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영展(리빈 갤러리)_20251012

//작가 노트//
앙망(仰望)

나무 앞에서 고요히 눈을 뜹니다. 꽃 너머를 이해하려 애쓰며, 내 안을 깊이 들여다봅니다. 사진 작업을 통해, 사물들 사이에 현존하는 나를 만납니다. 그 감각은 나를 깨우고, 조용히 이미지 안에서 나는 지각합니다.

산책 중 마주한 순간들을 담은 ‘나무의 안부’, ‘꽃이라는 이름은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질문한 ‘잎꽃’ , 두 개의 시선으로 ‘앙망(仰望)’ 전시를 구성합니다.

-.나무의 안부-
시선이 머문 곳마다 조화롭게 살아가는 식물들을 만난다. 인간 중심적으로 구성된 풍경 안에서 그들은 뿌리내린 자리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생을 이어간다. 익숙한 풍경에서 느낀 안정감, 무감각했던 시선들을 깨우며 나무, 풀, 꽃 곁에 서성이기 시작했다. 모든 생명은 연결되어 있다. 나 역시 자연의 생명과 이어져 살아간다. 그들의 삶을 우러러 바라보며, 나는 자연과 함께, 아니 덕분에 살아 있는 나를 본다, 그렇게, 내일의 안부를 묻는다

나무는
나와 자연을 잇는
골목길 끝, 숨결 자리

어둠 속에서
무뎌진 나를
가만히 부른다

잎새의 떨림과
그 아래 흐르는 침묵
그 너머의 결을
빛의 틈에 담는다

지금, 여기,

-잎꽃-

저녁을 준비하다 문득 생각이 스쳤다. 꽃이라는 이름은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배추는 ‘채소’라는 이름보다 먼저, 연한 잎맥의 숨결과 촉감, 빛의 스침, 그리고 물 위에 떠 있는 형상으로 다가왔다. 그 순간 배추는 더 이상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었다. 몇 장의 배춧잎을 화병에 꽂으니, 일상의 쓰임새를 벗어나 전혀 다른 얼굴로 서 있었다.
빗방울은 건반을 두드리듯 흙의 숨을 연주하고 빛은 어둠의 길모퉁이에서 연두 잎 하나를 스쳤다. 그것은 감각되기 전에는 알 수 없었던 세계였다. 빛이 스치고, 물이 감싸며, 달과 별이 내려앉는 듯한 이미지가 잎 위에 번졌다. 때로는 새가 날아와 그 곁을 스치고, 신화 속 한 장면 같은 이야기가 들리기도 했다.
색은 컬러 대신 흑백을 택했다. 익숙한 세계가 낯설게 다가오는 순간, 감각은 방향을 바꾼다. 흙 속에서 발아하는 씨앗의 시작과 끝처럼, 분리되지 않고 이어지는 순간들을 흑백의 질감과 톤 속에서 지각한다.
처음에는 그 순간들을 담는 일이 그저 즐거웠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유한한 삶 속에서 무지하게 살아가는 나 자신을 보았다. 반려견과 함께 지내는 한 지인이 육식보다 채식한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런 선택이 삶의 근원적인 죄를 없앨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남았다. 식물 또한 생명을 지니고 있고, 나의 생존은 여전히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무지와 무력함 속에서 며칠을 보냈다. 유한한 생 안에서 모든 것에 감사하며 작업을 이어가기로 했다. 새 한 마리 날아간 뒤, 그믐은 오히려 더 환해졌다. 사진은 세계로 향하는 문이다. 〈잎꽃〉으로 그 문의 첫 열쇠를 돌렸다. 일상의 채소가 식물들의 꿈과 우주의 숨결을 잇는 매개로 피어났고, 나는 그것을 사진과 시로 남겼다. 사물에 이름이나 정의가 부여되기 이전, 그 세계의 문을 연다.//김주영//

장소 : 리빈 갤러리
일시 : 2025. 10. 12 –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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