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애展(갤러리 재희)_20250926

//작품론//
인간의 삶은 대체로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는 데 시간을 소비하며 산다. 유년 시절엔 그 삶의 목적을 허망한 곳에 두고 반복적으로 시간을 소비하고 있는 것 같아, 때론 고뇌하며 정신적으로 힘들게 보냈다. 생각 없이 앞만 보고 살아가며 많은 것을 누리고 있을 때는 어떤 삶이 중요한 것인지 보이지 않았다.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들이 나의 마음속에서 없어지고 정리되고 나니 비로소 작은 울림을 느끼게 되었다. 내 삶 속에서 ‘비움’의 소중함을 찾으면서, 작품도 이전과는 다르게 표현되었다. 그것은 바로 진정한 비움이었다. 이전에는 많은 것을 표현하려 하고 다양한 기법으로 작업했지만, 지금은 단순하고 반복적인 나만의 기법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전에는 장미의 욕망과 가시의 고통을 동시에 표현하는 이중적 작업을 행하였지만, 이제는 장미의 아름다움은 뒤로하고 단순히 가시의 흔적을 반복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비움이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를 채울 수 있기에 내면의 아름다움을 중점적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내면의 세계를 표현하는 작품은 작가의 지성과 감성, 그리고 의지에서 빚어지는 행위의 결과이다. 감정을 표현하는 데 있어 언어보다 회화가 더 효과적일 수 있다. 특히 내면의 목소리를 표현하는 데는 선이나 색채로 이루어진 회화가 더 적극적으로 표현된다. 수많은 형식적 실험과 소재의 탐색 끝에 나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소재로 ‘가시(Thorn)’를 찾아내었다. 가시의 반복적 형상과 뾰족한 느낌을 조형적 언어로 전환하였다. 오브제의 독특한 형태를 표현 기법으로 치환한 작품이다. 가시를 소재로 단순히 외양의 모방이나 재현이 아닌, 단조롭고 반복적인 행위를 중심에 두었다. 즉, 최소화한 형식으로 내면세계를 단순하고 간결하게 표현하고자 하였다.

또한 가시를 소재로 한 평면 작업 이후에는 물질의 흔적 기법이 전개된다. 물감을 위에서 밑으로 흘러내려 자연스러운 흔적과 시간과 공간 속에서 흔적을 남기는 행위가 반복된다. 동일한 주제를 가지고 평면과 입체 작품, 그리고 설치 작품으로 옮겨 가며 제작된다. 이 작품들은 다시 모니터(Monitor), 빔 프로젝터(Beam Projector) 등의 영상을 통해 메시지 전달력을 한층 더 높이고자 하였다. 평면·입체·설치 작품을 구분하여 형식적인 면에서 차이를 두었지만, 한 주제를 중심으로 다양하게 구성하고자 하는 목적이었다.

식물의 가시는 자기방어의 수단으로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다. 한 번쯤 가시에 찔려 본 사람들은 가시를 보는 순간 몸을 움츠리게 된다. 그래서인지 가시를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단어는 고통, 경고, 괴롭히는 것 등의 부정적 의미를 내포한다. 나는 모두가 기피하는 가시를 소재로 선택하고, 가시가 주는 역설적 의미에 주목하였다.
내가 바라보는 가시는 그리스도(Jesus Christ)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조롱과 멸시를 당하며 십자가에 못 박혀 고난의 길을 걸으며 느꼈을 폐부를 찌르는 아픔이다. 극도의 고통 속에서 온몸의 피를 다 쏟아 내는 처참한 광경은 인류의 구원을 이루는 거룩한 순간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피 흘린 고통이며, 가시라는 형상은 인류를 향한 초월적 사랑의 증거이다. 여기서 언급되는 피 흘린 고통, 가시라는 형상, 인류를 향한 사랑은 미학적 주제로 전환되어 작품의 소재가 되었다.
고통 속에서 빚어지는 사회적 또는 개인적 트라우마(psychological trauma)를 위로와 회복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사회와 세계의 무관심 속에서 사라지는 것들을 복원하고자 하였다.

  • 행위와 물성

흔적은 또 하나의 스토리(Story)로 만들어진다. 시간과 공간을 지나면서 환희와 고통이 고스란히 남는 것은 흔적이다. 소멸되고 소생하는 매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모르고 지나가 버린 시간이다. 그 또한 지금을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작가는 말로 하지 않고 작품으로 표현한다. 반복적이며 집착하는 것이 그 안에 해결의 방향을 잡고 가는 것이 작가의 길이라 생각해 본다.

“나는 균열에 끊임없이 물감을 중첩하면서 이루어진다. 이는 끊임없는 노동에 의한 과정의 예술이자 수행의 예술이다. 이것은 그의 작업이 행위의 수행성을 띠며, 자신이 정한 제작 방법에 충실하여 그의 화면이 하나의 신체 내지는 사물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근원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만들어진 형상은 매우 간결하다. 그러면서 동시에 많은 것을 내포하는 이미지를 가진다.”

단순함이 가지고 있는 힘은 위대하다. 그 어떤 것을 표현하지 않아도 압축된 본질(Essence)만 표출되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하기 때문이다.
단순·명료한 기법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물감의 흔적은 태어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이 과정에서 흔적을 남기는 무늬들의 이야기에 주목하였다. 긴 시간을 반복하는 행위는 비움과 채움으로 회복되고, 소생되면서 작품으로 진행돼 간다.

인종차별과 인권 문제는 언제나 우리 가까운 곳에 있다.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다가도, 이와 관련된 사고와 사건이 일어나면 그때서야 우리는 깨닫게 된다. 그러다가 이내 관심 밖으로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우리는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이런 상처와 고통을 상기하는 방법으로 반복과 흔적을 통해 발견되는 ‘물성(Properties)의 흔적’을 키워드로 잡았다. 통상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기법이 아님을 미리 밝힌다.


  • 지성과 감성 그리고 의지

“왜 그림을 그리지?” 그림을 그리다가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보기에 좋은 그림을 그리는 것은 나에게는 의미가 없었다. 한동안 작업하지 않고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다. 나의 내면세계를 표현하고 싶어, 주제와 소재에 있어 실험적인 작품을 시도하기도 했다. 먼저 나의 무의식 속에 자리 잡은 상처와 트라우마가 무엇인지, 무엇이 나를 사로잡고 고통을 호소하는지 알 필요가 있었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나 자신을 용서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였다. 시간이 지나가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는 말처럼 우선 나를 힘들게 한 것들을 찾아 하나하나 매듭을 풀기 시작하였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을 구원한 거룩한 가시처럼, 내면의 아픔을 용서함으로써 내가 치유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가상칠언 중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지나간 상처와 아픔도 내면이 용서하면 치유가 되는 것이다. 나의 작품은 가시와 상처의 흔적을 표현하지만, 그 안에 내포된 고통의 흔적은 치유의 채움이다. 인권, 인종차별 같은 문제 앞에서는 누군가가 희생정신을 발휘해야 한다. 지속적으로 관심을 두고 표현하는 것이 초월적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기피하는 소재인 가시를 작품에 표현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우리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 그리스도가 조롱과 멸시를 받으며 가시의 길을 선택한 것처럼, 예술가로서 사회의 약자를 대변하고자 한다. 가시를 소재로 평면, 오브제(Object), 설치, 영상까지 작업을 확장하며 메시지를 전달하려 한다.

인종차별, 폭력, 비방, 부정한 언론 매체와 같은 시대의 비극적 사실 앞에서 삶의 고통과 치유의 의도를 표현할 소재 및 방법을 찾아보았다. 그러면서 자기만의 예술적 정당성을 확실하게 표현하는 작업들이 예술과 정치는 서로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인권과 생명의 존엄성’이라는 공통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다. 절대 권력자들이 인권을 탄압하는 북한의 행태를 보면, 독일의 홀로코스트(Holocaust)가 이 시대에도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시대의 문제를 무감각하게 간과하는 현대인들에게 예술작품을 통해 소통의 역할을 하길 바란다. 표현의 자유 시대를 사는 우리는 감춰진 진실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독재 사회의 어두움이 세상 밖으로 도출되면 안타까운 마음뿐, 해결하지 못함을 본다. 이 시대를 앞서가는 예술가는 특별한 예지력이 있어서 작품으로 표현하는 것이 지금은 이데올로기적인 문제가 되어도 시간이 지나면 인정받는다. 모르면 지나갈 수 있는 일인데, 어떻게 알아버린 현실이다. 저 또한 북한의 홀로코스트(North Korea’s Holocaust)를 알리는 데 주제를 가지고 은유적인 방법 혹은 직접적인 방법으로 표현하려고 한다.

  • 트라우마(psychological trauma)

트라우마의 정의는 한 사건이나 특정 사물을 매개로 마음의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상황을 가리킨다. 그러나 특정 시절 자체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속의 분노, 지우고 싶은 기피 본능을 유발하는 등 지속적인 심적 고통 또한 트라우마의 한 갈래가 될 수 있다.
나쁜 기억이 정신적으로 지속적인 영향을 주며 격렬한 감정적 충격을 불러일으킨다. 여러 가지 정신장애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정신적으로 약하거나 의지가 없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며, 성별이나 연령에 관계없이 올 수 있다. 불안과 긴장은 몸으로 기억된다. 호흡이나 맥박이 빨라지고, 무의식중에 일어나며, 이러한 자세는 다시 불안한 생각을 유발하는 악순환이 된다. 세상을 내 중심으로 보는 것을 멈추고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없는 것으로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괴로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본다.

나의 작은 상처가 치유되면서 주위를 돌아보는 시간이 있었다. 한때는 작품 활동을 하지 않고, 직접적인 행동으로 탈북자와 함께 중국대사관과 광장에서 탈북자 북송을 반대하는 시위도 하였다. 탈북자들의 삶은 고통이다. 중국에서 북한으로 세 번이나 북송당하고, 네 번째에 겨우 한국으로 탈출한 탈북 여성을 통해 한국으로 오는 과정을 들을 수 있었다. 그 과정은 너무나 처참하였다. 북송되면 정치범 수용소에서 일어나는 일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이다. 오늘날에는 재현되지 말아야 할 집단 학살이 북한에서는 아직도 일어나고 있는 것이었다. 자유를 찾아 한국에 왔지만, 그들의 트라우마는 평생 가지고 가야 하는 아픔이다.

이러한 거대한 트라우마 앞에서 나의 작은 상처를 뒤로하고 인권과 생명의 존엄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이를 표현하는 작품을 구상하게 되었다. 누구나 과거의 잔흔처럼 트라우마를 갖고 살아간다. 역사 속에서 트라우마의 진실이 밝혀지더라도 직접적 피해를 본 당사자들은 지워지지 않는 트라우마의 고통 속에 살아간다.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의 트라우마적 역사의 재현에서, 독일인 미술가로서 내면 깊이 자리 잡은 트라우마 때문에 나치의 강제 수용소를 작품으로 표현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그릴 수 없는 그림은 없다. 그러나 수용소의 경우는 잘못 나아가게 할 수 있는 개인적 한계, 그리고 시대의 한계가 있다. 특정 사안에 적절한 형태를 부여하지 못하는 고유의 무능력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어린 시절 자체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속에서 분노가 일고, 지우고 싶은 본능이 솟구쳐 오르는 심적 고통을 느꼈을 것이다.

시대의 문제를 인지하고도 무감각하게 지내는 동안, 상처를 안고 사는 개인들은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개인적 트라우마가 치유되지 못하면 이는 다시 사회적 문제로 우리에게 되돌아온다. 현대인은 각자의 아픈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를 원한다. 누군가는 약자를 대변하여 이 트라우마를 드러내고 치유해야 한다. 내가 알고 있는 탈북 여성은 가끔 북에 두고 온 가족을 생각하며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인다. 몸은 한국에 있어도 마음은 북에 있는 것 같아, 탈북자 일이라면 몸을 아끼지 않는다.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이겨내는 것이 자유 통일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다.

작가가 트라우마에 관해 바라보는 눈과 표현 방법은 다르다. 직접적인 방법은 아니지만, 은유적으로 표현하여 관람자들이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회화적 기법으로 전개될 것이다. 작가는 현실에서 미래를 표현하는 예지력이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수면 위로 떠오른다. 곧 현실이 되어 피부로 느끼는 감동으로 돌아올 것이다.

나에게 가시는 내 폐부를 찌르는 강한 고통이었다. 가시라는 소재를 통해 표현하고 싶은 것은 단순히 가시를 그리는 행위가 아니라, 가시를 반복적으로 그리는 행위를 통해 내면의 본질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물성이 의식과 무의식적으로 교차하고, 가시와 흔적을 양과 음의 조형적 언어로 표현하여 은유와 상징의 의미를 얻고자 한다.

현대인이 바쁜 일상생활에서 자기 삶을 돌아보고, 삶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생명과 대비되는 죽음을 먼저 통찰해야 한다. 작가가 외적 아름다움보다 내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에 초점을 둔다면, 미술작품은 아름다움의 표현이 아니라 진실의 표현이다. 이는 숭고한 미(美)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진정한 미는 생명을 사랑하고 존중한다. 누군가를 대변할 수 있다면, 이 시대의 지성과 감성, 그리고 의지로 예술가의 길을 갈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욕망을 내려놓고 쉼으로써 묵상하며, 나를 비우고 남을 먼저 생각하는 작품이 되길 원한다.

그림은 시각적 차원을 넘어 내면 깊숙이 자리 잡은 거룩한 불만이 표출된 흔적이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깨어지고 부서진, 불완전한 나의 모습까지도 표현하는 행위이다. 애통하고 고통받은 자들에게 치유와 회복이 되는 심리 차원의 미(美)를 말하고자 한다. 삶 속 깊숙이에서 배어 나오는 심오한 열정과 사랑, 그리고 고통을 넘어 시대의 아픔을 표현하는 작가로 작품에 임하고자 한다.//이미애//

장소 : 갤러리 재희
일시 : 2025. 9. 26 –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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