을 마치고, 파리국립고등미술학교(École des Beaux-Arts de Paris) 회화과를 졸업한 후 현재 프랑스 파리와 서울을 오가며 작업하고 있다.
유럽과 한국을 중심으로 다수의 개인전과 그룹전에 참여했으며, 프리 로쉬롱(프랑스, 1992)과 몽후즈 회화상(프랑스, 2000) 등을 수상한 바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소마미술관, 우종미술관, 전북도립미술관, 프랑스 쟝티이시 현대미술재단 등 국내외 다수 기관에 작품이 소장되었다.
장소 : 어컴퍼니
일시 : 2025. 8. 29 – 10. 04
추PD의 아틀리에 / www.artv.kr / charmbit@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